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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5. 1. 16. (원문 조회시점 기준)저작권 정보: CC BY-SA 4.0🇯🇵 › 🇰🇷 jako 제공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 Yellow Magic Orchestra)는 1978년호소노 하루오미의 제안으로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 사카모토 류이치 3명으로 결성된 일본의 음악 그룹입니다. 약칭, 통칭은 Y.M.O. 또는 YMO(읽는 법: 와이 엠 오). 멤버는 기본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3명이지만, 다른 "서포트 멤버"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주석 1].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왼쪽부터 사카모토 류이치, 다카하시 유키히로, 호소노 하루오미 (2008년)
기본 정보
다른 이름
출신지 日本の旗 일본 도쿄도
장르
활동 기간
레이블
공동 작업자
공식 웹사이트 ymo.org
멤버

1980년대 초에 일어난 테크노 / 뉴 웨이브 무브먼트의 중심에 있던 그룹 중 하나입니다. 신시사이저컴퓨터를 활용한 참신한 음악으로, 특히 국내에서는 사회 현상이라고 할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 등에서의 축음기 음반 발매와 콘서트투어를 통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음악 그룹이 되었습니다. 활동 기간은 주로 1978년 결성부터 1983년 "해산"(해체)까지 5년이지만, 1993년에 일시적으로 "재생"(재결성[5])했고, 2007년에도 재결성했습니다.

개요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라는 명칭은 호소노가 1970년대 후반에 제창했던 컨셉트 "옐로 매직"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백마법(선이나 백인 등의 상징. 특히 백인 음악)이라든가, 흑마법(악이나 흑인 등의 상징. 주로 흑인 음악)이라든가, 그 어느 쪽도 아닌 황색 인종 고유의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마법의 색을 인종의 색에 걸쳐 제창한 "황색 마법"(옐로 매직)이다. 호소노가 YMO 이외에 "옐로 매직"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는 틴 팬 앨리의 곡 "옐로 매직 카니발", 호소노의 음반 『하라이소』의 제작자 명의 "해리 호소노와 옐로 매직 밴드[6]"를 들 수 있다. 또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반 『천 개의 칼』의 라이너 노트의 호소노의 기고문에서도 옐로 매직에 대한 기술이 있다.

당시[주해 2], 신시사이저를 구사한 음악으로서는 세계적으로 이미 독일의 탠저린 드림이나 영국의 에머슨, 레이크 & 파머, 일본의 토미타 이사오 등이 유명했고, 1978년 디보의 "퇴폐적 미학론"이나 크라프트베르크의 "인간 해체"에도 전자 악기의 도입은 명확했다. 거기서 YMO는 전자 악기·신시사이저 음악의 노선을 취하면서 동양 취미를 알 수 있도록 가사·어레인지먼트·작곡 모두에 넣었다. 프로모션에서 황색 인종 경유임을 주장(강조)하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프로그램 등에도 많이 출연하여 적극적으로 노출을 늘려 인지도를 높였다. 라이브에서는 전자적 감각을 강조하기 위해 보코더를 통한 음성으로 인사한다.[주해 3]

클래식, 레게 등 다양한 음악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포스트 펑크적인 단순함이나 공격성과는 무관하다. 이 때문에 테크노 3대장의 한 축으로 무브먼트를 지탱했던 P-MODEL의 히라사와 스스무는 후년에 "그것은 퓨전이라고 생각했다[7]"라며, 자신들의 음악성과는 동떨어져 있었다는 취지를 말하고 있다.

 
테크노 컷

YMO는 패션도 특징적이었다. 특히 초기 음반 재킷이나 라이브에서 멤버들이 착용했던 "빨간 인민복"(다카하시의 디자인으로 메이지 시대의 스키복을 이미지한 의상이었지만, 그 형태가 중국의 인민복과 닮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빨간 인민복"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깔끔한 짧은 머리, 그리고 옆머리 부분을 깎아내리는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던 "테크노 컷"(혼다 미키오 고안)이라고 불리는 헤어스타일(특히 초기에는 옆머리 깎음 + 옆머리 없음)의 두 가지는 YMO의 비주얼 이미지로서 일반적으로 널리 인지되고 있다.

멤버

YMO는 원래 컨셉트 밴드로서 구상된 것이었고, 호소노는 멤버의 인원 구성은 유동적으로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8]가, 라이브 등에서 서포트 멤버를 맞이하는 일은 있어도 YMO의 멤버 자체는 결성부터 멤버 사망까지 이 3명이다.

아래의 담당 파트는 주로 연주되는 것이며, 일부 레코딩이나 라이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이것들 이외의 파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라이브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곡도 있다.

호소노 하루오미(베이스 기타·신스 베이스·코러스)
에이프릴 풀、핫피 엔도、틴 팬 앨리 등을 거쳐 YMO를 결성. YMO의 리더·프로듀서이며, 신시사이저와 컴퓨터를 이용하는 YMO의 음악 스타일을 제시했다. 종교나 민속학 등 신비주의적인 취미가 있으며, 그것들도 YMO에 영향을 주고 있다. 라이브에서는 거의 베이시스트로 일관하고, 곡에 따라서는 신시사이저를 베이스 대신 연주했다. YMO 해산 후는 특히 앰비언트, 일렉트로니카 등의 장르를 받아들이고 있다.
다카하시 유키히로(드럼·보컬)
사디스틱 미카 밴드, 사디스틱스를 거쳐 YMO에 참여. 1978년 6월 21일 발매된 옴니버스 앨범 『PACIFIC』에 수록된 "코즈믹 서핑"이나, 1979년 MAKOTO HIGHLAND BAND의 『INJECTION』 등에서 컴퓨터 비트와 동기화된 그루브(음악)를 만들어내는 드럼 연주를 처음 선보였다. YMO의 곡들 중 대부분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패션 디자인 실력을 살려 YMO의 무대 의상 디자인을 담당했다. YMO 해산 후에는 솔로 활동과 함께 다양한 뮤지션들과의 협업프로듀싱 활동을 펼쳤다. 음악적 방향성 차이로 인해 불화가 잦았던 호소노와 사카모토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도 했다. 사디스틱 미카 밴드 시절, 록시 뮤직의 오프닝 무대로 런던에서 공연을 한 경험이 있으며, 결성 당시 멤버 중 유일하게 일본 외 지역에서 공연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2023년 1월 11일 사망. 향년 70세.
사카모토 류이치 (키보드신시사이저코러스)
유년 시절부터 피아노작곡을 배웠다. 음악적 기반은 클래식 음악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존 케이지를 듣고 전통 클래식 음악의 근본을 파괴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폭넓게 접하며 도쿄 예술대학 작곡과에 진학, 민족 음악학의 깊이에 감명을 받고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논문(제출 작품)으로 관현악 작품을 제출하고 졸업했다. 본인은 작곡과 편곡이 자신의 본업이라고 생각한다(피아노 연주가 본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론가로서 말솜씨가 좋았고, 학생 시절에는 학생 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에 제도적인 것을 거부하고 해체하려는 운동을 했다. "교수"라는 애칭은 대학원 시절 다카하시가 지어준 것이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활동(오타키 에이이치야마시타 타츠로의 음반 참여)한 후 YMO에 참여했다. YMO에서는 마츠타케 히데키와 함께 레코딩에서 곡을 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라이브에서는 곡의 어레인지먼트를 도맡아 했다. YMO 해산 후에는 영화 음악에서 성공하는 등 솔로 활동을 펼쳤고, 모교의 객원 교수를 역임했다. 2023년 3월 28일 사망. 향년 71세.

연혁

초기 : 결성~월드 투어

결성

YMO 결성 이전, 호소노는 드럼 연주자 하야시 타다오, 가수 마나와 함께 자신의 "옐로 매직 카니발"을 커버하는 유닛을 구상했다. 하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고(이후 마나는 솔로로 "옐로 매직 카니발"을 커버했다), 이어 호소노는 하야시와 사토 히로시의 유닛으로 마틴 데니의 "파이어크래커"를 커버하는 것을 구상하지만, 사토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실현되지 않았다. 호소노는 당시 매니저(히가사 마스미)에게도 인선을 의뢰했고, 히가사는 사카모토 류이치를 추천했다[9].

1978년 2월 19일 호소노의 솔로 앨범 『하라이소』에 수록될 "팜 파탈" 레코딩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 다카하시 유키히로 두 사람과 처음으로 세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사카모토와 호소노는 1975년 오타키 에이이치의 음반 " NIAGARA MOON" 녹음 당시 만난 적이 있었고, 1976년에는 호소노가 틴 팬 앨리 투어에서 사카모토를 지원 멤버로 기용했던 관계였다. 1976년 5월, 호소노의 음반 『타이안양행』 발매 당시 라이브에서는 사카모토와 함께 "파이어크래커"를 연주했다[10]. 한편, 다카하시와 호소노는 학창 시절부터 오랜 친구였지만, 뮤지션으로서의 교류는 사디스틱 미카 밴드가 1975년 "재팬 록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때 코하라 레이의 대타로 호소노가 연주한 적이 한 번 있었을 뿐이었다[11].

그날 호소노가 두 사람을 자택으로 초대하여, 세 사람은 코타츠를 둘러싸고 오니기리를 먹으면서(귤이라는 설도 있다. 적어도 귤은 있었다고 세 사람은 기억하고 있다) 회합을 가졌다. 호소노가 새로운 그룹의 컨셉트를 그들에게 전달하자, 두 사람은 동의했고, 여기서 처음으로 “YMO”가 결성된다. 이때 호소노는 두 사람에게 "마틴 데니의 "파이어 크래커"를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일렉트릭 펑키 디스코로 어레인지먼트하여 싱글로 전 세계 400만 장을 판매한다"(실제 메모에는 매수는 적혀 있지 않다)는 자신의 메모가 적힌 노트를 보여주었다.

호소노는 멤버가 결정된 후에도, 결성 초기에는 요코오 타다노리를 YMO 멤버로 추가할 구상이 있었다. 기자회견 당일, 호소노는 요코오에게 회견에 참석하라고 전했지만, 요코오는 왠지 "가고 싶지 않았다"며 취소했다(진상은 회견 당일이 마감이었던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초기 YMO의 트레이드마크인 "턱시도"도 요코오의 몫을 포함하여 4벌 준비되었지만, 결국 요코오는 멤버가 되지 못했다.

후에, 결성 전부터 사카모토와 함께했던 신시사이저 전문가 마츠타케 히데키가 지원 멤버 프로그래머로 합류하여 YMO의 특징인 신시사이저 자동 연주를 도맡게 된다.

1978년 7월 10일, YMO는 레코딩을 시작했다[12].

1978년 9월, 마츠타케 히데키를 지원 멤버로 하여 야마하 이케부쿠로 동점(YAMAHA)에서 라이브를 개최했다.

1978년 10월 18일, FM도쿄(현 TOKYO FM)의 프로그램 "사운드 카니발" 공개 녹음으로 도쿄 우편 저축회관에서 라이브를 개최했다[12]. 또한 10월 25일부터 26일에 걸쳐 롯폰기 핏인에서 " 센노 나이후 발매 기념 라이브"를 개최했다[12].

YMO 결성 후에도 한동안 멤버들은 병행하여 다른 음악 활동을 했다. 사카모토는 와타나베 카즈미와의 듀엣 밴드 "KYLYN", 사카모토의 베이시스트 2명, 드러머 2명 등 각 파트 2명 체제로 격투기 형식으로 연주하는 컨셉트 "각투기 세션"이 그것이다(여기에는 다카하시, 야노 아키코도 참가했다). 또한 다카하시는 1979년 6월까지 사디스틱스에 재적했다. 초기에는 도쿄 롯폰기의 재즈 퓨전 계 라이브 하우스 "롯폰기 핏 인" 등에서 YMO 명의 이외에도 야노 아키코의 라이브에 게스트 출연을 하거나, KYLYN, 각투기 세션 등에 3명이 참가하여 YMO의 곡도 연주했다. 사카모토의 "센노 나이후 발매 기념 라이브"에도 3명이 참가했다.

1978년 11월 25일, 데뷔 음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알파 레코드에서 발매[12]했다. 알파 레코드는 같은 해 가을 미국 A&M 레코드와 업무 제휴를 맺었고,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키노쿠니야 홀에서 열린 라이브 공연이 방문 중이던 부사장 토미 리퓨마의 눈에 띄면서 미국 데뷔가 결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지만, 후에 키노쿠니야 홀 1978 라이브(12월 10일 공연 녹음) 라이너 노트에서 미국 데뷔는 그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1979년 5월 30일, 데뷔 음반을 미국 시장을 위해 리믹스한 음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미국반)을 A&M 레코드 산하 토미의 자체 레이블인 호라이즌 레코드에서 발매했다. 리믹스는 엔지니어 알 슈미트와 호소노가 공동으로 작업했다[8]. 이 미국반은 7월 25일 일본에서도 발매되었고(일본 오리콘 차트 최고 20위 기록), 일본반과의 큰 차이점으로 사카모토의 연주곡 "동풍"이 "Yellow Magic (Tong Poo)"로 제목이 변경되었고, 요시다 미나코의 보컬이 추가되었다. 동시에 YMO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 "옐로우 오퍼레이션"이 시작되었다[13]. 1979년 8월 2일부터 4일까지 로스앤젤레스 그리스 극장(영어)에서 튜브스(영어)의 오프닝 공연을 펼쳤고(해외 첫 공연), 오프닝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기립하여 앵콜을 요청하는 등 극찬을 받았다. 8월 6일에는 마담 웡에서 단독 라이브를 열었고, 이때부터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튜브스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 9월 10일부터 11일까지 나카노 선플라자에서, 9월 13일부터 14일까지 우편저금홀에서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같은 해 9월 25일, 두 번째 음반 Solid State Survivor를 발매[14]했다(이 시기 미국에서는 발매 전 호라이즌 레이블이 도산하여 오리지널 형태로는 발매되지 않았다). 오리콘 차트 1위에 등극했고, 일본 국내 판매량은 총 100만 장을 넘어 폭넓은 세대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음반에 수록된 "테크노폴리스", "라이딘"은 YMO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또한 "데이 트리퍼", "Solid State Survivor" 두 곡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명성을 얻었다. 참고로 이 두 곡에는 아유카와 마코토(시나 앤 더 로케츠)가 게스트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다.

국내 역수입 인기

10월에는 첫 월드 투어 "트랜스 아틀랜틱 투어 (YELLOW MAGIC ORCHESTRA TRANS ATLANTIC TOUR)"를 영국 런던 공연으로 시작했다. 투어 기간 중 텔레비전, 라디오에서도 많은 라이브 특집 방송이 편성되었고, 관객에게 아첨하지 않고 묵묵히 악기와 마주하는 기발한 연주와 빨간 인민복 스타일의 의상 등 독특한 스타일이 주목을 받았다. 12월 귀국 후 나카노 선플라자에서 라이브 공연을 열었다. 귀국 공연에서는 시나 앤 더 로케츠가 오프닝을 맡았다. 귀국 무렵에는 일본에서도 YMO 붐이 일어나 해외에서 불붙은 YMO의 인기가 일본으로 역수입되는 형태가 되었다. 해외 라이브 투어는 대부분의 일본 아티스트들이 국내에서 히트를 치고 인기 스타가 된 후에 진행하지만, YMO는 국내에서 히트하기 전에 진행했다. 이는 스태프가 "YMO의 음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의 폭발적인 인기에 따라 데뷔 이후 없었던 정식 매니지먼트 회사 설립이 필요하게 되었고, 벨우드 레코드 출신 "오쿠라 히로시"(오쿠라 히로시)에 의해 음악 프로덕션 회사 "요로시타 뮤직"이 설립되어 YMO는 해당 회사 소속이 되었다.

이렇게 YMO의 일본 국내 인기는 압도적인 것이 되었고, 그 인기는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뿐 아니라 당시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젊은이들이 테크노컷을 따라 하고, 다케노코족이 "라이딘"에 맞춰 춤을 추는 등 YMO의 영향은 사회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1980년 3월부터 첫 국내 투어 "테크노폴리스 2000-20"를 진행했다. 싱글 "COMPUTER GAME (Theme From The Circus)"가 미국에서 발매되었고, 3월 15일자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60위를 기록했다[15].

4월에는 쇼가쿠칸 잡지 "샤가쿠" 창간 이벤트 "샤가쿠사이"에 시나 앤 더 로케츠스네이크맨쇼 등과 함께 출연했다.

6월, 스네이크맨쇼의 코미디를 섞어 제작된 네 번째 음반 증식을 발표했다. 이는 당초 10만 장 한정반으로 판매될 예정이었지만, 20만 장 이상의 예약이 들어와 일반반으로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오리콘 차트 첫 등장 1위를 기록했다. 영국에서 발매된 싱글 "COMPUTER GAME (THEME FROM THE INVADERS)"는 6월 8일자 영국 싱글 차트에서 17위를 기록했다[16].

10월에는 두 번째 월드 투어 "FROM TOKIO TO TOKYO"를 영국 옥스퍼드 뉴 시어터에서 시작했다. 이 투어는 8개국 19회 공연으로 진행되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더 챕플린 스테이지 공연에서는 일본으로의 위성 중계도 이루어졌다. 투어 중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소울 트레인"에 일본인 뮤지션으로서는 처음으로 출연했다. 투어는 12월 일본무도관에서의 4일 연속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YMO는 "세계적으로 통하는(통했던) 일본 밴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멤버들은 오히려 "세계로 나가 버린 밴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1993년 "재생" 당시 사카모토의 발언에서). "서구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획기적인 일본 유닛"이라는 평가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평론가와 청중 사이에서도 반응이 다양하다.

중기 : 『BGM』과 『테크노델릭』

1981년은 YMO에게 있어 큰 전환기였다. 3월에 아방가르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음반 BGM을 발표했다. 당시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디지털 MTR(멀티트랙 레코더)을 적극 활용한 이 음반은 매우 실험적인 음반이었으며, 그동안 친숙한 성향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어둡고 무거운” 유럽풍이면서 뉴 웨이브 색깔이 강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선보였다. 가사 또한 기존의 크리스 모즈델의 산문시에서 멤버 자신들의 작사(영어 가사는 피터 바라칸과의 공동 작업)로 바뀌었다. 이 음반에 수록된 “CUE”는 이후 YMO의 음악성을 보여주는 곡이라고 사카모토 류이치는 말했고, 또 “U・T”는 영국의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지로부터 “하드코어 테크노의 원조”라고 칭송받는 등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영향을 준 음반이다.

음악과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한 이 음반은 그동안 YMO에 관심이 없던 평론가들로부터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소위 “라이딘”적인 사운드를 기대했던 팬들로부터는 큰 비난을 받아 “실패작”, “졸작” 등의 혹평을 받았고, 판매량은 크게 감소했다. 이 음반 발표에 대해 멤버들은 “뭘 해도 팔린다. 이렇게 재밌는 상황은 두 번 다시 없다. 그러니 놀아보자고 생각했다”(호소노), “기대를 배신하는 쾌감을 맛보고 싶었다”(사카모토), “팬들을 버렸다”(다카하시)라고 각각 말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BGM과는 또 다른 성격의 실험적인 음반 테크노델릭을 발표했다. 당시 최첨단 샘플링 머신을 활용하여 금속음이나 사람의 음성 등을 샘플링하여 가공한 사운드는 이후 전 세계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같은 해 발표된 위 두 장의 음반 발표에 이어 두 번째 국내 투어 “윈터 라이브 1981”이 11월 24일 센다이 미야기현민회관에서 시작되어 전국 11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주로 BGM, 테크노델릭 수록곡을 중심으로 연주된 이 투어에서는 음악 재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YMO 라이브로서는 처음으로 MTR이 사용되었다. 연주 스타일 또한 기존 라이브와는 변화를 보였다. 다카하시의 드럼 스타일은 기존의 드럼 세트에 더해, 서서 샘플링 트리거 LMD-649를 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곡에 따라 사카모토가 기타나 드럼을, 다카하시가 키보드를 연주하는 등 YMO 라이브로서는 매우 드문 악기 파트 변경도 보였다. 또 호소노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등 변화가 풍부했다. 무대 지원 멤버는 마츠타케 히데키 한 명뿐이었다. 12월 27일 신주쿠 츠바키하우스 공연(이날 공연만 타치바나 하지메, 우메바야시 시게루도 지원 멤버로 참가, “중국 여자”도 연주)을 끝으로 이듬해에는 YMO로서의 음악 활동은 일시 중단되었다.

그룹 이름을 줄여 “옐로 매직”이나 “옐로”라고 불리던 YMO였지만, 이 무렵에는 “YMO”(와이엠오)라는 약칭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았다.[footnote 1] 해산 후에는 등록상표 문제로 이 “YMO” 표기가 일시적으로 불가능해져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표기가 주류가 되었다.

이 시기 사카모토는 잡지 인터뷰에서 “어떤 의미에서 내가 ‘호소노 하루오미’라는 뮤지션을 가상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호소노 씨는 나를 적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와 YMO를 파워업하고 있다”[17]고 말했고, 사카모토와 호소노 사이에 대립적인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이 시기 사카모토와 호소노의 관계는 상당히 악화된 상태였고, 사카모토는 호소노와 스튜디오에서 얼굴을 마주치면 앙심으로 스튜디오 의자를 발로 차거나,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스튜디오 입장 시간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런 일도 있었기에 두 사람의 사이를 중재했던 다카하시는 매우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멤버들 사이에서는 1981년 말에 YMO 활동에 마침표를 찍는다(해산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알파 레코드였던 당시 소속 레코드 회사의) 사업적인 요구 때문에 해산은 일단 미뤄졌다.

1981년까지 YMO의 축음기 음반 세계 판매량은 싱글이 미국에서 100만 장[13], 영국에서 20만 장[13], 음반은 미국과 영국을 합쳐 20만 장[13], 전 세계 축음기 음반 판매량은 500만 장[13]에 달했다(당시 알파 레코드 사장 무라이 쿠니히코에 따르면[13]).

후기 : 솔로 활동~재시동~그리고 “해산”으로

이듬해인 1982년에는 YMO로서의 실질적인 음악 활동은 없었다.[footnote 2] 각 멤버는 솔로 활동과 동시에 가요계에 곡을 제공하는 데 힘썼다.

호소노는 핫피 엔도 시절 동료 마츠모토 타카시와 함께 마츠다 세이코에게 곡을 제공했고, 다카하시와 함께 “¥EN”(YEN) 레이블을 설립하여 솔로 음반 필하모니를 발표했다. 사카모토는 고 히로미마에카와 키요시 등의 곡을 프로듀스했고, 이마와노 키요시로와 함께 싱글 “이케나이 루주 매직”을 발매했으며,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배우(요노이 대위 역)로 참가하여 자신의 첫 영화 음악을 담당했다. 다카하시는 “다카하시 유키히로 투어 1982”를 6월부터 개최했다.

YMO로서는 “뮤직 페어”나 “오레타치 효킨족”에 출연했고, 당시 유행하던 만재 프로그램 “THE MANZAI”에 “트리오 더 테크노”라는 이름으로 출연하여 “전 YMO”라고 전제하면서 개그를 선보였다.[18] 호소노는 “하야시야 삼페이”, “야나기야 킨고로”, “오가와치 덴지로”, 사카모토는 “이마와노 키요시로”, “야자와 에이키치”, 다카하시는 “오노다 히로오”, “쿠사카리 마사오” 등의 성대모사를 선보였고, 마지막에는 사카모토가 다카하시, 다카하시가 호소노, 호소노가 사카모토의 성대모사를 하며 마무리했다.

이듬해 1983년 3월, 가네보 화장품 CM 타이업곡이 된 싱글 「키미니, 무나큐운.」으로 YMO로서의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이 곡 이후 1981년의 전위적인 사운드 「BGM」 「테크노데릭」에서 일변, 이번에는 대중 지향적인 일본어 테크노 가요를 전개했다. 이 곡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노린다”고 선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호소노의 작곡/편곡에 의한 마츠다 세이코의 「천국의 키스」에 막혀 아깝게도 2위에 그쳤다(하지만 YMO 싱글로서는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어 5월에는, 같은 곡을 수록한 음반 「바람둥이 우리들」을 발표했다. 또다시 이전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바꾼 가요 음반이지만, 곡 자체는 기존 가요의 틀을 넘어선 정교한 사운드로 구성된 첨단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음반이 “해산”을 전제로 제작된 음반이라는 것은, 이 시점에서는 멤버 외에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바람둥이 우리들」의 보컬 부분을 신스의 멜로디로 바꾼 리믹스반 「바람둥이 우리들 (인스트루멘탈)」이 발표되었고, 이 음반에 수록된 「이심전신」은 세계 커뮤니케이션의 해 테마곡으로 채택되었다.

이 시기는 멤버 3명의 나이가 30대를 넘었던 것도 있어, TV 프로그램이나 이벤트 등에 출연할 때 3명은 “아저씨 아이돌”을 연기하고, 곡 연주에도 아이돌다운 안무가 더해지는 등 철저함을 보였다.

당시 다카하시가 담당하던 「올 나이트 닛폰」에 극단 슈퍼 엑센트릭 시어터 (S.E.T.)가 고정 출연하고 있었던 것으로부터, 1980년 6월 발매의 「증식」과 같은, S.E.T.의 코미디를 곁들인 음반을 제작하는 안이 다카하시로부터 제안되어, 해산 기념으로 개그 색깔이 짙은 음반 「서비스」가 제작되게 되었다.

그리고 10월, 잡지 「GORO」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산개”(해산)가 표명되었다. 이 “산개” 선언에 대해, 잡지 「Soundall」(12월호) 인터뷰에서 호소노는 “나는 산개에 대해 별로 아무런 감정이 없어. 팬들은 ‘해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충격적일 테니까, 그런 점을 고려해서 ‘해산’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고, 발표할 생각도 없었다”고 담담한 발언을 하고 있다.

구 YMO로서의 마지막 라이브 투어(“산개” 라이브 투어)인 「1983 YMO 재팬 투어」가 11월 23일 삿포로, 도립산업공진회장에서 시작되었다. 전국 6개 회장에서 개최되었다. 투어 마지막 날인 12월 22일은 일본무도관에서 세계 커뮤니케이션의 해(WCY) 기념, 국제연합대학 협력에 의한 자선 콘서트(관객은 모두 무료 초대)였다.

음반 「서비스」는 투어 중인 12월 14일에 발매되었다. 또한 12월 12일-13일 일본무도관 공연을 수록한 2장짜리 음반 「애프터 서비스」는 이듬해 1984년 2월 21일에 발매되었다. 같은 해 4월 5일, 작년 12월 12일, 13일 일본무도관 공연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 「A Y.M.O. FILM PROPAGANDA」의 프로모션 시사회를 신주쿠 시어터 아플에서 개최하고, 멤버 3명도 모습을 드러내 프로모션 활동을 했다. 구 YMO로서는 이것이 마지막 작업이 되었다. 같은 영화는 4월 18일, 시부야 공회당에서 상영되었다. 이후 전국 109곳에서 공개되었다.

이후 1993년 4월 1일까지, 멤버 3명이 함께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재생」

산개 후에도 여러 차례 재결합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주변에서의 오퍼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호소노가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산개 후 약 10년이 지난 1993년 2월, YMO 「재생」(재결합)이 발표되었고, 4월 1일에는 멤버 3명이 함께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음반 발표와 도쿄돔 콘서트 개최가 공표되었다[footnote 3]. YMO 재생은 신문이 사회면에서, NHK 및 민방이 뉴스에서 각각 보도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크게 다뤄졌고, YMO가 과거 소속되어 있던 알파는 그것에 편승하여 과거 라이브 영상이나 과거 YMO 곡의 리믹스 음반 등이 상품화되었다.

재생 당시 기자회견은 존 레논오노 요코베드 인 패러디로, 거대한 침대에 3명이 똑바로 누운 상태로 진행되었고, 3명이 침대에서 나오자 3명은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인사말과 종합 사회는 당시의 코미디 프로그램 「다운타운의 갓츠에에 칸지」(후지테레비)의 캐릭터인 오징거 Z가 맡았다. 그런데 이 회장에 당시 방영되고 있던 「진격! 전파소년」(닛폰테레비)의 마츠무라 쿠니히로마츠모토 아키코가 연예 리포터로 잠입해 있었고, 「YMO 재생! 이 기회에 여러 가지 부탁하고 싶다!」라는 제목의 기획으로 「YMO의 엑스자 마크를 전파소년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라고 교섭하고 있었다[footnote 4]. 마츠무라는 이때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로 키타노 다케시의 성대모사를 멤버 앞에서 하고 있었고, 「닮았네」라고 말을 들어 기뻤다고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5월 26일, 음반 「테크노돈」을 도시바 EMI에서 발매했다. 믹싱에는 사카모토가 뉴욕에서 알게 된 마돈나 등과의 작업으로 알려진 일본인 엔지니어 GOH HOTODA가 참가했고, 후술하는 재생 공연에도 4번째 멤버로서 출연했다. 선행 싱글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커버곡 「포켓이 무지개로 가득 차 있다」. 6월 10일, 11일에는 도쿄돔에서 공연이 개최되었다. 전좌는 지 오브가 맡았다. 이 라이브에서는 과거의 곡도 몇 곡, 참신한 어레인지먼트가 더해져 연주되었지만, 옛 히트 퍼레이드에 머무르는 것은 전혀 없이, 어디까지나 「테크노돈」의 곡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8월 25일, 도쿄돔 공연을 수록한 CD 「테크노돈 라이브」가 발매되었다. 이후 해산 등의 발표 없이 YMO는 다시 활동을 중지했다. 재생 당시 기자회견에서는 월드 투어 실시나, 또 한 장의 오리지널 음반을 제작하고 싶다고 발언했지만, 결국 YMO로서 그러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후년 인터뷰에서 「재생」은 멤버 자신들의 본의가 아니었다고 3명 모두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19]).

하지만 호소노, 다카하시, 사카모토 3명은 솔로 활동과 함께 레코딩이나 TV 프로그램 기획, 이벤트 등에서 음악적 협업을 계속해 왔다.

2000년대

2001년 1월 23일, NHK-BS2에서 방송된 호소노 하루오미 데뷔 30주년 기념 특집 「호소노 하루오미 옐로우 매직 쇼」에서 3명이 공연했다. 3명이 노인으로 분장하여 단전(도테라)을 입고 연주한다는 유머러스한 기획으로, 동기 없이, 신시사이저, 일렉 베이스, 생 드럼만으로 간소한 「라이딘」을 연주했다. 이때의 3명은 “도테라 YMO”라고 불린다.

같은 해 4월 25일, TBS의 지뢰 퇴치 캠페인 “지뢰 제로”의 일환으로 사카모토 류이치를 중심으로 한 스페셜 그룹 “N.M.L. (NO MORE LANDMINE)”의 자선곡 “ZERO LANDMINE”이 발매되었다. N.M.L.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제안으로 모인 국내외 뮤지션들로 구성되었으며, 데이빗 실비언크라프트베르크 등 YMO 시절부터 사카모토 류이치와 친분이 있는 뮤지션들도 다수 참여했고, 호소노 하루오미가 베이스, 타카하시 유키히로가 드럼으로 참여했다. 4월 30일에는 TBS 50주년 특별 기획 프로그램 “지뢰 제로 21세기 첫 기도”가 방송되었고, 프로그램에서 N.M.L.의 “ZERO LANDMINE” 라이브 연주에 호소노 하루오미와 타카하시 유키히로도 참여했다.

이듬해 2002년, 호소노 하루오미와 타카하시 유키히로가 일렉트로니카 유닛 “스케치 쇼”를 결성했다. 음반에는 사카모토 류이치도 참여했고, 라이브 “WILD SKETCH SHOW”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게스트 뮤지션으로 무대에 올라, 새로운 어레인지먼트로 편곡된 “”와 “중국 여자”, 호소노 하루오미와 타카하시 유키히로만 연주한 “잼” 등 YMO의 곡들도 여러 곡 연주되었다 (스케치 쇼 첫 공개 당시에도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 사카모토 류이치 3명이 미디어에 출연했다).

스케치 쇼 이후, 세 사람의 음악 활동이 활발해졌다. 2004년 6월 18일, 차세대 음악과 멀티미디어 아트의 국제 페스티벌 “sonar festival 2004”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었고, 세 사람은 YMO가 아닌 “휴먼 오디오 스펀지 (Human Audio Sponge=HAS)” (“스케치 쇼 +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위치 설정)라는 이름으로 1993년 재결합 라이브 이후 11년 만에 유닛(밴드)으로 무대에 섰다. 이 “sonar”의 위성 이벤트로 10월 9일~10일, “sonarsound tokyo 2004”가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서 개최되었고, 다시 HAS로 라이브를 열었다. 모두 YMO와는 다른 연주 스타일로, 각 부스에 맥킨토시를 설치한 일렉트로니카 스타일이었다. 연주된 곡들도 스케치 쇼 레퍼토리가 중심이었고, “잼”과 “라이엇 인 라고스”를 제외하고는 YMO 시절 곡은 연주되지 않았다.

1993년 “재생” 이후, 세 사람은 오랫동안 다시 YMO로 음악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일관되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HAS로 활동할 때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YMO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7년 2월 3일, 기린 라거 맥주 텔레비전 CM 기획에서 마침내 “YMO” 명의가 부활했다. CM에는 세 사람이 함께 출연했고, 또한 CM을 위해 “라이딘”을 새로운 어레인지먼트로 녹음한 “RYDEEN 79/07”이 사용되었다. 이 곡은 CM 공개와 함께 인터넷 배포가 시작되었고, 아이튠즈 스토어를 비롯한 여러 배포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수 1위를 기록했다 (인터넷 배포 당시 명의는 “YMO” 약칭이 아닌 가타카나 표기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였다). CM 출연에 따라,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이 디자인(2종류)된 라거 맥주 6캔 팩이 한정 판매되었다.

3월 21일에는 베스트 음반 『YMO GO HOME!』과 라이브 음반 『ONE MORE YMO』가 소니 뮤직 다이렉트에서 재발매되었다. 동시에 오리지널 음반 10작품과 베스트 음반 『UC YMO』 초회판이 복각 발매되었다.

그 후 5월 19일, “Smile Together Project”의 일환으로 HAS 명의로 라이브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 대홀에서 열었다. 이 라이브에서는 “RYDEEN 79/07”을 비롯하여, “이심전심”, “음악”, “” 등 YMO의 곡들도 연주되었고, 또한 영화 『EX MACHINA -엑스 마키나-』의 테마곡이 되는 세 사람의 신곡 “레스큐”도 공개되었다. 이 라이브는 티켓 판매 수익 전액이 “재단법인 암에 걸린 아이들을 돕는 모임”의 활동 자금이 되는 자선 라이브였다. 서포트 멤버는 타카노 히로시, 타카다 렌, 곤도 토모히코였다.

한편 애플 재팬 웹사이트의 스페셜 인터뷰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나이를 먹으면서 마음이 느슨해져서, 우리들 스스로도 (HAS와 YMO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있다”며, “HAS라고 쓰고 YMO라고 읽어달라”고 말했다 (단, “그렇게 읽고 싶은 사람은 읽어도 좋아”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7월 7일, 세계 8개국 9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된 콘서트 “라이브 어스”에는 마침내 “Yellow Magic Orchestra” 명의(약칭은 사용되지 않았다)로, 서포트 멤버 없이 세 사람만으로 출연했다. 장소는 교토시 도지의 특설 무대였고, 출연 5팀 중 마지막 순서를 장식했다[footnote 5]. 8월 22일에는 신곡 “레스큐”와 “RYDEEN 79/07”을 수록한 싱글 CD를 에이벡스 내 사카모토 류이치가 주재하는 레이블 commmons에서 발매했다. 명의는 “레스큐”가 “Human Audio Sponge”의 머리글자에 YMO를 붙인 “HASYMO (하시모)”, “RYDEEN 79/07”은 “Yellow Magic Orchestra”였다. YMO 명의의 CD 발매는 1993년 『테크노돈 라이브』 이후였다.

2008년 6월 15일, 28년 만의 런던 공연이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렸다. 또한 같은 주 6월 19일에는 스페인 히혼의 Laboral Ciudad de la Cultura에서도 공연했다. 이번 세트리스트는 전년에 열린 요코하마 라이브를 거의 그대로 따랐지만, 스페인에서는 런던에서 연주된 “SPORTS MEN”, “FLY ME TO THE RIVER”이 생략되었고, 각 공연에서 순서가 약간씩 달랐다. 이 공연에서 특필할 만한 것은 세계 최초 공개된 신곡 “The City of Light / Tokyo Town Pages”와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비주얼 메시지와 함께 연주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솔로곡 “TIBETAN DANCE”였다.

2009년, 도코모휴대 전화 단말기 N-04A에 오리지널 콘텐츠로 “good morning, good night” 풀 버전과 14종류의 음향효과를 제공했다 (HASYMO 명의). 이 음원은 여기서만 확인할 수 있다.

8월 9일, 도쿄 유메노시마에서 개최된 여름 페스티벌 “월드 해피니스 2009”에 출연했다 (전년도 동일 이벤트에는 HASYMO 명의로 출연했다). 타카하시 유키히로는 일렉트로니카 스타일을 채택하지 않고 전곡 드럼을 연주했고, 비틀즈의 커버 (음악) “Hello, Goodbye”로 시작하여 1980년 이후의 “천 개의 칼”, 테크노돈 라이브 이후의 “파이어 크래커”를 포함한 전 10곡을 연주했다. 당일 라이브 서포트 멤버는 오야마다 케이고, 타카다 렌, 곤도 토모히코였다.

2010년 이후

2010년 4월 발매된 음악 백과사전 ‘commmons: schola vol.5 Yukihiro Takahashi & Haruomi Hosono Selections: Drums & Bass’에는 전년에 녹음한 비틀즈의 Hello, Goodbye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Thank You For Talkin' To Me Africa”가 수록되었다. 사카모토에 따르면, 이 앨범에 수록하려던 두 곡이 저작권 문제로 수록되지 못해 직접 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녹음은 클릭 없이 라이브 연주로 진행되었다. 후자의 보컬은 크리스탈 케이가 맡았다. 이와 관련하여 NHK 교육 텔레비전 프로그램 ‘스콜라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의 학교’의 “드럼 & 베이스 편”에 세 사람이 출연하여, 오야마다 케이고곤도 토모히코와 함께 “천 개의 칼”, “Hello, Goodbye”, “Thank You For Talkin' To Me Africa(보컬 없음)”을 연주했다.

2010년에도 계속해서 “WORLD HAPPINESS 2010”에 참가했다. 가을부터는 에자키 글리코포키” 광고에 출연했고, 배경 음악으로 “라이딘”이 사용되었다.

2011년 6월 26일, 미국 할리우드의 야외 음악당 “할리우드 볼”에서 1980년 이후 31년 만의 미국 공연을 치보 매트와 함께 “BIG IN JAPAN”이라는 타이틀로 개최했다. 다음 날에는 “Yellow Magic Orchestra “LIVE in California””라는 타이틀로 더 워필드에서 공연을 했다.

귀국 후 7월 31일에는 “후지록 페스티벌”에, 8월 7일에는 네 번째 “WORLD HAPPINESS 2011”에 참가하여 1993년 이후 신곡 “Fire Bird”(HASYMO 명의를 포함하면 2년 만의 신곡)를 발표했다. 또한 8월 5일에는 NHK 방송 센터 101 스튜디오에서 첫 스튜디오 라이브를 녹화했다. “도테라 YMO”가 아닌 “유카타 차림 YMO”로 등장하여 라이브 모습은 11월 4일 NHK 종합에서 방송되었다.

2012년 2월 15일, 전년도 더 워필드 공연 실황이 DVD ‘Live in San Francisco 2011’로 발매되었다.

7월 7일~8일, 사카모토의 제안으로 시작된 반핵 음악 이벤트 “NO NUKES 2012”에 출연했다. 7일에는 크라프트베르크에게 마지막 무대를 양보하고, 첫 번째 곡으로 크라프트베르크의 “Radio Activity”를 커버했다. 또한 7월 18일에는 전년도 스튜디오 라이브 실황이 DVD ‘YMONHK’로 발매되었다. 8월 1일에는 전년도 “WORLD HAPPINESS”에서 처음 공개된 “Fire Bird”가 디지털 다운로드 한정으로 판매되었다.

8월 12일에는 다섯 번째 ‘WORLD HAPPINESS 2012’에 출연하여 “아케고코로~자세키노 테마~”를 라이브로 처음 공개했고, 해산 이후 29년 만에 “TECHNOPOLIS”를 연주했다.

같은 해 10월 11일에는 “WORLD HAPPINESS 2012 After Party”라는 이벤트가 도쿄도 현대 미술관 레스토랑에서 개최되었다. “WORLD HAPPINESS”에서 연주되었던 YMO 음원을 이이오 요시후미가 믹스하여 다카하시와 함께 감상하는 내용으로, 그 자리에서 다카하시가 “2013년 WORLD HAPPINESS에는 YMO로서는 출연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2013년 3월 9일, 두 번째로 개최된 “NO NUKES 2013”에 사카모토(오토모 요시히데, Sachiko M, ASA-CHANG와 공동 출연), 호소노, 다카하시(THE BEATNIKS)가 각각 솔로로 출연했다. THE BEATNIKS 공연 후 막간에는 깜짝으로 세 사람이 “Radioactivity”, “Rydeen” 두 곡을 연주했다.

같은 해 12월 21일, EX THEATER ROPPONGI에서 호소노와 사카모토의 합동 라이브 “호소노 하루오미 × 사카모토 류이치”가 개최되었다. 마지막으로 다카하시가 게스트로 등장하여 사카모토의 “TIBETAN DANCE”, 크라프트베르크의 “Radio Activity”에 이어 YMO의 “Rydeen”을 어쿠스틱 편성으로 연주했다. 앵콜로 “Smile”(호소노가 같은 해 음반 ‘Ho So No Va’에서 커버한 곡)을 연주했다[20].

2016년 4월, 사카모토 류이치를 비롯한 아티스트와 에이벡스 그룹이 설립한 프로젝트 commmons의 10주년 기념 이벤트 “commmons10 건강 음악”이 개최되었고, 8일에는 전야제 “다카하시 유키히로의 신세계~출장 특별 편”이 열렸다. 이것은 다카하시가 게스트를 초대하여 매달 개최하던 토크 이벤트의 특별 편으로, 사카모토 류이치가 게스트로 출연했고, 특별 게스트로 호소노 하루오미도 출연했다.

2019년 1월 2일, 호소노의 음악 활동 50주년을 기념하여 BS 프리미엄에서 “호소노 하루오미 옐로우 매직 쇼 2”가 방송되었다[21]. 전회에 이어 18년 만에 세 사람이 “도테라 YMO”로 “Rydeen”을 연주했고, 더불어 출연한 호시노 겐이 합류하여 “Firecracker”를 연주했다. 2018년 6월 23일, 호소노는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 영국 데뷔 솔로 콘서트를 열었고, 다카하시와 사카모토도 무대에 합류하여 “Absolute Ego Dance”를 선보였다. 또한 같은 해 12월 1일 개최된 호소노의 음악 활동 50주년 기념 이벤트 “옐로우 매직 쇼 3”에서 다카하시가 게스트로 출연했고, 사전 녹화 영상으로 사카모토가 출연했다. 영상 속 사카모토와 세 사람이 “COSMIC SURFIN’”과 “ABSOLUTE EGO DANCE”를 연주했다[22]. 이것이 YMO 멤버들이 함께한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2023년 1월 11일, 다카하시가 오랫동안 투병해 온 뇌종양으로 인해 흡인성 폐렴을 동반하여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반 후인 3월 28일, 암 투병 중이던 사카모토도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카하시 사망 소식이 발표된 1월 15일 아침, 사카모토는 애도의 뜻을 표현한 듯한, 댓글이 없는 무지 회색 한 색깔의 이미지만 SNS에 게시했다[23]. 그리고 사카모토 사망 소식이 발표된 다음 날인 4월 3일, YMO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호소노도 비슷한 무지 회색 이미지를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며 애도를 표했다[24].

다카하시와 사카모토의 사망으로 YMO는 그룹으로서의 활동이 불가능해졌고, 1978년 이후 해산(혹은 활동 중단)과 휴지 기간을 거쳐 45년간의 활동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기술적 측면

전자 기술

YMO는 일본에서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대대적으로 상업 음악에 도입한 선구자[25]였다. 또한, 그때까지 뮤지션의 직접 연주가 일반적이었던 라이브 공연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 연주를 도입한 점에서도 동아시아권에서는 혁신적이었다.

그 이전의 신시사이저는 음향 효과 제작이나 기존 악기의 대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웬디 카를로스조차 클래식에서 전향한 사람이었고, 신시사이저와 자동 연주로만 만들 수 있는 음악을 제작하려고 했던 사람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실제 녹음에서는 직접 연주 파트, 라이브 드럼 연주가 많았다.

YMO 결성 당시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클릭 소리에 맞춰 연주할 수 있는 뮤지션은 극소수였지만, 호소노, 사카모토, 타카하시는 클릭과의 동기화에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연주자였을 뿐 아니라 음악과 음색에 대한 탐구심도 강했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라이브는 신종 악기 전시회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확한 클릭 소리에 맞춰 연주하는 스타일은 결성 초기 내건 “그루브의 철저한 배제”가 배경에 있었지만, 금방 질려 버리고 민족 음악과 클릭 연구를 거듭하는 중 1박을 24분할하여 전박과 후박의 비율을 14:10로 하자 에이사에 가까운 비트를 얻게 된 것이 “ABSOLUTE EGO DANCE”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YMO의 신시사이저와 자동 연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여기에는 프로그래머 마츠타케 히데키의 존재가 큽니다. 레코딩과 라이브에서 음악 데이터를 시퀀서에 입력하는 자동 연주는 마츠타케가 도맡아 했습니다.

주요 연주 장비

YMO가 사용했던 연주 장비 중 대표적인 것을 꼽습니다. 극초기에는 멤버들의 개인 장비도 사용했지만, 대부분은 마츠타케 히데키의 회사인 유한회사 MAC으로부터 렌탈한 것이었습니다.

초기

  • 모그 III-c마츠타케 히데키가 사용했던 대형 모듈러 신시사이저, 통칭 “장롱”. 간단한 프레이즈나 SE 연주도 했습니다. 멀티테이프로만 녹음된 멀티 녹음에는 필수적인 클릭 소리도 이 기기로 만들었습니다.)
  • 폴리모그(사카모토의 개인 소유물. 1st 음반과 라이브에서 사용)
  • 코르그 VC-10(보코더
  • 롤랜드 VP-330(보코더)(보코더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CASTALIA”에서는 보코더가 아닌 이 기기에 내장된 앙상블 기능(합창 음색)을 이용해 멜로디 연주를 했습니다.)
  • 아프 오디세이(베이스와 리드로 많이 사용. 사카모토는 YMO 결성 전 아프 오디세이 명수[footnote 6]로 알려져 있으며, “동풍” PV에서는 사카모토의 개인 소유물(MkI, 흰색 패널·이름 표기)도 볼 수 있습니다. 초기부터 제1회 월드 투어에서는 “천 개의 칼” 등에서 사카모토가 솔로 파트로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띄는 데다, 제2회 월드 투어까지 호소노가 신스 베이스로 사용했습니다. 2007년 기린 라거 맥주 텔레비전 CM에서도 호소노가 신스 베이스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호소노가 사용한 모델은 현재 당시 자신의 회사에서 YMO에 신스를 대여했던 프로그래머 마츠타케 히데키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 코르그 PS-3100(호소노의 개인 소유물로, 라이딘의 말이 달리는 SE는 이것으로 만들고 직접 연주했다고 합니다. 사카모토도 소유하고 있으며 “동풍” PV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시퀀셜 서킷 프로페트 5(YMO가 사용한 신스의 대표. 사카모토는 가장 사용하기 쉽고 마음에 들어 했다고 후에 말했습니다[26]. 개인 소유하고 있습니다.)
  • 폴라드 신드럼 Model 477(신스 드럼)
  • ULT-SOUND(동양악기)DS-4·DS-4 Custom(신스 드럼)
  • E-MU 커스텀 모듈(대형 모듈러 신시사이저. 제2회 월드 투어 이후 사용)
  • BIAS(이시바시 악기)BS-1·BS-2(드럼 후프에 부착하는 타입의 신스 드럼. 타카하시의 주문에 따라 BS-1의 음색에 화이트 노이즈가 추가된 타입이 BS-2.)
  • 오버하임 8보이스(1st 음반과 라이브에서는 서포트 키보디스트였던 야노 아키코가 사용)
  • 모그 멀티무그(호소노가 신스 베이스로 사용. 메모리를 가지지 않은 아프 오디세이와 번갈아 사용되었습니다.)
  • 롤랜드 JUPITER-4(라이브에서는 사카모토가 사용. 제2회 월드 투어 때 프로페트 5가 고장났을 때 메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EMS VCS3(주로 SE 등에 사용)
  • 모그 16 Channel Vocoder(보코더. “테크노폴리스 2000-20”에서만 사용)
  • 모그 mini moog(“동풍”의 파파파라는 흥얼거림 소리에서만 사용)
  • 야마하 E1010(아날로그 딜레이) (YMO에서 많이 사용되었기에 “YMO 딜레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기

  • 시퀀셜 서킷 프로페트 5(이 시기부터 라이브에서도 모든 멤버가 사용)
  • 롤랜드 TR-808(리듬 머신. 당시 호소노가 가장 좋아하는 장비였습니다.)
  • 롤랜드 JUPITER-8(이것으로 “MASS”나 “만남”의 아르페지오 패턴이 연주되었습니다.)
  • E-MU 커스텀 모듈
  • LMD-649샘플러
  • E-MU 에뮬레이터 [27](샘플러. 윈터 라이브 1981 이후 사용)

후기

  • 시퀀셜 서킷 프로페트 5
  • 롤랜드 JUPITER-8
  • 린 드럼 LM-1 / LM-2드럼 머신. 사카모토가 개인 소유하고 있으며, 후에 사카모토가 엑솔의 CM곡에 사용했고, CM곡을 연주하는 사카모토의 악기 세트에 포함되어 사카모토와 함께 CM에 등장했습니다. 또 호소노도 솔로 음반 『필하모니』와 마츠다 세이코의 『천국의 키스』에서 사용했습니다.)
  • 시몬스 SDS-5(일렉트로닉 드럼. 하지만 산개 라이브의 시몬스는 베이스 드럼·스네어 패드는 시몬스의 음원이 아니고, 린 드럼의 외부 트리거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 시퀀셜 서킷 프로페트 T8(산개 라이브에서만 사용)

기술의 발전에 따라 디지털 신시사이저도 사용되었습니다.

후기에는 신시사이저 렌탈처가 MAC에서 다른 회사로 변경되었습니다.

재생

  • 코르그 M1
  • 아프 오디세이
  • 롤랜드 JUPITER-8
  • E-MU VINTAGE KEYS
  • 코르그 01/WproX

2007년부터의 재활동

  • 야마하 MOTIF XF 7
  • 시퀀셜 서킷 프로페트5
  • 코르그 마이크로X
  • 롤랜드 SPD-S (샘플링 패드. 샘플링 기능 탑재 일렉트릭 퍼커션)

샘플링

테크노데릭』 항목 참조.

자동 연주

사카모토는 “피아노 레슨을 거의 제대로 하지 않았다[28]”고 회상하는 경우가 많지만, 피아노 생연주를 할 기회는 동시대 뮤지션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액션이 가벼운 전자 키보드 조작은 용이했다. 자동 연주처럼 들리는 「테크노폴리스」의 시퀀스 패턴이나, 「라이딘」의 멜로디는 손으로 직접 연주한 것이다[29].

초기에는, 시퀀서 MC-8을 마츠타케 히데키가 조작했다. 컴퓨터에 입력하려면, 연주를 일단 악보로 옮길 필요가 있었고, 그 작업을 사카모토가 했지만, 그때 사카모토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어레인지먼트를 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록, 팝스의 기반에 클래식의 흐름을 잇는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편곡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호소노 등 멤버 자신들이 외부 건반으로 실시간 입력이 가능한 시퀀서 MC-4가 등장하는 『BGM』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음반 『바람둥이 우리들』부터는, YMO 멤버 자신들이 시퀀서를 이용하게 되고, 그때까지 전면적으로 협력했던 마츠타케가 제작에서 빠졌다.

드럼

  • YMO에서의 드럼은 주로 다카하시 유키히로가 담당했다. YMO의 드럼 연주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심벌즈를 사용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스튜디오 레코딩 음원에 공통). 하지만 후기에는 요소요소에서 크래시 심벌즈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섀도우스 온 더 그라운드, 퍼스펙티브 등).
    • 필인에는 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거의 스네어를 사용한다
  • YMO 결성 당시, 드럼 녹음은 스네어, 큰북, 하이햇 등을 모두 동시에 녹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YMO에서는 각 파트를 별도의 트랙에 녹음했다. 그 때문에 당시 엔지니어나 관계자에 따르면, YMO의 녹음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또, 예를 들어 하이햇만 녹음할 때는, 하이햇 이외의 드럼 세트에는 이불을 칭칭 감아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고 다른 드럼 세트도 두드리는 등 그루브감이 나도록 연구하기도 했다.
  • 초기 음반에서는 생드럼의 음색을 그대로 사용했다. 당시 알파 레코드스튜디오 벽에는 돌이 박혀 있었고, 특수한 잔향에 의한 경질적인 드럼 음색이 특징이다.
  • 초기부터 80년 월드 투어 때까지, 라이브에서는 대신 신스 드럼을 음향효과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신스 드럼 패드 하나당 나오는 소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투어를 거듭할수록 신스 드럼의 수는 늘어났다. 하지만 81년 윈터 라이브부터는 사용하지 않게 된다.
  • 80년 월드 투어 때는 튜닝이 다른 스네어를 두 대 준비하고, 양쪽에 BIAS BS-1 (이시바시 악기의 오리지널 브랜드)을 장착하고, 또 그중 한 대에 버커스베리의 픽업을 장착하여 E-MU 커스텀 모듈에 연결하여 잡음을 추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트리거[필요시 명확화]의 상태에 따라 잡음이 나오거나 나오지 않았다. 무도관 공연만 BS-2가 사용되었다.
  • 음반 『BGM』의 「U・T」에서는, 노이즈 게이트 기재 「Kepex」를 사용한 게이트 에코를 이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드럼 소리에 롱 에코 (철판 에코·리버브)를 걸고, 여운 부분을 강제로 자르는 것으로, 인공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수법은, 전년에 「열린 마음-자성기-」이나 다카하시의 솔로 음반 『음악 살인』의 「THE CORE OF EDEN」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 또, 음반 『BGM』부터는, 롤랜드리듬 머신TR-808」을 도입했다. 전년 말에 행해진 무도관 공연에서의 「천 개의 칼」의 인트로에서 사용된 것이 처음이다.
  • 음반 『테크노데릭』 이후에서는, 수제 샘플러 「LMD-649」를 사용하여, 샘플링 음원에 의한 드럼을 실현하고 있다. 샘플링의 음원은 드럼통이나 문의 손잡이를 두드린 소리, 공사장 소리, 사람의 음성 등을 채용하고 있다. 바로 다음 윈터 라이브에서는 LMD-649를 트리거 박스에 연결하여, 손이나 드럼 스틱으로 두드려 사용했다. 하지만 다카하시도 회상하고 있듯이, 진동에 약하기 때문에, 약간의 진동으로 소리가 나 버리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30].
  • 음반 『바람둥이 우리들』에서는 일변하여 「린 드럼」을 사용하는 등, 기술의 발전에 동기한 음악 제작을 하고 있다. 1983년 해산 라이브에서는, 시몬스의 일렉트로닉 드럼을 트리거로 하여 린 드럼을 울리는 등,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었다.
  • 드럼의 자동 연주가 가능한 환경이 되었어도, 인간 특유의 “노리”를 완전히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사람이 두드리는 드럼을 이용한 경우도 있다.
  • 해산 라이브에서, 드럼을 치면서 노래하는 것은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있고, 노래에 전념하고 싶다고 생각한 다카하시는, 기본적으로 간단한 퍼커션과 단음의 신스 사운드만 담당할 뿐 보컬에 전념하고, 드럼은 「동풍」「비하인드 더 마스크」「Solid State Survivor」「파이어 크래커」「테크노폴리스~라이딘」 등 초기의 곡을 중심으로 한 라이브 서두와 마지막 곡에서만 연주했다. 그 때문에 드럼에는 ABC를 탈퇴한 데이비드 버먼이 서포트 멤버로 참가했다[footnote 7].
  • 해산 라이브에서는 전후 이동이 가능한 드럼 세트의 받침대 아래에 퍼커션 세트와 신스가 있는 연설대형 연주 부스가 무대 바닥 근처에 내려온 상태였고, 「중국 여자」의 마지막 순간에, 데이비드가 연주하고 있는 드럼 세트가 받침대째 뒤로 내려가고, 연주 부스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라이브

음반에서는 자동 연주를 많이 사용했던 YMO였지만, 초기 라이브에서는 멤버 + 기타 + 서포트 키보드(초기에는 퍼커션도 있었다) 형식의 생연주가 주였다. 당시 시퀀서(롤랜드 MC-8)의 프레이즈 동시 출력 수에 한계가 있었고(동기 신호 등 연주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음반곡 재현에 한계가 있었던(음반곡은 다중 녹음이었다) 데다, 열에 약하고 작동이 불안정했던 점, 데이터 로딩에 시간이 걸리는 점 등 기재적인 문제가 컸다. 이 형식은 1980년 제2회 월드 투어 「YELLOW MAGIC ORCHESTRA WORLD TOUR '80」까지 이어졌다. 이 투어부터 MC-8도 무대 연주에 적합하도록 CPU 관련에 이 추가되는 개량이 이루어져 안정성이 높아졌다(여기에 연주 중에는 선풍기를 사용했다). 또한 당시 신시사이저는 열 등으로 인해 음정이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1981년에 열린 「윈터 라이브 1981」에서는 멤버 + 마츠타케 히데키 스타일이 되었다. 이 라이브에서는 시퀀서에 MC-4가 사용되었고, 각 멤버가 프로펫5, 이뮤레이터를 사용한 것에서 바뀌어 구성이 간소화됨에 따라 기재 수가 줄었다. 이때 이뮤레이터는 MC-4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시퀀서 연결을 위한 CV/게이트 단자가 아직 없었다), 몇몇 팩토리 샘플을 손으로 연주했을 뿐이었다. 또한 일부 연주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곡 재현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MTR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 라이브에서 사카모토는 기타와 드럼도 연주했다.

산카이 라이브에서는 시퀀서가 사용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트랙이 MTR로 연주되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시몬스의 드럼 음과 린 드럼의 음을 섞는 등 참신한 시도도 계속 이루어졌다.

1993년 재생 라이브에서는 세부까지 시퀀서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사용하여 연주되었다. 1998년 다카하시 인터뷰[31]에서 다카하시는 「도쿄 돔그라운드 아래에는 큰 발전기가 있어 맥킨토시(시퀀서로 사용)가 멈춰버릴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미리 녹음한 시퀀서 음을 예비로(시퀀서가 멈춰도 괜찮도록, 즉 앞서 언급한 산카이 라이브와 같이 할 수 있도록) 동기하여 재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포켓이 무지개로 가득 차 있다」만은 테이프 연주였지만, 무대 위에 오픈릴 MTR을 올려놓고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손으로 테이프를 움직여 소리를 내어 가라오케 연주임을 일부러 강조하는 연출을 했다. 이러한 유머 감각도 YMO의 매력이었다.

동기 연주와 그를 위한 헤드폰

동기 연주와 클릭음

  • YMO는 라이브에서 헤드폰을 착용하고 연주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법을 취했다. 이것은 자동 연주와 멤버의 연주를 동기화하기 위한 가이드가 되는 클릭음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 이 클릭음은 무그 III-c의 스텝 시퀀서를 사용하여 연주시켰다.
  • 클릭음은 마츠타케가 컨트롤하는 신시사이저의 필터 발진음으로, 레조넌스를 높여 갔을 때의 자기 발진음을 사용하고 있다.
    • 소리는 「키코 콕코 콕 칵코 콕코 콕」이나 「삐뽀 뽀뽀 뽀빠 뽀뽀 뽀뽀」로 들린다.
    • 음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US판)』에 수록되어 있는 「동풍」 인트로 부분을 자세히 들어보면 「키코, 키코」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을 알 수 있다.
    • 1980년 11월 로스앤젤레스 A&M 스튜디오 공연의 「ALL YOU NEED IS LOVE」-「테크노폴리스」에서 곡 사이를 자세히 들어보면 「키코카코 음」을 들을 수 있다. 동 공연의 TV 방송에서는 동 부분과 「동풍」이 시작되기 전에 상당한 음량으로 들렸다.

헤드폰

  • 헤드폰을 착용하면, 일반적인 라이브에서는 들리는 각 멤버의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멤버가 내는 소리를 PA에서 되돌려 보낼 때, 모니터 스피커로 보내지 않고 큐 박스라는 간이 믹서로 보내 클릭음과 섞어서 들었다.
    • 이 큐 박스는 그리스 극장 공연 직전에 며칠 밤샘 작업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최신 회로와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것에 비해 매우 고음질이면서 고가였다.
  • 헤드폰은 빅터의 HP-550을 자주 사용했고, 슈어의 SM-10A 헤드셋 마이크와의 조합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 초기 라이브에서 야노 아키코가 사용했던 것은 젠하이저의 HD414이다. 이것은 다른 멤버가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동풍」 PV에서도 멤버 3명이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음반 『Solid State Survivor』에 수록되어 있는 「Solid State Survivor」에서는 헤드폰을 마이크 대신 사용하는 부분이 있다.
  • 헤드폰 착용으로 인해 관객의 박수나 환호성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연주가 없는 부분이나 곡 사이에 헤드폰을 살짝 벗어 관객의 반응을 확인했다.

라이브에서의 동기 연주

  • YMO 초기 라이브에서는 실제로 클릭음을 들으면서 연주했던 곡은 절반 정도였다. 제1차-2차 월드 투어 당시의 「코즈믹 서핑」이나 「Solid State Survivor」, 「라디오 펑크」, 「데이 트리퍼」, 「중국 여자」 등은, 후의 다카하시의 코멘트[32] 등으로부터 일반적인 밴드처럼 드럼에 맞춰 연주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멤버는 기기 트러블로 시퀀서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라이브에서 어떤 곡목이 시퀀서를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았는지는 그리스 극장 공연의 「코즈믹 서핑」을 제외하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 시퀀서에 한 곡의 데이터를 로드하는 데 한 곡 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시퀀서를 사용하는 곡 다음에는 클릭음을 사용하지 않는 곡을 배치하여, 시퀀서 미사용 곡을 연주하는 동안 다음 곡의 데이터를 로드하는 장치를 했다.
  • 제2회 월드 투어부터는 무그 III-C 외에 E-MU의 모듈러 시스템도 등장하여 예비 기기를 포함해 3대의 MC-8을 도입하여 시퀀서를 사용한 연주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교대로 자동 연주라면 2대의 MC-8로 충분하지만, 마츠타케는 1대의 MC-8을 연주 중, 2대의 MC-8로 다음 곡의 같은 데이터를 동시에 로드하고 로드 에러에 대비했다). 이 당시 소니의 카세트 덴스케를 데이터 스토어(기억 장치)로 이용했다[33].
  • 초기 시퀀서 MC-8은 열에 약해서 라이브 연주 중에 데이터가 모두 사라지는 등의 문제가 많았다. 그런 경우에는 곡 순서를 바꾸거나 당시 기타 담당이었던 와타나베 카즈미가 즉석에서 카팅 연주를 하고 멤버들도 거기에 맞춰 연주하는 등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footnote 8].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 것은 YMO 멤버와 서포트 멤버들에게 고도의 연주 기술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멤버들의 정신적 부담은 컸고, 호소노는 세월이 흘러서도 “무대에 서도 연주할 수 없다”는 꿈을 꿀 정도였다고 한다.
  • 1980년 1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으로 위성 중계된 라이브에서는, 첫 곡인 라이엇 인 라고스에서 마쓰타케가 기계 스위치를 누르는 순서를 잘못하는 바람에 클릭 소리가 MC-8 연주보다 16분 음표 하나만큼 늦게 나왔고, 다카하시가 뒤쪽에 있는 마쓰타케를 향해 고개를 옆으로 저는 장면이 보인다. 이때는 MC-8 연주 파트를 인트로 8마디 연주 후쯤 잘라서 클릭만으로 연주했다. 시퀀스 자체는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간주 후 B파트 부분에서 조금씩 소리를 냈다.
  • 산카이 라이브에서는 사카모토가 곡이 시작되기 2마디 전부터 몸을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장면이 보이는데, 클릭 소리에 연주를 동기화시키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때는 모두 MTR이었다).

영향

음악

1990년대 이후 활동하는 일본 음악가 중에는 YMO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하는 음악가가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YMO 칠드런 세대”라고 불리기도 한다[34].

음악 외

  • 하나와 노부유키(만재 콤비 나이츠, 만재 협회 회장) - 하나와는 YMO 결성년도인 1978년생이므로 후발 팬이다. 학창 시절 『덴키 그루브의 올 나이트 닛폰』을 듣고 덴키 그루브가 영향을 받은 YMO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 큰형이 YMO의 음반을 가지고 있어서 들어보니 푹 빠졌다. YMO 곡의 일정한 리듬이 계속되다가 중간에 불협화음 같은 소리가 들어가는 패턴에 영향을 받아 하나와가 쉴 새 없이 작은 개그를 연발하고, 중간중간 츠치야 신노스케가 츳코미하는 만재 스타일이 생각났다.

라이브 지원 멤버

여기서 "초기"란, 제1회 월드 투어(라이브 방식으로 구분했을 때, 그리스 극장의 튜브스 전좌도 제1회 월드 투어에 포함) 이전의 라이브를 가리킨다.

  • 야노 아키코 / 키보드 & 백 보컬(제1회 월드 투어, 제2회 월드 투어)
    야노 자신의 곡 「재광동소년」에서는 메인 보컬을 맡았다. 월드 투어에서는 통역이나 현지 언론 대응 역할도 맡았다. 1979년 자신의 라이브에는 YMO 3명이 게스트로 참가했다. 그때 야노가 작사한 「동풍」을 공개했다. 제1회 월드 투어 당시 딸인 사카모토 미우를 임신 중이었다.
  • 와타나베 카즈미 / 기타(초기 - 제1회 월드 투어)
    기이국야 홀 라이브에서는 자신의 밴드 멤버가 참가했다.
  • 아유카와 마코토 / 기타(초기, 테크노폴리스 2000-20, 1980년 4월 5일, 4월 9일~15일, 샤가쿠사이)
    시이나 & 더 로케츠 멤버. 1978년 12월 도쿄 롯폰기의 라이브 하우스 「핏인」에서 열린 라이브에도 참가. DEVO, 롤링 스톤스 두 버전의 커버 「(I Can't Get No) Satisfaction」 연주에서는 메인 보컬을 맡았다. 또한, 제1회 월드 투어 이후인 1979년 12월 19일 나카노 선플라자 공연이나 제2회 월드 투어 이후 일본무도관 공연의 전좌는 시이나 & 더 로케츠가 맡았다. 2023년 1월 29일 사망(74세).
  • 카자마 미키야 / 퍼커션(1978년 12월 10일 기이국야 홀)
  • 마츠모토 히로시 / 키보드(1978년 12월 10일 기이국야 홀)
    카자마, 마츠모토 모두 와타나베 카즈미의 밴드 멤버다.
  • 오무라 켄지 / 기타 & 백 보컬(테크노폴리스 2000-20, 샤가쿠사이, 제2회 월드 투어)
    제2회 월드 투어에서는 자신의 곡 「MAPS」의 메인 보컬을 맡았다. 테크노폴리스 2000-20에서는 감기성 내이염으로 일시적으로 멤버에서 빠졌지만, 복귀 시에는 아유카와 마코토와의 더블 기타를 선보였다(샤가쿠사이에서도 아유카와와 더블 기타를 선보였다). 1998년 11월 18일 사망(49세).
  • 마츠타케 히데키 / 프로그래밍·SE(초기 - 윈터 라이브 1981)
  • 야노 마코토 / 키보드(초기)
    위에 언급된 야노 아키코(구성: 스즈키)의 배우자(후에 이혼). FM도쿄의 「사운드 카니발」공개 녹음(도쿄 우편 저축회관 공연)의 MC에서 「아마노 마코토」로 잘못 읽혔다.
  • 하야시 타다오 / 퍼커션(1978·도쿄 우편 저축회관에서의 라이브에만 참가)
    호소노 하루오미의 밴드, 틴 팬 앨리의 드럼 연주자.
  • 하시모토 카즈코 / 키보드&백 보컬(테크노폴리스 2000-20)
    야노 아키코 산휴 때문에.
  • 후지모토 아쓰오 / 기타&백 보컬(테크노폴리스 2000-20, 1980년 4월 4일, 4월 5일, 4월 7일)
  • 후지이 조지 / 기타(테크노폴리스 2000-20, 1980년 4월 1일)
    당시 본업은 YMO의 소속 사무소였던 요로시타 뮤직의 스태프로, 원래는 드럼 연주자 겸 프로그래머. 급거 등판하게 되었지만 와타나베·오무라와는 달리, 간단한 코드밖에 연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카모토가 솔로 파트를 늘리는 것으로 대처했다.
  • 타치바나 하지메 / 색소폰(윈터 라이브 1981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 「츠바키 하우스」에서의 라이브에만 참가)
  • 우메바야시 시게루 / 기타(윈터 라이브 1981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 「츠바키 하우스」에서의 라이브에만 참가)
  • 데이비드 파머 / 드럼(산개 라이브)
    다카하시의 요청에 따라 참가했지만, 당시 소속되어 있던 ABC의 스케줄과 겹쳐 버렸기 때문에, ABC를 탈퇴하고 참가했다.
  • GOH HOTODA / 프로그래밍·SE(1993·재생 라이브)
  • 크리스티앙 페네스 / 기타·일렉트로닉스(2008·런던&히혼, 2011·WORLD HAPPINESS: FUJI ROCK FESTIVAL)
  • 오야마다 케이고 / 기타(2009&2010&2011·WORLD HAPPINESS, 2011·FUJI ROCK FESTIVAL)
  • 타카다 렌 / 스틸 기타(2008·런던&히혼, 2009&2010·WORLD HAPPINESS)
  • 곤도 토모히코 / 유포니움·플뤼겔호른·컴퓨터 오퍼레이팅(2008·런던&히혼, 2009&2010&2011·WORLD HAPPINESS, 2011·FUJI ROCK FESTIVAL)
    곤도는 HAS 이후, 장기간에 걸쳐 컴퓨터 오퍼레이팅을 담당하고 있다.

녹음 참가 멤버는 각 음반 항목을 참조

작품

이하는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혹은 「YMO」명의의 것으로, 「HASYMO」명의의 것은 제외하고 있다.

싱글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footnote 9] 수록 음반
1st 1979년 10월 25일 (1979-10-25) 테크노폴리스
(TECHNOPOLIS)
알파 레코드 7인치 ALR-1016 9위 Solid State Survivor
2nd 1980년 6월 21일 (1980-06-21) 라이딘
(RYDEEN)
ALR-701 15위
3rd 1980년 12월 20일 (1980-12-20) 타이튼 업
(TIGHTEN UP)
ALR-725 43위 증식
4th 1981년 4월 21일 (1981-04-21)
(CUE)
ALR-731 - BGM
5th 1981년 9월 5일 (1981-09-05) 매스
(MASS)
ALR-742 -
6th 1982년 2월 21일 (1982-02-21) 체조
(Taiso)
ALR-751 - 테크노델릭
7th 1983년 3월 25일 (1983-03-25) 君に、胸キュン。 알파 레코드/YEN YLR-704 2위 浮気なぼくら
8th 1983년 7월 27일 (1983-07-27) 過激な淑女 YLR-707 15위 앨범 미수록
9th 1983년 9월 28일 (1983-09-28) 以心電信
(YOU'VE GOT TO HELP YOURSELF)
YLR-709 23위 サーヴィス
10th 1993년 4월 28일 (1993-04-28) ポケットが虹でいっぱい
(Pocketful of Rainbows)
도시바 EMI/EASTWORLD 미니 CD TODT-3040 13위 テクノドン
11th 1993년 8월 25일 (1993-08-25) ビー・ア・スーパーマン
(BE A SUPERMAN)
TODT-3095 76위
12th 2007년 2월 3일 (2007-02-03) RYDEEN 79/07 commmons 디지털 다운로드 - 1위 앨범 미수록
13th 2012년 8월 1일 (2012-08-01) Fire Bird - -

오리지널 음반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1st 1978년 11월 25일 (1978-11-25)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YELLOW MAGIC ORCHESTRA)
알파 레코드 LP
CT
ALR-6012
ALC-1511
69위
-  1979년 5월 30일 (1979-05-30)
 1979년 7월 25일 (1979-07-25)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미국판)
(YELLOW MAGIC ORCHESTRA)
 A&M 레코드
 알파 레코드
 SP736
 LP: ALR-6020
CT: ALC-1533
20위
2nd 1979년 9월 25일 (1979-09-25) Solid State Survivor
(SOLID STATE SURVIVOR)
알파 레코드 ALR-6022
ALC-1519
1위
3rd 1980년 6월 5일 (1980-06-05) 増殖
(X∞MULTIPLIES)
10인치
CT
YMO-1
ALC-22001
4th 1981년 3월 21일 (1981-03-21) BGM LP
CT
ALR-28015
ALC-28014
2위
5th 1981년 11월 21일 (1981-11-21) 테크노델릭
(TECHNODELIC)
ALR-28030
ALC-28029
4위
6th 1983년 5월 24일 (1983-05-24) 바람둥이 우리들
(NAUGHTY BOYS)
알파 레코드/YEN YLR-28008
YLC-28008
1위
7th 1983년 12월 14일 (1983-12-14) 서비스
(SERVICE)
YLR-28013
YLC-28011
5위
8th 1993년 5월 26일 (1993-05-26) 테크노돈
(TECHNODON)
도시바 EMI/EASTWORLD CD TOCT-8010 2위

리믹스 음반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비고
1st 1983년 7월 27일 (1983-07-27) 바람둥이 우리들 (인스트루멘탈)
(NAUGHTY BOYS (INSTRUMENTAL))
알파 레코드/YEN LP
CT
YLR-20002
YLC-20002
18위
2nd 1986년 3월 25일 (1986-03-25) Y.M.O. 메가 믹스 알파 레코드 LP ALR-18002 -
3rd 1990년 9월 25일 (1990-09-25) YMO 90년대 피트 로리머 리믹스
(YMO IN THE '90S THE PETE LORIMER REMIX)
알파 레코드 CD ALCA-81 87위
4th 1992년 6월 21일 (1992-06-21) 하이테크/노크라임
(HI-TECH / NO CRIME)
알파 레코드/SPIN ALCA-323 80위
5th 1992년 12월 16일 (1992-12-16) 네오 테크노폴리스……번식 에이벡스 트랙스 AVCD-11093 -
6th 1993년 3월 21일 (1993-03-21) 레이브 테크노폴리스 도쿄/메가 레이브 프로젝트 소니 레코드 SRCL2581 -
7th 1993년 4월 21일 (1993-04-21) YMO 대 휴먼 리그 알파 레코드 ALCA-475 - 휴먼 리그에 의한 리믹스
8th 1993년 6월 9일 (1993-06-09) 테크노돈 리믹스 I 도시바 EMI/EASTWORLD TOCT-8050 18위
9th 1993년 7월 14일 (1993-07-14) 테크노돈 리믹스 II TOCT-8070
10th 1993년 9월 21일 (1993-09-21) YMO 하이테크/U.S.크라임 알파 레코드 ALCA-527 - HI-TECH / NO CRIME의 해외 발매 버전
11th 1993년 10월 21일 (1993-10-21) 후즈 YMO ALCA-533 - 일본 음악 뮤지션에 의한 리믹스 모음
12th 1995년 10월 25일 (1995-10-25) 유로돈 (EURO-DON) 최첨단 CTCC-52003 -
13th 2000년 11월 22일 (2000-11-22) YMO 리믹스 테크노폴리스 2000-00 빅터 엔터테인먼트 LP(2장)
CD
VIJL-60073/4
VICL-60653
52위
14th 1999년 11월 3일 (1999-11-03) YMO 리믹스 테크노폴리스 2000-01 VIJL-60045/6
VICL-60483
25위
15th 2001년 4월 4일 (2001-04-04) 주니어스 매직 오케스트라 (Junior's Magic Orchestra) 프런트 라인 레코드 CD KMCT-7006 -
16th 2001년 4월 25일 (2001-04-25) J.M.O. 애프터 서비스 - 논스톱 믹스- KMCT-7007 -
17th 2005년 3월 24일 (2005-03-24) YMO 리믹스 99-00 베스트 빅터 엔터테인먼트/빅터 VICL-61599 -
18th 2009년 3월 25일 (2009-03-25) YMO 리믹스 99-00 베스트 컴플리트 에디션 VICL-63289 -

라이브 음반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1st 1980년 2월 21일 (1980-02-21) 퍼블릭 프레셔 (PUBLIC PRESSURE) / 공적 억압 알파 레코드 LP
CT
ALR-6033
ALC-1530
1위
2nd 1984년 2월 22일 (1984-02-22) 애프터 서비스 (AFTER SERVICE) 알파 레코드/옌 LP(2장)
CT
YLR-40001/2
YLC-40001
2위
3rd 1991년 5월 21일 (1991-05-21) 페이커 홀릭 (FAKER HOLIC YMO WORLD TOUR LIVE) 알파 레코드 CD(2장) ALCA-137/8 50위
4th 1992년 11월 21일 (1992-11-21) 컴플리트 서비스 (COMPLETE SERVICE) ALCA-421/2 -
5th 1993년 8월 25일 (1993-08-25) 테크노돈 라이브 (TECHNODON LIVE) 도시바 EMI/이스트월드 CD TOCT-8090 12위
6th 1993년 11월 21일 (1993-11-21) 라이브 앳 부도칸 1980 (LIVE AT BUDOKAN 1980) 알파 레코드 ALCA-543 87위
7th 1993년 12월 21일 (1993-12-21) 라이브 앳 기노쿠니야 홀 1978 (LIVE AT KINOKUNI-YA HALL 1978) ALCA-9052 55위
8th 1995년 11월 22일 (1995-11-22) 윈터 라이브 1981 (WINTER LIVE 1981) 알파 뮤직 ALCA-5055 -
9th 1996년 5월 22일 (1996-05-22) 월드 투어 1980
(WORLD TOUR 1980)
CD(2장) ALCA-5065/6 59위
10th 1997년 3월 26일 (1997-03-26) 라이브 앳 그릭 씨어터 1979
(LIVE AT GREEK THEATER 1979)
CD ALCA-5150 -
11th 2008년 12월 10일 (2008-12-10) 런던이모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라이브 인 런던 15/6 08 commmons CD(2장) RZCM-46100 76위
12th 히혼이모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라이브 인 히혼 19/6 08- RZCM-46102 89위
13th 2015년 8월 5일 (2015-08-05) 노 누크스 2012 CD RZCM-59939

베스트 음반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비고
1st  1980년 7월 29일 (1980-07-29)
 1980년 9월 5일 (1980-09-05)
X∞멀티플라이즈  A&M 레코드
 알파 레코드
LP  SP4813
 ALR-28004
 177위
 7위
해외에서는 2집 음반으로 발매한 것을 역수입하여 베스트 음반으로 판매
2nd 1982년 10월 (1982-10) YMO 베스트 셀렉션 알파 레코드 CT ALC-30001 - 카세트 스테레오용 베스트 음반
3rd 1984년 12월 21일 (1984-12-21) 실드
(SEALED)
알파 레코드/YEN LP(4장)
CT(4개)
YLR-80001/4
YLC-80001/4
- 해산 기념 베스트 음반
4th 1987년 11월 28일 (1987-11-28) Y.M.O. 히스토리 알파 레코드 CD(2장) 50XA-191/2 -
5번째  1991년 (1991)
 1992년 (1992)
 1992년 7월 21일 (1992-07-21)
쿄레츠나 리즘
(KYORETSU NA RHYTHM)
 레스틀레스 레코드영어판
 레스틀레스 레코드
 알파 레코드
CD  7 72574-2
 LS 9189 2
 ALCA-331
 61위 해외에서 리마스터링된 음원을 사용한 베스트 음반
6번째 1997년 8월 27일 (1997-08-27) 슈퍼 베스트 오브 YMO
(SUPER BEST OF YMO)
알파 뮤직 CD ALCA-5199/200 -
7번째 1998년 8월 29일 (1998-08-29) 위 러브 YMO ALCA-5246 - 오리콘과의 타이업 베스트 음반
8번째 1999년 9월 22일 (1999-09-22) YMO 고 홈! 도시바 EMI/이스트월드 CD(2장) TOCT-24231/2 6위 호소노 프로듀스 베스트 음반
9번째 2000년 4월 26일 (2000-04-26) 원 모어 YMO CD TOCT-24315 23위 다카하시 프로듀스 베스트 음반
10번째 2003년 8월 6일 (2003-08-06) UC YMO 소니 뮤직 다이렉트/GTmusic CD(2장)
SACD(2장)
MHCL-295/6
MHGL-1/2
14위 사카모토 프로듀스 베스트 음반
11번째 2011년 6월 15일 (2011-06-15) YMO CD MHCL-20123 30위 멤버 프로듀스 베스트 음반

컴필레이션 음반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비고
1번째 1995년 12월 13일 (1995-12-13) 오버 시즈 컬렉션
(OVER SEAS COLLECTION)
알파 뮤직 CD(2장) ALCA-5056/7 98위 해외용 싱글 모음집
2번째 2018년 10월 17일 (2018-10-17) 노이에 탄츠 소니 뮤직 다이렉트/GTmusic LP
Blu-spec CD2
MHJL-49
MHCL-30538
8위 결성 40주년 기념 컴필레이션 음반

박스 세트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비고
1st 1992년 8월 21일 (1992-08-21) 테크노 바이블
(TECHNO BIBLE)
알파 레코드 CD(5매입) ALCA-371/4,H12-19 10위 한정 1만 세트
2nd 1993년 7월 21일 (1993-07-21) YMO 아날로그 싱글 박스 7인치(9매입) ALKA-1/9 - 아날로그 싱글 모음집
3rd 1993년 9월 21일 (1993-09-21) 큐빅 - YMO CD 싱글 박스 미니 CD(10매입) ALDA-91/100 - CD 싱글 모음집
4th 1994년 1월 21일 (1994-01-21) YMO LP 박스 LP(14매입) ALJA-1/13 -
5th 1994년 3월 23일 (1994-03-23) 테크노돈 박스 도시바 EMI/이스트월드 CD(4매입) TOCT-8326/9 - YMO(낫 와이엠오) 명의로 발매한 4장의 음반을 모은 것
6th 2005년 3월 24일 (2005-03-24) L-R 트랙스 라이브&레어 트랙스 소니 뮤직 다이렉트/GT뮤직 CD(8매입) MHCL-501/8 - 라이브 음반 모음집
7th 2008년 12월 10일 (2008-12-10) EU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라이브 인 런던+히혼 2008- 코몬즈 CD(4매입)+티셔츠 포함 한정 박스 사양 RZCM-46096X 85위 HASYMO 명의로 진행된 두 개의 라이브 음원과 티셔츠의 한정 박스

트리뷰트 음반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비고
1st 2002년 9월 25일 (2002-09-25) A 뮤지컬 트리뷰트 YMO 트랜스 유니버설 뮤직 CD UPCH1190 -
2nd 2004년 9월 8일 (2004-09-08) 트리뷰트 투 YMO 뮤직마인 ID IDCA1018 -
3rd 2005년 8월 24일 (2005-08-24) A 뮤지컬 트리뷰트 YMO 엔-트랜스 사이트론 디지털 콘텐츠 SCDC00456 -
4th 2011년 9월 1일 (2011-09-01) YMO 리웨이크 일렉트릭 쉽 ELSP-2 -
5th 2011년 9월 7일 (2011-09-07) 우쿨렐레 YMO 그리고 그 주변 옥타브 OTCD-2317 -

커버 음반

발매일 아티스트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비고
1st 1993년 5월 21일 (1993-05-21) 카바노카이 YMO의 카바 알파 레코드 CD ALCA-489 - 쿠와하라 시게이치 프로듀스
2nd 1993년 10월 21일 (1993-10-21) 속 YMO의 카바 ALCA-532 -
3rd 1998년 2월 25일 (1998-02-25) 코스믹 빌리지 나이스 에이지 알파뮤직 ALCA-5227 -
4th 메탈 서비스 옐로우 메탈 오케스트라 ALCA-5228 -
5th 1998년 12월 16일 (1998-12-16) YMO & 폭소문제나가이 히데카즈 증장 ALCA-5250 - YMO 결성 20주년 기획 음반. 쿠와하라 시게이치 프로듀스, 수록곡은 거의 동일하며, 코미디 부분을 폭소문제와 나가이 히데카즈로 바꾼 음반
6th 2000년 4월 25일 (2000-04-25) 와이세츠오 (사이토 히사시 (ex.GULT DEP, 8비트 프로젝트)) 에로 매직 오케스트라 피바인 레코즈 PCD-5808 -
7th 2001년 3월 22일 (2001-03-22) 우츠미 겐타 라이딘 일렉톤 슈퍼스타 EGCH-10005 -
8th 2001년 3월 25일 (2001-03-25) 와이세츠오 퍼블릭 푸시/공적 질압 피바인 레코즈 PCD-5815 -
9th 2005년 1월 26일 (2005-01-26) 토이복스 어쿠스틱 YMO 웨이브 마스터 WWCA31066 -
10th 2006년 6월 20일 (2006-06-20) 세뇨르 코코넛 앤드 히즈 오케스트라 옐로우 피버! 써드 이어 XECX1051 -
11th 2008년 2월 20일 (2008-02-20) 애노니머스 애노니머스 미디 MDCL1485 -
12th 2009년 8월 26일 (2009-08-26) HMO 등의 관계자. (PAw Laboratory) 하츠네 미쿠 오케스트라 조인트 레코즈 / 써드-이어 XECJ1005 -
13th 2009년 11월 11일 (2009-11-11) 미니멈스 YMO vs. 미니멈스 바얀 레코즈 XQHX1003 -
14th 2011년 1월 26일 (2011-01-26) 에놀라 퀸텟 에놀라 퀸텟 플레이즈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블루림 레이블 XQJU1001 -
15th 2012년 12월 19일 (2012-12-19) HMO 등의 관계자. (PAw Laboratory) 증식기미 X≒멀티플라이즈 U/M/A/A Inc. UMA9009 -
16th 2013년 3월 13일 (2013-03-13) 에놀라 퀸텟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재즈 커버스 도쿠마 재팬 커뮤니케이션즈 TKCA-73883 -

영상 작품

발매일 타이틀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순위 비고
1st 1982년 12월 5일 (1982-12-05)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빅터 VHS CSM 808 - 라이브 비디오
2nd 1983년 2월 5일 (1983-02-05) 컴퓨터 게임 CSM 809 - 뮤직 비디오 모음집
3rd 1983년 4월 21일 (1983-04-21) 윈터 라이브 81
WINTER LIVE '81
CBS 소니 96ZM-26 - 라이브 비디오
4th 1984년 4월 25일 (1984-04-25) A Y.M.O. 필름 프로파간다 포니 캐년 VHS
베타
V148F8002
X148F8002
- 동명 영화 소프트웨어화
5th 1992년 8월 21일 (1992-08-21) 후라
(HURRAH)
알파 레코드 VHS
LD
ALVA-83
ALLA-83
- 라이브 비디오
6th 1992년 12월 21일 (1992-12-21) 하이테크 비디오 크라임 ALVA-87
ALLA-87
- 뮤직 비디오
7th 1993년 3월 21일 (1993-03-21) YMO 전설 1983 해산 콘서트 at 무도관 ALVA-91
ALLA-91
- 라이브 비디오
8th 1993년 9월 21일 (1993-09-21) 라이브 앳 무도관 1980
(LIVE AT BUDOKAN 1980)
ALVA-105
ALLA-105
-
9th 1993년 12월 1일 (1993-12-01) 테크노돈 인 도쿄 돔
(TECHNODON IN TOKYO DOME)
도시바 EMI TOVF-1179
TOLF-1178
-
10th 1993년 12월 21일 (1993-12-21) TV-YMO 알파 레코드 ALVA-9707
ALLA-9707
- 텔레비전 출연 영상집
11th 1998년 8월 25일 (1998-08-25) YMO 기가 클립스 도시바 디지털 프런티어 DVD BBBE-1007 - 뮤직 비디오, 텔레비전 출연 영상집
12th 1998년 8월 25일 (1998-08-25) YMO 기가 라이브 BBBE-1008 - 라이브 영상집
13th 1999년 1월 25일 (1999-01-25) YMO 기가 캡슐 BBBE-1026 - MP3음성, 라이브 영상집
14th 1999년 9월 22일 (1999-09-22) 컴플리트 후라
(COMPLETE HURRAH)
도시바 EMI VHS
LD
TOVF-1320
TOLF-1320
- 라이브 비디오
15th 1999년 11월 10일 (1999-11-10) 클립스 히스토리 오브 YMO VHS TOVF-1329 - 뮤직 비디오 모음집
16th 2000년 4월 26일 (2000-04-26) 1979 트랜스 아틀랜틱 투어
(1979 TRANS ATRANTIC TOUR)
VHS
DVD
TOVF-1342
TOBF-5024
42위 라이브 비디오
17th 2003년 1월 22일 (2003-01-22) 비주얼 YMO : 더 베스트 소니 뮤직하우스 DVD MHBL1 13위
18번째 2009년 8월 26일 (2009-08-26) POST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라이브 인 런던 2008+ commmons DVD(2매입) RZBM-46311/2 26위 라이브 비디오
19번째 2012년 2월 15일 (2012-02-15) Live in San Francisco 2011 DVD RZBM-46936 15위
20번째 2012년 7월 18일 (2012-07-18) YMONHK RZBM-59112 46위

뮤직 비디오

년도 제목 비고 감독
1978년 (1978) 동풍 처음에는 컴퓨터 게임 “서커스의 테마”가 중간까지 흘러나오고, 페이드 아웃 후 동풍이 시작된다.
1979년 (1979) COMPUTER GAME - FIRECRACKER
테크노폴리스
1980년 (1980) 라이딘
1982년 (1982) 체조
1983년 (1983) 너에게, 심쿵. 타치바나 하지메

제공곡·편곡

가수명 년도 제목 작사 작곡 편곡 수록 작품 비고
콘다 하루오 1979년 (1979) 일렉트릭 러브 스토리 우메즈 카즈오 콘다 하루오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음반 『천연의 미
왜인지 업사이드 다운 콘다 하루오 카세 쿠니히코
원 씬 야마구치 요코 콘다 하루오
푸시 캣 러브 콘다 하루오 츠츠미 쿄헤이
아사히나 마리아 1979년 (1979) 여자 친구 야마카와 미치오 호소노 하루오미 음반 『MARIA』
시나&더 로케츠 1980년 (1980) 떠오르는 피치 걸 이토이 시게사토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음반 『채널 구』
야노 아키코 1981년 (1981) 춘사쿠코 야노 아키코 ymoymo 싱글 A면
코이케 타마오 1983년 (1983) 거울 속의 10월 우리노 마사유키 YMO

참가 작품

발매일 가수명 음반 제목 레이블 규격 규격품번 비고
1978년 12월 21일 (1978-12-21) 라지에 LOVE HEART CBS·소니 LP 25AH 663 작사, 작곡, 연주
1979년 4월 25일 (1979-04-25) 야노 아키코 도쿄는 밤 7시 포노그램 S-7081 연주
1979년 12월 25일 (1979-12-25) 시이나&더 로케츠 진공팩 알파 레코드 ALR-6023 YMO로 참여. 제1회·제2회 월드 투어 등에서 발표되었던 "RADIO JUNK", "ROCKET FACTORY" 수록.
1980년 7월 21일 (1980-07-21) 오오누키 타에코 ROMANTIQUE RCARVC RVL-8049 편곡, 연주
1980년 9월 5일 (1980-09-05) 시이나&더 로케츠 채널 구 알파 레코드 ALR-28005 호소노 하루오미&다카하시 유키히로 프로듀스. 사카모토 류이치도 참여한 시이나&더 로케츠의 1980년 발매 3집 음반. "떠오르는 피치걸"은 YMO 작곡·편곡.
1980년 10월 1일 (1980-10-01) 야노 아키코 고항가 데키타요 재팬 레코드 JAL-1001/2 "동풍" 커버 외, 제1회·제2회 월드 투어 등에서 발표되었던 "재광동소년" 수록.
1981년 2월 21일 (1981-02-21) 스네이크맨 쇼 스네이크맨 쇼 알파 레코드 ALR-28009 "자성기-열어 마음-" 수록.
1981년 2월 21일 (1981-02-21) 오오무라 켄지 봄이 가득 ALR-28013 작곡, 연주. 제2회 월드 투어 등에서 발표되었던 "MAPS" 수록.
1981년 5월 1일 (1981-05-01) 야노 아키코 타다이마. 재팬 레코드 JAL-7 작곡, 편곡, 연주
1982년 6월 25일 (1982-06-25) 사랑이 없으면 안 돼. JAL-1801 편곡, 연주
1983년 4월 21일 (1983-04-21) 고 히로미 히로미 경의 범죄 CBS소니 28AH1516 작곡, 편곡, 연주
1984년 6월 25일 (1984-06-25) 야노 아키코 오에스 오에스 도쿠마 재팬/재팬 레코즈 28JAL-10 작사, 작곡, 편곡, 연주
2010년 4월 21일 (2010-04-21) 옴니버스 commmons: schola vol.5
Yukihiro Takahashi & Haruomi Hosono Selections: Drums & Bass
commmons CD RZCM-45965 사카모토 류이치 종합 감수 음악 전집 시리즈 제5권.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명의로,
슬라이&더 패밀리 스톤 "Thank You for Talkin' to Me Africa"(보컬은 크리스탈 케이),
비틀즈의 "Hello, Goodbye" 커버.

커버 곡

  • 다른 뮤지션들의 커버 곡 목록.
가수명 타이틀 편곡 수록 음반 비고
로직 시스템 1982년 시문 음반 '동방 쾌차 (ORIENT EXPRESS)'
1991년 (1991) 중국 여자 음반 'To・Gen・Kyo'
라이딘
덴키 그루브 1991년 COSMIC SURFIN' 음반 'UFO'
더 매드 캡슐 마켓츠 1992년 (1992) SOLID STATE SURVIVOR 더 매드 캡슐 마켓츠 음반 'SPEAK!!!!'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1996년 시문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음반 '도쿄 스트랫' 보컬에 히크스빌마시로 메구미 참여
투-믹스 1999년 (1999) 테크노폴리스 투-믹스 음반『리듬 포뮬러 제목은 "테크노폴리스 뉴 제네시스"
덱시드 더 에몬즈 2000년 나이스 에이지 덱시드 더 에몬즈 맥시싱글『나이스 에이지』
루시 2004년 (2004) DVD『루시 쇼〜샤우트, 스피드, 셰이크 유어 록카롤리카〜』 라이브 버전
크람봉 2006년 이심전신 음반『러버 앨범』
코토링고 2010년 (2010) 이심전신 음반『피크닉 앨범 1』
시리츠 에비스 추가쿠 2013년 체조 미우라 코우지 음반『중인
제이미 베론 레이크 2014년 통푸 음반『핸섬 보이 모델링 스쿨』 제목은 "ymo"

기타

코스믹 서핑
1978년 CBS·소니에서 발매된 『퍼시픽』에서 싱글컷. 앨범의 조화를 깨는 듯한 저먼 디스코풍의 이 곡을 YMO 결성 전 폴리포닉스 명의로 발매. 본 음원은 지금도 『퍼시픽』에서 들을 수 있다.
옌 이어스
1996년 12월. 오무니버스 앨범 『옌 박스 Vol.II』 18곡 중 1곡. "프로파간다" 오리지널 버전은 이것에만 수록되어 있다. 또한, 드문 가라오케 버전 곡도 다수 수록.
그 외에는, 옌 박스 Vol.1 보너스 디스크에 "너에게, 가슴 쿵.(오리지널 가라오케 버전)", "와일드 앰비션스 (TV 사이즈 에디트 타입 B)", "이심전신 (CF 60초 버전)", "거울 속의 10월 (오리지널 가라오케 버전)"이, 옌 박스 Vol.2 보너스 디스크: 남성에 "너에게, 가슴 쿵.〜과격한 숙녀〜이심전신 메들리"가, 보너스 디스크: 여성에 코이케 타마오 featuring YMO의 "섹사노바"(미발표)가 있다.
※"너에게, 가슴 쿵.(오리지널 가라오케 버전)"은, 모두 다카하시의 코러스 파트가 부분적으로 들어가 있어 순수한 인스트 버전은 아니다.
옌 레코즈 히스토리 싱글즈+α
'1988년 11월(91년 9월 재발매). 호소노가 알파 레코드 내에 설립한 레이블 "옌 레코즈" 설립 이후 발매된 싱글을 발매 순서대로 A면·B면 모두 수록한 오무니버스 앨범으로, YMO의 곡은 "너에게, 가슴 쿵." 이후 옌 레코즈에서 발매된 싱글을 A면·B면 수록하고 있다. 특필할 만한 것은, "이심전신"이 싱글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테크노폴리스"의 싱글 버전 차이, "이심전신"의 싱글 버전은 거의 CD화되지 않았고, YMO의 베스트반은 거의 앨범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YMO 셀프 서비스
1998년. 결성 20주년 기념 2매입 CD-ROM. 12개 음반의 곡 전부가 MP3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단, 데이터 레이트가 낮기 때문에 음질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 외, 프로모션 비디오, 관계자 인터뷰 비디오, 신시사이저 음색, 앨범 데이터, 미발표 라이브 음원(1981년, 윈터 라이브보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진행 역할에는, 하타야마 모모나이로서 이부 마사토가 참가. 싱글 CD가 첨부되어 있으며, 2곡의 라이브 음원("라이딘", "비하인드 더 마스크" 모두 찰리 채플린 기념 스튜디오 공연)이 수록되어 있다.
이듬해 1999년, DVD "YMO 기가 캡슐"에 DVD-ROM으로 상기 콘텐츠가 재녹음되었다. 그때, "윈터 라이브"의 미발표 음원이 일부 추가되어 있다.
인도 1978 / 프리 YMO
2000년. 원곡은 미발표곡 "인도"(가제)로, 1978년 YMO의 사전제작용 트랙으로 수록된 것. 다카하시 유키히로의 드럼 파트까지 레코딩되었지만, 최종적으로 매장되었다. 그 후, 발견된 멀티 트랙 테이프를 호소노가 믹스를 실시("깨끗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본인 발언)하여, "프리 YMO" 명의로 발표. 호소노 자신을 포함한 아티스트진의 2000년판 리믹스와 함께, 미니앨범 『인도』에 수록되었다.
증장 (ALCA 5250) / YMO&폭소문제, 나가이 히데카즈
『증식』의 패러디 CD(내용적으로는 YMO가 아니라 스네이크맨 쇼의 커버).
기타 레어 음원·미수록곡
발표된 레어 음원으로는, "거울 속의 10월(데모 Ver. / 오리지널 가라오케 Ver.)", "이심전신(모노럴 가사 차이 Ver.)", "과격한 숙녀(데모 Ver.)", "시문(데모 Ver.)" 등이 있다.
라이브에서만 발표된 제목 불명의 곡은 몇 개 있지만, 유명한 것은 테크노폴리스 2000-20의 오프닝 곡(사카모토 류이치의 음반 『왼팔의 꿈』 수록의 "베네치아"와 비슷하다)과, 윈터 라이브의 통칭 "루프" 등이 있다.
YMO 명의의 라이브 앨범에만 음원이 존재하고, YMO 명의의 스튜디오 녹음 앨범에 음원이 존재하지 않는 곡이 몇 개 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뱀부", "라이엇 인 라고스"(원곡: 사카모토 류이치), "더 코어 오브 에덴"(원곡: 다카하시 유키히로), "재광동소년"(원곡: 야노 아키코. 단, 초출은 KYLYN BAND), "맵스"(원곡: 오무라 켄지), "로켓 팩토리", "라디오 정크"(원곡: 시이나 앤 더 로케츠), "올 유 니드 이즈 러브"(원곡: 비틀즈) 등. 이 곡들은 비틀즈의 커버를 제외하면 YMO 3인의 솔로곡, 또는 YMO 3인이 제작에 참가한 곡이다. "올 유 니드 이즈 러브"는 제2회 월드 투어의 찰리 채플린 기념 스튜디오 공연에서, 일본으로의 위성 중계가 이루어지는 것과, 비틀즈가 원곡을 위성 중계로 공개한 것을 엮은 농담이었다. YMO의 연주에서는 곡 서두가 미국 국가가 되고 있다.
「광동 소년」에는 "너는 노래해, 나를 향해 노래해, 장님인 나에게"라는 가사가 있으며, 라이브에서도 불렀지만, 일본에서 공개된 영상이나 라이브 음반에서는 "장님" 부분이 음성 처리되어 삭제되었거나, 라이브에 따라 처음부터 "귀가 고장난", "귀가 들리지 않는" 등으로 가사를 변경한 버전이 불리기도 했다.

타이업

곡명 타이업 내용
1979년 테크노폴리스 FUJI CASSETTE 「카세트테이프 '테크노폴리스 25시'" 광고 노래
1980년 자성기-열어라 마음- FUJI CASSETTE 「80분 메탈테이프 '테크노폴리스 25시'" 광고 노래
라이딘 FUJI CASSETTE 「카세트테이프 '걷기 편'" 광고 노래[footnote 10]
1981년 FUJI CASSETTE 광고 노래
1983년 너에게, 심쿵. 가네보 화장품 '83 광고 노래
이심전심 유엔 "세계 커뮤니케이션의 해 (WCY)" 주제가
1993년 주머니가 무지개로 가득 차 텔레비전 드라마사쿠라 모모코 랜드·타니구치 로쿠조 상점』(1993년, TBS 계열) 주제가
2007년 RYDEEN 79/07 기린 맥주 "기린 라거 맥주&클래식 라거" 광고 노래
2010년 라이딘 에자키 글리코 "포키" 광고 노래

공연

형태 타이틀 공연 규모·장소 수록 작품
1978년 단발 콘서트 - 음반 『라이브 앳 키노쿠니야 홀 1978』
1979년 - 음반 『퍼블릭 프레셔/공적 억압』
비디오 『YELLOW MAGIC ORCHESTRA』
음반 『라이브 앳 그리스 극장 1979』
음반 『원 모어 YMO』
콘서트 투어 YELLOW MAGIC ORCHESTRA TRANS ATLANTIC TOUR 음반 『퍼블릭 프레셔/공적 억압』
음반 『페이커 홀릭』
비디오 『할러』
비디오 『컴플릿 할러』
음반 『원 모어 YMO』
단발 콘서트 YELLOW MAGIC ORCHESTRA BACK IN TOKIO 음반 『퍼블릭 프레셔/공적 억압』
1980년 콘서트 투어 YELLOW MAGIC ORCHESTRA TECHNOPOLIS 2000-20 TOUR -
단발 콘서트 - 음반 『원 모어 YMO』
콘서트 투어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월드 투어 80음반 ‘라이브 앳 부도칸 1980’
음반 ‘월드 투어 1980’
비디오 ‘라이브 앳 부도칸 1980’
음반 ‘원 모어 YMO’
1981년YMO-WINTER-LIVE-1981비디오 ‘윈터 라이브 1981’
음반 ‘윈터 라이브 1981’
CD-ROM ‘셀프 서비스’
DVD ‘기가 클립스’
음반 ‘원 모어 YMO’
1983년1983 YMO JAPAN TOUR음반 ‘애프터 서비스’
음반 ‘컴플리트 서비스’
음반 ‘원 모어 YMO’
1993년단발 콘서트YMO TOKYO DOME음반 ‘테크노돈 라이브’
비디오 ‘테크노돈 인 도쿄돔’
2007년--
2008년-음반 ‘런던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라이브 인 런던 15/6 08-’
음반 ‘히혼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라이브 인 히혼 19/6 08-’
음반 ‘EU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라이브 인 런던+히혼 2008-’
DVD ‘포스트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라이브 인 런던 2008 플러스-’
2009년--
2010년--
2011년-싱글 ‘파이어 버드’
DVD ‘라이브 인 샌프란시스코 2011’
DVD・BD ‘YMONHK’
2012년-음반 ‘노 뉴크스 2012’

출연

영화

CM

기타 소재로 한 것

각주

주석

  1. ^ BGM』의 재킷 등에 “YMO”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 이전에는 줄일 경우 “Y.M.O.”와 같이 마침표를 붙여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 ^ 이 해에는 잡지에 가짜 음반의 광고가 게재되었다.
  3. ^ 이 시점에서 “YMO”라는 명칭은 알파 측에 의해 상표 등록되어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생 시 그룹명은 “YMO” 세 글자 위에 “×”를 그린 것이 채택되었다. 읽는 법은 “낫 YMO”. 2007년 활동 재개 이후는 다카하시의 소속 사무소인 힌츠 뮤직에 의해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제5121722호) “YMO”(제5121723호)가 상표 등록되어 문제없이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4. ^ YMO 측의 답변은 “관계자와 상의하겠습니다”였다. 그 외에도 “영화 ‘진격! 전파소년’의 음악을 만들어주세요!”라는 부탁도 준비했지만, 지명되지 않고 종료되었다.
  5. ^ 연주된 것은 “이심전심”, “레스큐”, “War & Peace”, “RYDEEN 79/07”의 4곡이다.
  6. ^ NIAGARA TRIANGLE Vol.1』의 1995년 판 라이너 노트에서 오타키 에이이치는 “누구나 ARP의 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을 나중에 ‘교수’라고 불리게 되는 사카모토가 연주하고 있는 곳에 YMO의 싹이 보였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7. ^ 이 수법은 다카하시가 자신의 솔로 투어에서 확립한 수법이며, 2007년 HAS의 라이브에서도 행해졌다.
  8. ^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그 때문에 해외에서는 “곡이 길다”라는 평가도 있었다.
  9. ^ 오리콘 차트에 의한 최고 순위를 참조. 디지털 다운로드 작품에 관해서는 아이튠즈 스토어에 의한 최고 순위를 참조.
  10. ^ 다카하시 유키히로 디자인 YMO 티셔츠 증정 캠페인
  1. ^ 마츠타케 히데키는 표면에 잘 나서지 않고, 이른바 구로코적인 존재였지만, 전자 악기에 관한 기술적인 조언을 Y.M.O.에 제공하고, 시퀀싱을 담당하고, 또 Y.M.O.의 다수의(거의 모든) 전자 악기류를 자신의 회사에서 Y.M.O.에 리스하는 등, Y.M.O.가 일대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시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Y.M.O.의 네 번째 멤버”나 “네 번째 YMO”[1]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츠타케 히데키의 역할에 대해서는 기사 후반부에서 설명한다.
  2. ^ 참고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 즉 YMO의 결성기부터 활동 초기인 1970년대 말이나 1980년대 초의 일본과 그 이미지에 대해서도 덧붙이자면, 1970년대는 일본제 라디오 카세트쿼츠 시계가 세계를 향해 대량으로 수출되고, 일본제 반도체의 수출도 본격화되고, 또 1978년 8월에는 일본의 타이토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발매되어 그 전자 음악이나 효과음이 일본 전국 각지의 거리에서 울려 퍼지고, 이윽고 그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후속 아케이드 게임이 세계에서 라이선스 판매되어 그 전자음도 세계에 퍼져나가는… 그런 상황이었고, 세계적인 시각에서 “일본이라면 일렉트로닉스(전자 기술)의 나라”, “일본이라면 기술의 나라”라는 심상이 강해지고 있었다.
  3. ^ 몇몇 라이브 음반에서 그 보코더 보이스에 의한 인사를 들을 수 있다.

출처

  1. ^ Ankeny, Jason. Yellow Magic Orchestra Biography - 올뮤직. 2020년 12월 12일 열람.
  2. ^ Allen, Matthew; Sakamoto, Rumi (2007). Popular Culture, Globalization and Japan. London: Taylor & Francis. p. 212. ISBN 978-1-134-20374-1 
  3. ^ 턴리지, 스티브 (2013). 비욘드 마스터링: 컨셉추얼 가이드. 밀워키, 위스콘신: 할 레너드. 93쪽. ISBN 978-1-480-36683-1 
  4. ^ 채리, 에릭 (2020). 1990년대 초반까지의 새롭고 간결한 록과 R&B 역사. 미들타운, 코네티컷: 위슬리언 대학교 출판부. 174쪽. ISBN 978-0-819-57896-9 
  5. ^ YMO, 1993년 ‘재생’ 라이브가 첫 DVD화. 11월 30일 발매”. rockinon.com. rockinon.com. 2022년 4월 27일 열람.
  6. ^ 호소노 하루오미와 옐로 매직 밴드 낙원”. thisboy.shop-pro.jp. thisboy.shop-pro.jp. 2022년 4월 27일 열람.
  7. ^ “그건 퓨전이라고 생각했었죠””. shop.fascination.co.jp. shop.fascination.co.jp. 2022년 4월 27일 열람.
  8. ^ a b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아스펙트, 2007년
  9. ^ 2014악기 페어내 “YMO 악기 전시 2014”에서의 히가사 마스미의 발언[신뢰성 검증 필요]
  10. ^ 연주는 CD『호소노 박스 1969-2000』Disc 4(Re-Wind Recordings, 2000년)에 수록
  11. ^ 레코드 컬렉터스 2003년 2월호
  12. ^ a b c d 『키보드 매거진 2019년 1월호』, 키보드 매거진 편집부, 25쪽. 
  13. ^ a b c d e f “알파 레코드, 업계 최초 미국 진출(하) 제2, 제3의 YMO를 (도전의 기록)”『닛케이 산업 신문』1982년 1월 7일자, 16쪽.
  14. ^ 『키보드 매거진 2019년 1월호』, 키보드 매거진 편집부, 27쪽. 
  15. ^ 빌보드 핫 100 차트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 컴퓨터 게임 (서커스의 테마) 조엘 휘트번 프레젠츠 더 빌보드 핫 100 차트 더 80s - 레코드 리서치 (1991/6/1)
  16. ^ [2]뮤직 위크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 컴퓨터 게임 (침략자들의 테마)
  17. ^ 록킨온 1981년 5월호
  18. ^ 『쇼와 55년 사진 생활』(2017년, 다이아프레스) 52쪽
  19. ^ NHK 프리미엄 10“YMO에서 HAS로 -사카모토 류이치+다카하시 유키히로+호소노 하루오미 음악의 여정-”[신뢰성 검증 필요]
  20. ^ “도테라 YMO” 다시? 호소노 하루오미×사카모토 류이치 라이브에서 명곡 잇따라”. 음악 내탈리 (2013년 12월 26일). 2019년 1월 9일 열람.
  21. ^ 호소노 하루오미 옐로 매직 쇼 2”. NHK. 2019년 1월 26일 시점의 오리지널보다 아카이브. 2019년 1월 9일 열람.
  22. ^ YMO에 의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세션도! 음악과 웃음의 하룻밤 “옐로 매직 쇼 3””. 음악 내탈리 (2019년 12월 4일). 2020년 1월 1일 열람.
  23. ^ “다카하시 유키히로 씨 사망에 YMO 멤버 애도…사카모토 류이치는 회색 이미지 게시, 호소노 하루오미는 코멘트 못 해”. 스포츠 호치 (호치 신문사). (2023년 1월 16일). https://hochi.news/articles/20230115-OHT1T51255.html?page=1 2023년 10월 22일 열람. 
  24. ^ “호소노 하루오미, 인스타에 회색 이미지 게시 사카모토 류이치 씨가 다카하시 유키히로 씨 사망 당시에 같은 게시물”. 닛칸 스포츠 (닛칸 스포츠 신문사). (2023년 4월 3일). https://www.nikkansports.com/entertainment/news/202304030000043.html 2023년 4월 6일 열람. 
  25. ^ 신세 과거와 현재: 60년대~70년대의 아날로그 신세와 음악”. www.redbullmusicacademy.jp. 2019년 4월 17일 열람.
  26. ^ (인터뷰)「사카모토 류이치|제19회 “테크노”에 대해 단언하다」『OPENERS』, 주식회사 스마트미디어, 2015년 3월 9일.http://openers.jp/article/10958.2020년 12월 12일 열람. 
  27. ^ E-MU 시스템과 크리에이티브의 새로운 전략, 크리에이티브 프로페셔널 탄생 - 올 어바웃
  28. ^ 오타 출판·사카모토 류이치 음악사 p.72 외, 여러 서적에 여러 번 등장.
  29. ^ 사운드&레코딩 매거진 1999년 11월호
  30. ^ 『원 모어 YMO』라이너 노트 수록 다카하시의 곡 해설
  31. ^ 『컴팩트 YMO』도쿠마쇼텐, 1998년 ISBN 4-19-860831-8
  32. ^ CD「원 모어 YMO」、「L-R 트랙스」라이너 노트 발췌
  33. ^ 1980년 12월 FROM TOKYO TO TOKYO 무도관 라이브 팜플렛 ※카세트 덴스케, 롤랜드 MC-8 두 대, 무그 III-C와 E-MU 시스템 신시사이저가 배치된 시스템 구성도 수록.
  34. ^ YMO 칠드런 세대”. amass.jp. 2019년 4월 17일 열람.
  35. ^ [3] 어른의 주말 웹 「YMO 사무소 사장이 말한 가장 인기 있는 곡명 +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베스트 3 음악의 달인 “비화”·다카하시 유키히로(4편)」2023년 3월 20일 열람
  36. ^ 테크노보이스 풀크래프트 그린-펀드와 다카노 히로시가 목표한, “현대의 테크노팝”이란 무엇인가”. Real Sound|리얼 사운드 (2018년 10월 30일). 2023년 11월 10일 열람.
  37. ^ 호시노 겐 “카호코” 주제가 「패밀리 송」을 라이브 첫 공개』(보도자료)익사이트 뉴스, 2017년 9월 10일https://www.excite.co.jp/news/article/Entameplex_8325/?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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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