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와타 케이스케(くわた けいすけ, 1956년〈쇼와 31년〉2월 26일[14] - )는 일본의 남성 뮤지션, 싱어송라이터[20]이다. 록 밴드 사잔 올 스타즈의 밴드리더를 맡고 있으며, 보컬과 기타를 담당[14]한다. 가나가와현 지가사키시 출신[14]이다. 소속 사무소는 아뮤즈[21]이며, 소속 레코드 회사는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22], 소속 레이블은 타이시타 레이블이다.
쿠와타 케이스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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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명 | 쿠와타 케이스케 |
별명 | |
생년월일 | 1956년2월 26일 (68세)[14] |
출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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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경영학부 제적[15] |
장르 | |
직업 | |
담당 악기 | |
활동 기간 | 1977년 - |
레이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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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하라 유코 |
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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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작업자 | |
공식 사이트 | SOUTHERN ALL STARS OFFICIAL SITE |
YouTube | |
채널 | |
활동 기간 | 2012년 - |
장르 | 음악 |
구독자 수 | 67.2만 명 |
총 재생 수 | 5억 3781만 8909회 |
채널 구독자 수·총 재생 수는 2024년 12월 10일 기준. |
가마쿠라가쿠엔 고등학교 졸업,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경영학부 제적[15]. 애칭은, 케이짱[주석 9], 스케짱[주석 10], 쿠와짱[주석 11], 쿠와쪼[주석 12], 쿠와타군[주석 13] 등. 키 170cm[41].
1978년 사잔 올 스타즈의 보컬로 메이저 데뷔하여 1987년 「슬픈 마음 (JUST A MAN IN LOVE)」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잔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솔로로 「서핑하는 조니」「흰 연인들」「내일 맑겠지」 등이 히트했다[43][44]. 오리지널 앨범은 1988년 『쿠와타 케이스케』, 1994년 『고독의 태양』, 2017년 『쓰레기』 등 총 5장, 베스트 앨범은 2002년 『TOP OF THE POPS』, 2012년 『I LOVE YOU -now & forever-』, 2022년 『언제나 어딘가에』 등 총 4장, 미니 앨범은 2021년 『밥 미소시루 김 우메보시 달걀말이 feat. 우메보시』가 발매되었다[45]:168,174,176[46][47]. 3세대 및 5세대[주해 14]에 앨범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48].
곡의 테마는 폭넓게, 러브송, 에로틱한 곡, 고향인 치가사키와 일본에 대한 강한 애정이 담긴 곡, 세계 평화 등의 메시지가 담긴 곡, 반전가요, 민중가요, 응원가, 노블티 송이나 넌센스한 곡 등이 존재하며[49][50][51][52][53][54], 치가사키와 일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진 태도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고향에서 자란 것에 대한 감사와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거나[55][56][57][58]:52,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본어와 일본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언행을 하거나[59][60], 국기 일장기 게양 및 국가 「기미가요」 제창과 같은 퍼포먼스를 라이브에서 행한 것[주해 15]에서도 나타나 있다[61][62]. 처음에는 가사의 의미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았지만, 활동이 계속됨에 따라 팬과 주변의 반응으로 심경의 변화가 생겨 세련된 것으로 변해갔다[58]:79[63][64]:8. 1980년대에는 KUWATA BAND로 전편 영어 가사의 앨범에도 도전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어를 전면에 내세운 작풍으로 방향성을 전환하여 「달」(1994년)이나 「도쿄」(2002년) 등, 문학성과 일본 정서를 담은 작품을 발표했다. 세월이 쌓이면서 가사의 세계는 깊은 그림자를 더해갔다[65]. Apple Music에서는 「『쓰레기』 시대에는 극도로 세련된 일본어 팝스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66]. 또한, 후술하는 바와 같이 처음에는 해외의 록이나 솔 음악의 영향이 강한 송라이팅과 가창법으로 알려졌지만, 점차 일본 전통 연극이나 가요쿄쿠에 대한 연구의 성과가 나타나, 그러한 일본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66]. 폭넓은 스펙트럼 덕분에 곡, 음악성, 업적은 장르를 불문하고 광범위한 뮤지션들로부터 높이 평가받고 있다[67][68][69][70].
세계 평화를 갈망하거나[71][72], 전쟁 중 군인들의 고뇌와 작전 중 사망자 및 유족들을 위한 곡[주석 16]을 발표하거나[73][74], 납북 일본인 문제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소요 사태 피해자들의 심정에 공감하는 행동을 하는[주석 17] 등 정치적인 측면이 존재하는 한편[75][76], 에이즈 계몽 운동인 Act Against AIDS 참여나, 동일본 대진재를 포함한 다양한 재해 피해 지역 복구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주석 18], 2022년에는 동급생 아티스트들과 함께 제작한 곡 "시대에 뒤떨어진 Rock'n'Roll Band" 수익의 일부를 세이브 더 칠드런에 기부하는 등 음악 활동을 통해 사회 공헌을 하고 있다[18][79][82][54].
자신에 대해 쿠와타는 "나는 남자다움이나 인간성, 사회성은 다른 뮤지션들에게 뒤처질지도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정체성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83]. 자신의 음악관에 대해 "변명이 용납되지 않는 음악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신에게는 팝스라고 말하고 있다[84]. 또한 쿠와타는 "곡이란 그때그때의 기분을 반영한 것"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있다[85].
음악 활동에서 솔로와 사잔을 막론하고 멤버 및 스태프와의 연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라이브 리허설 시에는 누구보다 빨리 스튜디오에 들어가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전해지고 있다[86][87]. 레코딩 시에는 만들어 온 가사가 없는 멜로디만 기타로 연주하며 멤버와 스태프에게 들려주고, 각자 코드, 리듬 패턴, 프레이즈, 각 악기의 음색 등을 확인하고, 연습 중에 던져지는 멤버들의 질문에 정중하게 답하고, 쿠와타도 어레인지에 대한 생각나는 점을 전달하는 등, 꼼꼼한 회의를 하고 있다[88]. 이 작업을 통해 쿠와타의 머릿속에 있는 멜로디를 멤버 각자가 공유하고, 연주를 위한 이미지를 부풀려 가며, 어레인지에 악센트를 붙이면서 곡의 특징을 살려 나간다[31]. 쿠와타는 "곡 만들기는 총력전입니다. 사잔의 멤버는 물론, 스태프도 곡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콧노래나 잡담에서 곡이 부풀어 오르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사잔이란 다섯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의 스태프를 포함한 총칭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83]. 제작의 동기가 높아지는 계기는 클라이언트나 스태프로부터의 의뢰가 있고, 마감 기한이 명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며, 자신의 위치를 "직업 작가"라고 말하고 있으며, 타이업처의 콘셉트나 내용에 맞춰 제작하기도 한다[89][90][91]. 최근에는 컴플라이언스에도 배려하고 있으며, 레코드 회사나 매니지먼트의 젊은 스태프에게 상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92].
솔로와 사잔의 차이에 대해 쿠와타는 "하고 있는 도중에 잘 모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솔로 쪽이 "오히려 익명성이 높다", "가짜를 만들기 쉽다"고 말하고 있다[93]. 또 인터뷰에서 "사잔에는 사잔의 재미가 있지만, 솔로는 과외 수업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사잔이 있기에 솔로가 맛있는 걸까요"라고 말하거나[94], "자신에게 사잔은 가정·가족과 같은 것이며, 이른바 사잔의 곡은 그 자식들입니다. 한편, 솔로의 곡은 애인의 아이와 같은 것입니다"라고 비유하거나[95], 무토 케이지와 그레이트 무타의 차이를 예로 들기도 했다[96]. 또한 솔로 활동에 대해 "하지만 저는 계속 동료들과 해왔기 때문에, 솔로이지만 솔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도 말하고 있다[97]. 쿠와타는 음악에서 명의는 중요하고, 방향성을 명료하게 나타내는 것이며, 음악의 동기를 높이는 최대 요소라는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있다[98]. 아내인 하라는 쿠와타의 솔로와 사잔의 차이에 대해 묻자 "솔로 작품은 사잔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사적으로 음악 표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의 쿠와타의 정신 상태였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떠오르네요", "훌륭한 뮤지션들과의 만남도 있어서, 자극을 받고 새로운 문을 계속 열어, 애절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노래하는 솔로 작품을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99].
노래 방법은 조 코커와 마에카와 키요시의 영향을 받았으며[100][101], 싱코페이션을 자주 사용한다[102]. 학생 시절 허스키 보이스가 유행했고, 桑田도 목소리를 망가뜨리려고 목소리의 질을 더욱 비슷하게 하기 위해 위스키를 마시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큰 소리로 계속 소리를 질렀다[100]. 아마추어 시절과 초기에는 일본어와 영어의 이중 의미 가사와 빠른 노래를 사용했다[103]. 이러한 노래 스타일은 "桑田節", "桑田語"라고 불리기도 한다[104][105][106][54]. 桑田의 빠른 노래 때문에 시청자들이 "가사가 알아들을 수 없다"며 항의한 것이,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사 자막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TV 방송국이 桑田의 노래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음악 프로그램에서 자막 표시를 시작했다고 한다[107]. 桑田는 과거 자신의 표현 방식에 대해 반성하는 말을 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곡에 따라 의식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기법을 사용하거나, 명확한 일본어로 가사를 쓰고 정성껏 부르는 등 표현 방식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108][109].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일본인 가수로서의 자각이 강해졌다"고 말하고 있다[65][110]. 또한, 영어나 빠른 노래를 사용하지 않고 아름답고 명확한 일본어 가사의 곡을 만든 예로는 하라 유이코에게 제공한 "꽃피는 여정", "교토 이야기", "여정의 정취" 등이 있다[111][112][113], 桑田는 하라의 목소리 매력을 "일본의 원풍경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114]. 노래 실력을 수치화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론이 있으며, 桑田가 생각하는 최고의 남자 가수는 오자키 키세히코, 최고의 여자 가수는 치아키 나오미이다[115].
곡 제작은 대부분 작곡한 곡에 가사를 붙이는 "곡선행"으로 진행하지만[58]:79, 곡에 따라서는 작사부터 먼저 하는 "가사선행"인 경우도 있다[116]. 작곡은 기타를 치면서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진행되며, 컴퓨터 작업의 대부분은 스태프에게 맡기고 있다[117]. 이 기타를 치면서 하는 작곡 작업 중에 후렴 가사의 일부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118]. 그 대표적인 예로 "에로티카 세븐", "만피의 G★SPOT"가 있다[118]. 또한, "싫은 일 투성이의 세상에서"는 후렴 가사와 멜로디의 일부가 동시에 떠올라 거기서 역으로 곡을 만들었다[119].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타이밍은 혼자 운전을 할 때나 직장으로 이동하는 중 등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움직일 때가 많다. 항상 IC 레코더를 휴대하고 다니며, 생각이 나면 녹음을 한다[117]. 녹음은 작곡 작업과 사실상 병행하는 형태로 곡의 일부를 스튜디오에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하며, 템포를 정하고 "클릭"이라고 하는 가이드 음을 만든 후, 기타나 신시사이저를 치면서 이미지를 찾고, 하나의 곡으로서의 골격이 보이면 가이드 보컬을 녹음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을 다시 부르는 작업을 반복하여 桑田의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멜로디에 가까워지도록 신중하고 정성껏 다듬어 간다[120][121][122][123]. 이 제작 방식은 통칭 "桑田 스타일"이라고 불린다[122]. 이후 각 악기를 녹음하고, 작사를 한 후 보컬이나 코러스를 녹음하여 곡의 완성형을 찾아간다[123]. 하라 유이코나 사카모토 후유미 등 여성 가수에게 곡을 제공할 경우에는 먼저 桑田 자신의 키로 곡을 만들고, 녹음 시에 그 가수와 함께 키를 조정해 간다[124][123][125]. 桑田는 악보를 읽을 줄 모르며, 사잔의 멤버 중 악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하라뿐이다[주석 19]. IC 레코더가 보급되기 전에는 악보나 코드 악보는 하라가 썼다[126]. IC 레코더 보급 이후에는 편곡과 모든 악기를 桑田가 담당한 "MUSIC TIGER", "멋진 미래를 보고 싶어"처럼 하라를 의지하지 않는 형태의 곡 제작과 녹음이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127][121][128]. 현재는 코드 악보에 대해서도 桑田도 쓸 수 있게 되었고, 녹음을 위한 리허설 합숙에서는 桑田가 코드 악보를 화이트보드에 적고, 가사가 없는 상태의 멜로디를 부르고, 거기에 맞춰 멤버들이 연주하며 편곡을 모색해 간다[124]. 또한, 하라 유이코에게 제공한 "꿈을 고마워"의 녹음 당시에는 작곡자인 桑田가 서포트 멤버인 카타야마 아츠오에게 하라의 키에 맞춘 코드 진행의 이미지를 미리 전달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123]. 코드 진행을 알게 된 후에도 텐션에 대해서는 하라에게 생각해 달라고 하고 있다[120].
작사는 솔로든 사잔이든 에로틱한 내용이나 방송 금지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선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고[107],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주석 20][129]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64]:9. 본래와 다른 어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예를 들어 「Ya Ya (あの時代を忘れない)」「希望の轍」등의 작사에서는 「잊을 수 없는」을 「잊을래ぬ」라고 표현하고 있다[130]. 또한, 아래의 진지한 곡이나 반전, 사회 풍자를 주제로 한 곡들로 인해 앨범이 심각해지기 쉬우므로, 에로틱한 작풍의 곡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균형의 역할도 하고 있다[131]. 고향인 지가사키시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가마쿠라시에 대한 고향 사랑[132][133][134][주석 21]이나, 좋아하는 고령신사를 비롯한 가마쿠라시 주변의 산책 코스[134], 자신이 좋아하는 도시라고 공언하고 있는 교토[주석 22]나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것에 대한 자부심 등을 가사의 모티브로 삼는 경우도 있다[주석 23][58]:213[53]. 예전에는 「나도 미국인이나 영국인처럼 되고 싶다」「언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진심으로 생각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해외의 록을 동경했다[142]. 1980년대에는 일본의 거품 경제 등의 영향도 더해져 「일본인의 팝스나 록이 해외에서도 통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 것도 있어, 전편 영어 가사의 곡을 제작하거나, 외국인 레코딩 엔지니어를 기용하거나, 해외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주석 24]. 하지만, 해외에 나가서 활동을 경험하면 자신감을 잃어버렸다고 하며, 「저쪽의 방식을 따라 하는 것으로는 당연히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145]. 점차 서양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역시, 나는 일본어밖에 다룰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그것이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그렇기 때문에 내가 록이라는 틀을 향해 나아갈 때는, 오히려 일본인의 좋은 점을 내보이고 싶다든가, 일본적인 느낌으로 승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일본인으로서, 일본 여러분이 즐길 수 있는, 일본어로 된 팝스를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방침을 전환하여, 일본어 가사를 중시한 화양절충적인 작품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146][142][147]. 일본어로 가사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어 특유의 감정, 정념 같은 것이 나타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예를 들어 오쿠무라 치요의 「恋の奴隷」에 대해서는 「지금은 있을 수 없는 곡이죠. 하지만, 도덕과 불도덕이 노래 속에서 서로 마주하는 것은, 정말 좋은 세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120]. 또한, 2013년 인터뷰에서는 「옛날부터, 백인일수나 만엽집 때부터, 일본어에는 말투나 숨겨진 말의 숨은 의미 해석 등, 통신 기능이나 암호 같은 즐거움이 있다. 예를 들어 'き'라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기분이나 나무나 기록 등, 억양 하나로 여러 가지 의미로 변환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런 일본어의 훌륭함에 눈을 뜬 거죠」라고 말하고 있다[148]. 1998년과 2018년에 각각 발매된 사잔의 베스트 앨범 『海のYeah!!』와 『海のOh, Yeah!!』를 비교해 들었을 때, 전자를 「영어와 일본어를 융합시키려고 여러모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흔적이 보입니다」, 후자를 「역시 일본어를 소중히 여기고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면에 나와 있습니다」라고 자기 분석했다[145]. 다카세 코우이치는 앨범 『ROCK AND ROLL HERO』에 대한 비평문에서 「서양 음악에 대한 동경과, 자신 속에 흐르는 일본인의 피와의 타협. 그런 모든 일본인 아티스트가 고민하는 과제를, 구와타 게이스케는 완벽하게 클리어했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고 평가했고[149], 고바야시 카츠야도 2017년 인터뷰에서 구와타에 대해 「일본인의 양악 콤플렉스를 해방시켜 준 남자」「메이지나 다이쇼 시대의 문호에 이어지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33]. 구와타는 인터뷰에서 최근 음악에 하나자와 하지토 크레이지 캣츠나 자 도리후타즈가 가지고 있던 연예의 요소가 부족한 것을 한탄하고 있으며, 일본인의 축제 분위기의 피와 해외의 표현을 모방하는 즐거움을 메인스트림에서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150]. 또한, 스페인어나 한글을 「미스매치의 방법이, 다소 정석과 어긋나는 편이 재미있다」는 호기심 어린 이유로 가사나 영상에 도입한 적이 있다[주석 25]. 하지만 한글을 도입한 「LOVE KOREA」는 출신이나 사상에 관한 루머[주석 26]가 인터넷에 퍼지는 원인이 되었다[155]:14 - 17[153]. 「愛の言霊 〜Spiritual Message〜」에서는 인도네시아어 랩 가사를 썼다[156]. 엉터리 외국어[주석 27]가 주체인 곡[주석 28]도 존재하고 있으며, 후지무라 아리히로나 타모리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158]. 제목에 대해서는 「명곡에는 명제목이 있다」「팝스는 제목이 전부이다」라는 말을 명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별로 고민하지 않고 지어진 제목일수록 곡의 완성도와 함께 잘 어울리는 정도가 좋았다고 하고 있다[159]. 일본인의 조어 감각이 크게 발휘되고 있는 것이 일본어 제목이라고 하며, 핑크 플로이드의 「Atom Heart Mother」나 닐 영의 「Heart Of Gold」와 같은 일본어 제목을 칭찬하고 있다[160]. 예전에는 작곡가로서의 자신과 작사가로서의 자신의 구분이 미묘했지만, 현재는 작곡 작업과는 별도로 작사라는 작업이 있다는 것에 신성함과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64]:10.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뮤지션들에게 시대를 불문하고 영향을 받았다. 10대 시절부터 광범위한 서양 음악을 듣고, 구와타 게이스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통째로 삼키듯” 흡수해왔다[161]. 학창 시절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비틀즈,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데이비드 보위, 리틀 핏, 밥 딜런, 닐 영 등이 있다[162][163][164][161]. 특히 비틀즈의 영향이 컸는데, 누나와 피아노를 치며 하모니 방법을 가르쳐준 친구의 영향도 있어 고등학교 1학년 때쯤에는 모든 곡을 암기하고 있었다고 한다[165]. 또한, 마침 조지 해리슨이 사망한 날 개최된 ‘Act Against AIDS 2001 구와타 게이스케 plays "The Beatles" 쿠와가타무시 대 카부토무시’에서 “음악을 배우게 된 건 비틀즈였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비틀즈 덕분입니다”라고 말했다[166]. 자서전에서는 다양한 음악을 비틀즈를 기준으로 듣고 있다고 언급하며, 비틀즈를 “인생의 이정표”라고 여긴다고 밝혔다[167]. 미디어에서는 존 레논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폴 매카트니의 영향도 컸으며, 구와타는 “비틀즈는 사실 폴이 제일 좋다”, “폴 매카트니파”라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다[168][169]. 카메다 세이지는 구와타의 음악성에 대해 “구와타 씨 안에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모두 존재하는 것 같아요”, “소위 존의 깊은 정신성과 폴의 팝적인 음악성. 그 두 가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86]. 또한, 이 무렵 구와타는 ‘TBS 노래 그랑프리’ 등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가요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고, 미소라 히바리, 이시하라 유지로, 어우양페이페이, 헨미 마리의 곡을 모두 알 정도로 가요쿄쿠에도 열중했지만[170], 본인의 말에 따르면 “바보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주변에 말할 수 없었다고 밝히며, 나이와 음악적 경력을 쌓으면서 “그래서 이제는 자신 있게, 가수로서 일본인으로서 큰 소리로 가요쿄쿠 팬, 사도(使徒)임을 커밍아웃할 수 있습니다(웃음)”라는 심경에 이르렀다고 2007년 인터뷰에서 말했다[171]. 2019년에 발매된 블루레이 박스 ‘헤이세이 30년도! 제3회 혼자 홍백가합전 3부작 컴플리트 박스 대중음악 크로니클’의 특전 부클릿 인터뷰에서는 “일본 가요는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며,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고, 앞으로 다시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쇼와 40년대, 50년대, 거슬러 올라가 쇼와 30년대도 그렇지만, 그 시대의 가요쿄쿠와 엔카를 모아 듣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제 몸에 스며들어, 살과 피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뭐, 나이를 먹을수록(웃음) 깨닫게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172]. 또한, 요시다 타쿠로, 카야마 유조, 츠츠미 쿄헤이, 스기야마 고이치, 미야가와 야스시의 작품과 필라델피아 팝스에도 영향을 받았고[173][174][175][176][177], 그것들은 후의 연주와 작곡 등 음악 활동의 기반이 되었다[162]. 특히 요시다 타쿠로의 영향이 컸는데, 구와타가 작곡을 시작한 동기는 1972년 후지필름 CM송으로 사용되었던 “HAVE A NICE DAY[주석 29]”를 들었기 때문이었다[173]. 또한, 구와타는 “타쿠로 씨를 목표로, 동경하며 음악을 해 온 사람, 저도 그렇지만, 많이 있습니다”, “남자다움이나 카리스마 같은 사람이 아니라, 좀 더 가늘고, 새콤달콤하고, 손이 닿을 듯한, 믿음직한 형 같은 인물입니다. 타쿠로 씨, 저도 팬입니다.(중략)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죠, ‘겐키데스’, ‘닌겐난테’…그 바람을 정면으로 받고, 꿈을 보여주셨습니다”라고도 말했다[178]. 카야마 유조는 구와타의 곡에 자신의 영향을 느끼고 “비슷하네?”라고 지적했고, 이에 대해 구와타는 순순히 “흉내 내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그래도 괜찮아”라고 조언했다[179]. 또한, 구와타는 스기야마 고이치의 재능과 인품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의 깊이를 자주 이야기했고, 스기야마가 진행을 맡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애청했을 뿐만 아니라[176], 스기야마가 작곡한 “키미다케니 아이오”, “가쿠세이마치노 키사텐”, “코이노 후가”, “긴가노 로만스”를 ‘혼자 홍백가합전’에서 커버했다[180][181]. 특히 “가쿠세이마치노 키사텐”에 대해서는 “경이롭게 완성된 프로그레시브 록이야”라고 높이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182]. 또한, 문부성가, 오키나와 음악 등의 영향도 받았으며, 자주 그 이미지를 곡에 도입하고 있다[183][184][185]. 1990년대 후반에는 라디오헤드에 심취하여 “01MESSENGER 〜전자광의 시〜”, “세계의 지붕을 치는 비의 리듬” 등 당시 사잔의 곡에 영향을 주었다[186][187]. 그 외에도 오자키 키세히코[177], 우치야마다 요우와 쿨 파이브[188], 더 피넛츠[64]:206, 하나자와 토오루와 크레이지 캐츠[64]:329, 우자키 류도[189], 후지 게이코[190], 아사카와 마키[188], 히로타 미에코[191], 나카지마 미유키[192], 사카모토 큐[193], 모리시게 히사야[83], 카토 토키코[83], 코바야시 마리코[194], 오카바야시 노부야스[110], 노사카 아키유키[110], 하야카와 요시오[195] 등의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다양한 뮤지션들의 영향과 요소를 음악성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구와타는 인터뷰에서 “모방이나 망상 같은 거죠. 이 말투도 누군가를 흉내 내고 있는 거고요. 그건 최근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독창성이란 없어요, 자신의 안에는”, “자신다움을 어필하는 것은 힘들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행복입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196]. 또한, 마츠토야 유미, 고 히로미, 사이조 히데키, 하운드 독, 스즈키 마사유키, 마쓰야마 치하루, 체이지와 “시대에 뒤떨어진 Rock'n'Roll Band”에서 공연한 사노 겐스케, 세라 마사노리, 찰, 노구치 고로 등 동세대 뮤지션들과 아이코, 우타다 히카루, 유즈, 스피츠, 미스터 칠드런, 오쿠다 다미오, 마키하라 노리유키, 후쿠야마 마사하루, SMAP, 나가세 토모야[주석 30], 원 오케이 록, 요네즈 켄시, 글림 스팬키, 요아소비, 록쇼쿠샤카이, 오피셜히게단디즘, 스다 마사키, 야바이 티셔츠야상, 모모이로 클로버 Z, 크리피 너츠, 와니마 등 자신보다 어린 뮤지션들에게도 존경을 표하고 있다[199][200][201][202][203][204][205][206][207][208][209][197][180][123][181][210][211][212][213]. 더 옐로우 몽키에 대해서는 “직구 승부라면 옐로우 몽키에게는 이길 수 없다”고 말하며, 그 음악성을 높이 평가했다[214].
국민의 삶과 밀접한 내용을 담은 「현대인 여러분!! 」[주석 31]과 같은 곡이 있으며[215], 학교폭력이나 차별 등을 「날지 못하는 모기 (MOSQUITO)」「바닥의 블루스」의 가사 주제로 삼았고[64]:57,58[216], 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솔로 명의의 「만화 드림 07」이나 사잔 명의의 「Missing Persons」등을 제작했으며[217][75], 신장 위구르 자치구 소요 사태와 같은 사건을 「만화 드림 09」의 가사 주제로 삼는 등 중대한 인권 문제 피해자들의 심정에 공감하는 곡[주석 17]도 발표했다.[75][76] 또한 납북 문제, 미사일 발사 실험, 핵 문제 및 주체사상 등 북한의 여러 문제에 대한 비판을 비틀즈의 「Sun King」에 맞춰 부르고[219], 밥 딜런의 「바람에 날려」를 의역하여 부르고[28], 자신이 레코딩에 사용하는 아오야마 빅터 스튜디오 근처 메이지 신궁 외원의 재개발 계획에 대한 문제 제기를 노래한 「Relay~숲의 시」를 사잔의 곡으로 발표하는 등[220] 시사 문제를 노래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사회를 풍자하거나 세태를 우려하는 내용의 곡도 많지만[주석 33],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제작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인터뷰에서 언급되었고[142], 구와타 게이스케는 “솔직히, 사회에 대해 그렇게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저널리즘적인 시각으로 록이나 팝스를 그리는 트렌드가 있었고, 나도 거기에 편승했었다”[74]라고 말했고, 빅터의 스태프는 “구와타 씨는 뮤지션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일본인이라는 것을 예전부터 자주 말했기 때문에, 현재 일본의 처한 상황을 느끼고 특별히 의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와타 씨는 어디까지나 음악의 표현자이며, 세상에 대해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은 전혀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견해를 보였다.[222] 실제로 구와타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물며, 앞서 언급한 빅터의 스태프는 “한 명의 일본인으로서의 책임과 자각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평가했다.[222] 이에 대해 구와타는 2015년 SWITCH 인터뷰에서 “애초에 풍자란 사람을 과도하게 상처 입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시위나 운동의 선두에 서서 깃발을 흔들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우연히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이 탄생했다면, 그것을 부를 수 없는 분위기도, 거기서 부를 수 없는 나 자신도 싫습니다”라고 말했다.[131][223] 또한 메이지 시대에 유행했던 「오페케페 절」에 대해서는 세태를 강렬하게 풍자한 것이며, 이러한 반골 정신과 해학과 풍자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무턱대고 정의를 휘두르면 안 된다는 취지를 밝혔다.[224] 2021년 Yahoo! JAPAN 인터뷰에서는 풍자에 있어서의 ‘어울림’/‘어울리지 않음’, 기타노 다케시와 아카시야 산마를 비교한 연예인의 성격에 따른 정치적 발언의 ‘적합성’/‘부적합성’, 직접적인 정치 비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주석 34], 밥 딜런의 「바람에 날려」의 시사적인 표현을 평가한 ‘잘함’/‘못함’ 등의 분석을 했다.[225] 반전과 평화에 대한 소망을 담아, 전시 중 병사의 고뇌와 작전 중 사망자와 유족 등에 대한 생각을 담은 곡[주석 16]도 있다.[228][74][73] 구와타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야기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229]
베이스, 드럼, 피아노, 키보드 등 밴드에 필요한 악기는 일반적으로 공개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대부분 연주할 수 있다. 일부 솔로 작품의 레코딩에서는 구와타가 모든 악기 파트를 담당한 곡도 있다.[230][231] 특히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것이 언급되었고[232], 하라 유이코에게 제공한 「꿈을 고마워」의 레코딩 현장에 초점을 맞춘 ‘구와타 게이스케의 음악 도라산 ~MUSIC TIGER~’ 2009년 7월 19일 방송분 제12회 「꿈같은 기획」에서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베이스 프레이즈를 끈기 있게 추구하며 연주하는 구와타의 모습이 방송되었다.[123] 슬라이드 기타의 보틀넥 주법에 의한 솔로 연주를 레코딩이나 라이브에서 자주 하고 있다.[58]:87[233]
시청자나 관객을 농담[주석 36]이나 흉내[주석 37], 분장[주석 38]으로 웃기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다[12][241][239]. 또, 자신에 대한 이야기나 지금까지의 음악 활동을 자학적으로 이야기하며, 제작한 음악이나 앨범의 반성점을 말하거나[242], 과거의 언행이나 퍼포먼스에 과한 부분이 있었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도 한다[243][244]. 음악 활동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라이브 멤버 소개이며, 그 시간만큼은 영원히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245], 한편 음악 활동 중 가장 싫어하는 것은 라이브이며, 라이브라는 단체 경기가 성격에 맞지 않거나 준비의 어려움, 건강에 대한 걱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246].
구와타 게이스케는 커버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자신의 간판 프로그램인 ‘구와타 게이스케의 야사시이 요자소바이’, ‘구와타 게이스케의 음악 토라상 ~뮤직 타이거~’이나 라이브 ‘혼자 홍백가합전’에서 장르나 경력을 불문하고 폭넓은 음악 커버를 하고 있지만, 커버 앨범은 제작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247][248]. 한편 ‘혼자 홍백가합전’, ‘더 루츠 ~위대한 가요곡에 감사~’처럼 커버곡을 메인으로 한 영상 작품은 존재한다[249][250]. 또, 후지요 메이사에게서 “사라져 가는 일본의 옛 노래, 민요 등을 구와타 씨의 목소리로 커버 앨범으로 후세에 남겨주셨으면 하는데, 실현 가능성은?”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좋네요”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기획이 실현될 가능성을 “기대를 담아 70퍼센트 정도일까요?”라고 긍정적으로 말했다[251].
자신이 제작한 음악 중 좋아하는 음악은 “아나타다케오 ~섬머 하트브레이크~”, “씨사이드 우먼 블루스”, “옐로우맨 ~별의 왕자님~”, “100만 년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252][164][253]. 또, 구와타가 생각하는 일본의 3대 명곡으로 우에키 이치로의 “하이 소레마데요”, 카사기 시즈코의 “카이모노 부기”, 후지모토 니사키치의 “기온코우타”를[254],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으로 미나(이탈리아의 가수)의 “모래에 사라진 눈물”이나 히데토 로잔나의 “사랑의 기적”을 들고 있다[255][256]. 애창곡으로 비틀즈의 “인 마이 라이프”를 들고 있으며[257], 무인도에 앨범을 한 장만 가져간다면 폴 매카트니의 ‘맥카트니’이고, 그중에서 “정크”와 “Maybe I'm Amazed”를 좋아한다[258].
구와타 게이스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과 가가사키에 대한 강한 애정과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평화의 거리」나 「노래하라 일본의 하늘」, 「신으로부터의 선물」처럼 그러한 주제의 음악을 제작하는 한편[264][265][266][267], 「반딧불」과 「등롱」처럼 전사자와 유족의 심정에 공감하는 음악이나[73][74], 「만화 드림」처럼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주제로 노래하거나[76], 같은 곡의 개사로 북한의 납치와 위구르족 사건 등 인권 문제의 계몽을 하는 측면도 존재하며[217][76], 국민의 심정과 생활에 공감하고[268][269],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며[55][57][58]:52,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본어와 일본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59][60], 국기 일장기 게양과 국가 「기미가요」 제창을 행하며[61][62], 독자적인 쇄국정책론을 주장하는 등,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언동과 행동을 자주 하고 있다[60]. 이러한 측면의 일부만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비판이나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270], 구와타는 “대중 음악이랄까 대중 연예랄까, 그런 것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보면 오해와 곡해는 피할 수 없고, 우리는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264],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도 “나는 특정한 주의도 없고 사상도 없고, 우익도 좌익도 자유주의자도 아니고, 성인군자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131].
구와타는 사회 풍자를 주제로 한 음악을 발표할 때는 직접적인 한 가지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주석 34] 자주 말하고 있다[131][225][226].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잘 된 것은 아니라고도 밝히고 있으며, “나 자신도 ‘ROCK AND ROLL HERO’ 같은 것은 꽤 마음에 들지만, 겉치레 같고 밑바탕이 얕다고 할까, 후회가 남는 곡도 많다”라고 말하고 있다[225]. 구와타는 앞서 말한 대로 태어나고 자란 일본과 가가사키에 대한 강한 애정과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음악의 가사에 담고 있으며, ‘구와타 케이스케의 상냥한 밤놀이’에서는 “고작 노래이니 대단한 힘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일본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평화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희망의 묘목을 심어가자, 지상에 사랑을 심어가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라고 「평화와 하이라이트」의 가사에 담긴 생각을 코멘트한 적이 있다[264][271]. 구와타를 오랫동안 취재해 온 음악 라이터 우치다 마사키는 같은 곡을 “일본에 대한 사랑과 세계 평화에 대한 소망을 세대를 초월하여 공유하고 싶다는 이상이 노래되어 있었다”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272]. 또한, 카츠야 세이히코는 구와타의 사상·철학에 대해 “구와타 케이스케는 우익도 좌익도 아니다. 아나키스트이다. 다만, 애국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가끔 느낀다”라고 평가하고 있다[273]. 음악 라이터 효고 신지도 구와타에 대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고, 권력과 파시즘을 싫어하는, 매우 “록적인 뮤지션”이다”라고 평하고 있다[274]. 스즈키 스지는 구와타에 대해 록 음악은 무엇을 불러도 좋다고 해석하고, 일본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전후 민주주의를 노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275].
2014년 가을에 자수포장을 수상했을 때 고쿄에서 알현한 경험이 있는 상황제·아키히토와 일본 황실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276][277]. 참고로, 황실 관계자 중에서는 일본 천황·나루히토가 사잔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발을 담당했던 사람의 증언으로 밝혀지고 있다[278].
다른 사람의 이념을 묻지 않고, 앞서 언급했듯이 스기야마 고이치부터 카토 토키코까지 폭넓은 뮤지션들의 음악성에 영향을 받아, 차별 없이 음악과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176][83]. 그들의 다양한 음악을 커버한 ‘혼자서 하는 홍백가합전’을 영상화하는 데 있어서는, 구와타의 인망과 인맥으로 모든 관계자의 동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279]. 각계에 폭넓은 팬과 친구[주석 39]가 있으며, 구와타는 그들에게도 이념을 묻지 않고 차별 없이 대해왔다[286][287].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권(대만, 홍콩, 한국 등)을 비롯한 해외 팬들도 있으며, 그들에게도 차별 없이 대해왔다[288][289][290]. 또한, 구와타는 레이디 가가 등 친일파임을 공언하는 외국인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291].
자라온 지가사키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2000년 사잔으로서 진행한 ‘지가사키 라이브’에서는 “지가사키에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292]. 또한, ‘구와타 게이스케의 상냥한 밤놀이’ 2024년 8월 17일 방송분에서 같은 고향의 선배인 카야마 유조를 특집으로 다룬 경우에는 “안녕하세요. 토요일 밤의 영원한 대선배, 구와타 “지가사키에서 태어나 행복하네” 게이스케입니다”라고 인사했다[293]. 타카스 미츠키에게 “앞으로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라는 ‘노래 금지령’이 세계적으로 내려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곡만 불러도 좋다고 한다면, 어떤 곡을 어떤 상황에서 부르겠습니까?”라고 질문받았을 때, 문부성 가요의 “고향”을 언급하며 “된다면, 모교인 지가사키 초등학교의 옛 음악 교실에서, 제 동급생들과 함께 부르고 싶네요”라고 답했다[294]. 후에 구와타는 ‘미야기 라이브 ~내일을 향한 행진!!~’에서 해당 곡을 하모니카로 연주했고[295],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 ‘구와타 게이스케의 상냥한 밤놀이’의 생방송 노래 코너에서도 열창했다[296]. 2006년 ‘ap bank fes '06’에 출연했을 때는 “저만의 원초적인 풍경이 있습니다. 그것이 ‘고향’이고요. 제 고향은 지가사키입니다. 그곳의 늪과 연못의 냄새, 그리고 거리의 감촉, 어머니의 온기가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습니다. 그런 모성과 냄새를 작품으로 만들어 간다든지, 그런 마음이 환경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생각을 이야기했고[132], 실제로 2007년에는 지가사키에서의 소년 시절 추억을 노래한 “MY LITTLE HOME TOWN”이 발표되었다[133]. 또한, 사잔의 곡으로 2023년에 발표된 “본길이 연가”, “노래하라 일본의 하늘”, “Relay~숲의 시”는 공통된 주제를 가진 3부작이라고 언론에서 이야기되고 있다[297]. 이 곡들은 모두 지가사키나 레코딩으로 다니는 도쿄 아오야마를 주제로 하며, 핵심 단어로서 ‘고향’이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다[297][298][220]. 특히 “노래하라 일본의 하늘”은 ‘지가사키 라이브 2023’의 테마송이 되어, 실제 라이브에서도 “여기(지가사키시)에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아주 평범한 신곡을 불러 드리겠습니다”라고 MC에서 말한 후 열창했다[266]. 해당 곡을 작사하는 데 대한 생각은 강했고, 구와타는 “가사를 쓰는 중에, 일본인이라면 자신의 고향이나 멀리 떨어진 곳을 생각하거나 신경 쓰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일본 전국이 농촌 이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촌 이탈로 인해 지방에서 젊은이들이 나가고 있습니다. 지방에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것을 좀 신경 쓰면서 ‘고향’(이라는 구절)인데요”, “솔직히 역시 지가사키 라이브에서 이 곡을 부른다는 것을 상정하고 있었지만, 지가사키만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국민 각자의 ‘내 집’이나 ‘고향’이라는 의미로, 그쪽(뉘앙스)으로 조금 기울였습니다”라고 레코딩 당시 이야기했다[299].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것과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56][58]:52,동일본 대진재 발생 일주일 후 방송된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 ‘구와타 게이스케의 상냥한 밤놀이’에서 “일본 국민 여러분은 멋지고 친절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 태어나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56].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본어와 일본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발언도 했으며[59][60],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 문화의 미래에 대한 강한 위기감에서 후술하는 바와 같이 독자적인 쇄국론을 주장하기도 했다[60]. 일본 국기인 일장기 게양과 국가인 ‘君가代’ 제창에도 긍정적이며, 라이브[주석 15], 영상 작품[주석 41], 라디오[주석 42] 등에서 그러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62][302][303][260][61]. 일장기에 대해서는 1984년 일장기를 든 사잔의 멤버 일러스트가 오이카와 마사미치에 의해 제작되어 정보 잡지 「피아」 표지가 된 적이 있으며[304], 또한 사잔 명의의 「도쿄 빅토리」 가사에도 “rising sun[주석 43]”이라는 말로 모티브로 삼았다[260][261]. 그 이유에 대해 구와타는 “전장에 가져간다거나, Show the flag[주석 44]가 아니라 (중략) 스포츠나 음악, 영화 등 문화적인 것으로 일본의 국기가 펄럭이는 느낌”, “‘금메달을 땄습니다!’라거나 ‘힘내라~!’ 같은, 그런 이미지도 있죠.”라고 말하고 있다[260]. 동곡의 제목에 ‘도쿄’를 붙인 것에 대해서는 일본의 상징이나 ‘모국’, ‘조국’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260]. 이러한 점에서 동곡의 제목과 가사에 대해 닛케이 엔터테인먼트!(2018년 9월호)에서는 “구와타의 일본에 대한 강한 애정이 묻어난다”고 높이 평가했다[53]. 또한 발매 당시 인터뷰에서 “제목은 도쿄이지만, 각자 자신의 고향을 소중히 여겨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모두가 건강하고 웃는 얼굴로 일본 전역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전국의 팬들에게 말했으며[308][260], 앞서 언급한 일본 전역의 농촌 이탈과 상점가의 활기 없는 도시가 존재하는 것 등을 우려하며, “앞으로는 제대로 지방의 일도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겠죠.”라는 취지의 말을 하거나[299][308][260], 자연재해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을 라이브 MC나 개사를 통해 전달하며 “힘내자!! 당신도 나도 이 나라도”라는 메시지를 보내거나[268][309][269], ‘미야기 라이브 ~내일을 향한 행진!!~’에서 「하다카 DE 온도 ~축제다!! 네이키드~」를 연주할 때 간주에서 “아이들의 미래와 소중한 목숨을 지킵시다!!”라고 외치는 등 국민의 생활에 寄り添う 발언을 자주 하고 있다[310]. 2022년 전국 투어 ‘서로 힘내자!!’의 도쿄 돔 공연에서 「요시코 씨」를 연주할 때 후렴구 전 간주의 랩 내용을 변경하여 도쿄의 명소를 칭찬하고, 코로나19와 엔저에 휘둘린 일본과 전쟁의 참화를 입은 우크라이나의 정세를 우려하며, “브라보 니혼!!”이라고 외치며 국민에게 응원을 보냈다[311].
히로시마현 및 나가사키현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관해 구와타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불합리"라고 표현했다[312]. "ROCK AND ROLL HERO"처럼 미국의 공과를 다룬 곡이나[313], 앞서 언급한 "반딧불" 및 "꽈리" [주석 35]처럼 전사자나 유족의 심정에 공감하는 곡도 있으며,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선조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있다[73][74][314]. 또한, 평화나 일본적인 것과 같은 넓은 의미에서 "‘화’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발언했으며[119][315], 2013년 사잔으로서 진행한 스타디움 투어 『작열의 망피!! G★스폿 해금!!』에서 "평화와 하이라이트"를 연주했을 때처럼 일장기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국기가 구체가 되어 굴러가고, 중앙에 평화 마크가 등장하는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영상을 삽입하거나[주석 45][71], 2012년 솔로로서 진행한 전국 투어 『I LOVE YOU -now & forever-』처럼 일본적인 화풍 요소를 라이브 연출에 활용하고 있다[316]. 2014년 가을에 자수포장을 수훈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을 때는 "일본이, 그리고 세계가 평화롭기를 바랍니다"라고 코멘트했다[72]. 구와타의 반전을 호소하는 태도는 할머니와 만주에서 히키아게샤였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구와타는 "전쟁처럼 비참한 일은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배웠습니다"라고 말했다[317]. 이러한 생각 및 가사나 무대 연출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거나, 일장기 게양과 관련된 잘못된 에피소드나 출신이나 사상에 관한 잘못된 정보처럼, 본래 전달하고 싶었던 의도와 정반대의 해석의 헛소문이 퍼진 적이 있지만, 이에 대해 구와타는 "일부만 잘라내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희망이나 우호, 긍정적인 마음이 듣는 사람에게 남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153][264][270]. 뮤직 비디오나 『제73회 NHK 홍백가합전』에서 구와타 게이스케 feat. 사노 모토하루, 세라 마사노리, Char, 노구치 고로의 작품으로 발표된 "시대에 뒤떨어진 Rock'n'Roll Band"를 연주했을 때는 구와타는 우크라이나의 국기와 같은 파란색과 노란색 무늬가 디자인된 기타 스트랩을 착용하고 노래했다[318][253]. 해당 곡이 제작된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으며, 가사 내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28]. 2023년 봄에 마츠토야 유미와 식사를 했을 때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건에 대한 우려", "다음 세대를 향해 지금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고, 최종적으로 구와타와 유밍은 함께 "지금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은 싸우고 상처 입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가가서 온화하게 대화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199][319].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발언을 하는 한편, 일본인의 순종적인 태도나 평화로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전쟁이나 평화, 안전보장 등의 현실에 대해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소위 평화보케를 하는 자신들을 경계하는 발언도 하고 있으며[320][321], "한밤중의 멋쟁이", "만화 드림", "가난뱅이 블루스", "더러워진 부엌"[주석 46], "ROCK AND ROLL HERO", "현대인 제군!!"[주석 31], "좋은 사람 ~Do you wanna be loved?~"처럼 그러한 자계의 마음이나 정치에 대한 풍자, 매스컴 및 미디어에 대한 비판 등을 가사에 담은 곡[323][324][325][322][326][215][321]이나 앞서 언급한 집단 괴롭힘이나 차별, 북한에 의한 납치나 위구르족 사건 등 인권 문제를 테마로 한 곡[주석 17]도 존재한다[64]:57,58[75][76]. 나카노 후지미 중학교 집단 괴롭힘 자살 사건으로 사망한 남자 중학생이 사잔의 팬이었던 것으로 보도되었으며, 이 사건에 마음 아파했던 구와타는 당시 묘 앞에 꽃을 바쳤다[239][327]. 구와타는 일본 사회의 풍조에 대해 분게이슌주(2018년 10월호)의 장편 인터뷰에서 "결코 무엇인가가 해결된 것은 아닌데, 왠지 금기시하는 것처럼 슬쩍 건드리지 않고 넘어가려고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대가가 동일본 대지진 때 다시 터져 나온 기분도 듭니다.", "정치적인 문제도 포함해서 그런 것을 말하거나, 하물며 표현 속에 담으면 '뭔가 좀 특이하네', '그런 거 별로 재미없으니까'라고 말하기 쉽지만, 그렇게 미해결된 것을 쌓아온 것이 일본의 가장 약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라고 지적하며, 마주해야 할 심각한 문제를 논의의 장에 올리는 것을 피하고, 임시방편으로 보고도 못 본 척하며 넘어가려는 것을 우려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221].
1993년에 열린 이즈미야 시게루의 오쿠시리섬 구제 콘서트와 Act Against AIDS '93에 참가한 이후로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328][329]. 특히 Act Against AIDS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구와타 게이스케 & Mr.Children의 작품으로 발표된 「기적의 지구」 수익 전액(약 2억 4천만 엔[330])을 에이즈 대책에 사용했고[330], 이후에도 콘서트 활동과 상품 판매, 그리고 그 수익을 계몽 팜플렛과 포스터 제작, 교육기관과 보건소 배포 등에 사용하며 활동 종료까지 기여했다[18]. 사실상 마지막 참가였던 2018년의 『Act Against AIDS 2018 헤이세이 30년도! 제3회 혼자 홍백가합전』에서는 앵콜 무대에서 하라 유코로부터 "오랫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꽃다발을 받았다[208]. 구와타는 25년에 걸친 Act Against AIDS 활동에 대해 "당시(1993년)에는 에이즈에 대한 이해도, 감염 및 예방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주석 48].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차별'이나 '편견'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이해하는 측면에서도 매우 좋은 기회였습니다"라고 회고하고 있다[332]. 또한, 치료법 발전으로 인한 사망률 급감과 올바른 지식의 확산으로 2020년에 Act Against AIDS 활동이 종료된 것에 대해서는 "오늘날 치료가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도 급격한 시대 변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활동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획기적인 전개였습니다 (중략) '혼자 홍백' 내레이션에서도 말씀드렸듯이, AAA 활동의 근본에는 '사람의 약함에 동행한다'는 주제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332].
동일본 대진재가 발생한 2011년 3월 11일, 구와타는 아내 하라, 밴드 멤버, 스태프와 함께 특별 방송 추가 녹음을 위해 도쿄 NHK 스튜디오에 있었다[295].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녹음은 취소되었고, 구와타는 잇따라 들어오는 비참한 뉴스에 마음 아파했다. 전년에 식도암으로 입원해 수술을 받고 회복한 것도 있어, 당연한 일상과 사람 목숨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던 차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310][295][333][334]. 또한, 음악과 라이브 수익을 피해 지역에 기부하는 등, 동일본 대진재를 포함한 여러 재해의 복구 지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으며[77][80], 팀 아뮤즈!! 명의의 자선 싱글 「Let's try again」 발매 당시 발표한 코멘트에서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위로, 그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구조 및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격려의 말을 전했다[335]. 지진 발생 반년 후 『미야기 라이브 〜내일을 향한 행진!!〜』이 개최되었고,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올리고[310], 「아오바성 연가」와 앞서 언급한 문부성 가요 「고향」을 연주했으며[310][295], 「달빛의 성자들」[주석 40] 아웃트로에서는 일장기 게양이 이루어졌고[259], 「내일을 향한 행진」에서는 "바라는 것은 멀리서 사는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부분을 "바라는 것은 도호쿠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복"으로 바꿔 불렀고[336], 「축제 후」 아웃트로에서는 공연장이 있는 미야기현뿐만 아니라 퍼블릭 뷰잉이 진행된 후쿠시마현·이와테현[주석 49]과 대상 지역에서 제외된 아오모리현·아키타현·야마가타현 등 도호쿠 지방 현 이름과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말을 외치며 일본과 도호쿠에 응원을 보냈다[259]. 동 라이브 DVD에 수록된 인터뷰에서는 피해자들의 고통 등 현실과 긍정적인 표현의 괴리, 그리고 "자신의 고향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구와타에게 있어 동 라이브의 큰 키워드가 "고향"이었음을 밝히고 있다[337]. 실제 라이브 MC에서도 "그 지진 이후로 왠지 일본이라기보다는, 일본 전역이 고향 같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공연장이 있는 미야기현을 "고향 센다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라이브 뷰잉이 진행된 후쿠시마현·이와테현[주석 49]의 일도 "고향 후쿠시마에서도, 고향 이와테에서도 모두 보고 있겠지만, (당시 시점에서) 가장 새로운 곡을 들어주세요"라고 배려하며 「내일을 향한 행진」을 불렀다[310]. 동 라이브 이후, 공연장인 세키스이하임 슈퍼 아레나는 "약속의 땅"이라고 자주 불리게 되었고[263][339], "지진을 잊지 않겠다", "잊히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사잔과 솔로 전국 투어 첫날 공연장으로 자주 선택되고 있다[340][341][342]. 2012년에는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후쿠시마현·이와테현의 부흥을 기원하며, 동 공연장에 왕벚나무(재배종)를 3그루 심었다[343]. 동일본 대진재 10년 후 신문 인터뷰에서는 "음악인으로서 도호쿠에 마주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고 생각합니다", "'도호쿠 부흥 세대'라고 할까요, 도호쿠 부흥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우리 세대에게는 최우선 순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295].
불법 약물의 존재나 약물 남용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으로 “마약에 의지한다고 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술자리에서 마약 사용을 권유받았던 과거나, 시간에 펑펑하고 연주 중에 고열을 낸다는 등의 약물 사용자의 증상을 이야기한 후) 그런 식으로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쪽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몰라요”라고 말하고 있으며, 약물 소지 등으로 체포된 전 사잔 멤버 오모리 타카시를 ‘구와타 게이스케의 야사시이 요아소비’에서 질책하기도 했습니다[344][345][346][347].
일본 음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구와타는 “(2010년 당시) 좋아하는 음악을 32년 동안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스태프와 팬들 덕분이다”, “나는 뛰어난 뮤지션이 아니다. (팬이나 리스너들은) 내 손버릇을 사랑해주시는 게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으며,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히라이 켄이 이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348][349]. 또, 드라마 ‘Sweet Season’(TBS 텔레비전) 내용에 맞춰 “LOVE AFFAIR 〜비밀의 데이트”의 가사를 써내려 갈 때의 회의에서 “나는 (음악의) 천재가 아니니까, 그저 (음악을 좋아하니까) 남들보다 세 배는 노력하죠”라고 말한 일화도 남아 있습니다[350]. 오퍼한 프로듀서 키지마 세이이치로는 구와타의 자세를 “구와타 씨는 노력하는 재능이 있는 ‘노력의 천재’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구와타 게이스케는 나가시마 시게오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350].
2005년 사잔 명의로 발표한 연주곡 “킬러 스트리트”에 대해 “혹시 음악의 신이 이 곡을 나에게 주신 걸지도 몰라요”라고 말하거나[351], 2008년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잔의 라이브 ‘진여름의 대감사제’ MC에서 “음악의 신에게 건배!!”, “음악의 신이 여러분에게 미소 지어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관객과 팬 및 관계자들에게 외치는 등, “음악의 신”이라는 말을 자주 즐겨 사용합니다[352]. 그 한편으로 무신론자임을 말하기도 했습니다[353].
40세 무렵에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의 안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재능은?”이라는 질문에 “17세 무렵의 감성을 아직도 믿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답했습니다[354]. 오타 히카리(폭소문제)는 이 에피소드를 좋아하며, 저서 ‘이질감’에서 화제로 삼고 있습니다[354][355].
좌우명으로 “다시 만날 날까지”를 들고 있으며, “‘안녕하세요’도 ‘안녕’도 아니고,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사람에게 이렇게 배려 넘치는, 사소한 마음씨, 아름다운 울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56]. 또, 우에키 이타루의 “닥쳐 나를 따라와”의 한 구절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도 좌우명으로 들고 있습니다[357].
구와타는 사잔을 해산시키지 않고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는 이유로 “절대, 사잔 올 스타즈는 해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깝잖아!”라고 말하고 있으며[358], 2005년에 개최한 전국 투어 ‘모두가 좋습니다!’의 도쿄 돔 공연 MC에서는 사잔의 활동에 대해 “앞으로도 천천히, 목숨이 있는 한 계속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359].
팬이나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미야기 라이브 〜내일을 향한 행진!!〜’의 종반 MC에서 “포기하지 마세요. 무엇이든. 무리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인생을 즐겨주세요”라고 말한 것 외에[259], 최근 라이브에서는 엔딩에서 “모두 죽지 마! ”, “힘내자!”라고 외치며 응원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360][361].
애처가로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라디오에서 “여자의 의견이라든가, 여자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이것이 기본이죠. 사는 데 있어서”와 같은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362]. 2010년 여름의 식도암 조기 발견은 아내 하라와 어린 시절 친구인 의료 관계자 등을 시작으로 주변의 행동의 결과라는 것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363]. 그 때문에 구와타는 병세 발각 직후 출연한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서 “앞으로는 하라 유코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겁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발언했습니다[363].
작사가로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으며, 아키모토가 작사한 곡을 ‘구와타 게이스케의 야사시이 요아소비’에서 틀었을 때는 “아키모토 씨 제자로 삼아주세요, 돈 벌고 싶어요!”, “(아키모토가) ‘더 베스트텐’에서 구성 작가였을 무렵에 (구와타가) 앨범을 여러 장 건넸잖아요. 일 좀 주세요!” 등과 같은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364].
1981년 안넷 ‘안네샹테S’의 CM에 출연. 의자에 앉은 구와타가 “저는 남자에게도 생리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위대한 여성에게 감사합니다” 등과 같은 내용이 여성층으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았습니다[365]. 당초 5월에 2주간만 방영할 예정이었지만, 재방영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안네 본사에 쇄도하여, “앙코르 캠페인”을 벌이는 여성지까지 등장하여, 같은 해 8월부터 10월까지 재방영되었습니다[365]. 당시 남성이 여성용 생리용품 CM에 출연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쾌거였습니다[365].
2013년 사잔의 활동 중 영화 영원의 제로 주제가 제의를 받았을 때, 제작 중인 영화를 관람하고 본인 말에 따르면 “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친한 관계자들에게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고, ‘호타루’를 작곡하여 제공했다[73]. 구와타 게이스케는 정보 공개와 함께 발표된 코멘트에서 “‘가족을 위해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닌가.’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힘이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통하는, 그러한 주인공 미야베 큐조의 모습에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366]. 같은 곡은 영원의 제로 원작자 햐쿠타 나오키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가슴에 와 닿는 훌륭한 노래”라고 평가한 바 있으며[367][368], 사잔 팬임을 공언한 변호사 키타무라 하루오와 정치인 야마다 히로시로부터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283][369].
타마이 시오리(모모이로 클로버 Z)는 자신의 이름 유래가 사잔의 시오리의 테마에서 왔다는 것을 구와타에게 직접 전했다[370]. 구와타는 그것을 받아 “내가 이름을 지어준 셈이네요”라며 자랑하며 웃음을 자아냈다[370][371][372].
오카마에 대해 “남자와 여자의 하프니까 뉴하프네”라고 오사카 라디오 방송에서 “베티의 마요네즈”[373](펍) 마마에게 이름을 붙여 “뉴하프”라는 말을 세상에 퍼뜨렸다[374]. 하지만 구와타 자신은 자신이 퍼뜨린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다[375].
라디오 퍼스널리티로서의 평가도 높고, 특히 ‘구와타 게이스케의 야사시이 요야소비’에서는 자연스러운 토크와, 음악 제작 뒷이야기, 라이브 등을 펼치고 있다[376]. 같은 방송에서는 여러 번 독특한 명언 및 이른바 명언을 발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사상과 어록의 일부는 방송에서 나온 것도 포함되어 있다[362]. 구와타는 방송 전부터 메모 등 철저한 준비를 꼼꼼히 하고, 즉흥적인 토크를 시간 내에 끝내도록 신경 쓰고 있다[377]. 또한 라디오 토크에 관해서 ‘올 나이트 닛폰’에 대해서는 “친근한 형님 같은 화법으로 인기를 모았다”고 후년에 평가받았고[378], ‘야사시이 요야소비’에 대해서는 “만담가 같은 구와타풍으로 방송 코드를 아슬아슬하게 다루며 방송을 흥미롭게 만든다”라고 POPEYE 2020년 11월호에서 소개되고 있다[379].
음악과 마찬가지로 에로틱한 요소가 있는 발언도 많이 보이며, 처음에는 말이 나오지 않을 때나, 진지한 라이브나 화제 후에 어색해지면 방송 금지 용어를 갑자기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현재는 토크 실력이 향상된 덕분에 방송에서 그러한 발언을 하는 빈도는 감소 추세에 있다[377].
구와타 게이스케는 명백한 일본인이며,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역시 저는 일본인입니다”, “제 안에는 당연히 일본인의 정서 그 자체가 있습니다”라고 민족적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57][58]:214。일본 문화와 고전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계절의 정경[주석 50]과 고어·도도이츠·난징규쿠스다레를 비롯한 일본풍 요소를 음악 가사와 라이브 연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381][387][388][316]. 특히 가사에 대해, 그의 솔로곡 “카게보시”는 “토니 비스콘티 풍의 환상적인 스트링스 어레인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묘사되는 세계는 하이쿠와 같은 일본 정서를 풍기고 있다”고 다카세 코우이치가 평가했으며[149], 사잔의 곡 “토오리얀세”는 “구와타가 신중하게 선택한 일본어가 아름답고도 슬픈 가마쿠라의 사계절을 그리고 있다. 이를 단어의 울림과 흐름을 중시하여 강렬하게 부르는 모습은 압권이다”라고 스태프가 평가했고[389], 원 유코에게 제공한 “교토 이야기”는 “오랜만에 교토에 갔을 때 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재인식하고, 그런 것에 자극받아 만들었다[주석 51]”, “원 씨에게 딱 맞는 곡”이라고 구와타 자신이 제작 경위와 완성도를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391]. 음악 프로듀서 카메다 세이지는 이러한 자세를 취하는 구와타를 두고 “‘일본인이다’라는 것을 최대의 무기로 삼아 음악을 만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평가하며, 가사에 대해서는 “매우 일본적인 키워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가진 문화나 일본 민족의 역사 같은 것을 구와타 씨는 아주 자연스럽게 음악 가사로 정리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등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86]. 또한 DVD 책자에 에치젠 와시를 사용하거나, 직접 슌가풍 일러스트를 그려 티셔츠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등, 솔로와 사잔을 막론하고 DVD나 상품 등에도 일본 문화와 일본풍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392][393]. 또한, ‘구와타 케이스케의 야사시이 요루 아소비’에서도 일본의 사계절·풍습과 명소의 매력을 청취자로부터 모집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구와타가 이야기하는 기획을 자주 실시하고 있습니다[394][주석 52].
일본인이 일본 문화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강한 위기감을 가지고 있으며[60], 그러한 생각이 있기에 비틀즈 등 외국의 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나 일본 정서를 자신의 음악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싶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모두 일본인이라는 것을 더욱 그리워해야 한다”고 말하거나[58]:52, 사잔의 11번째 오리지널 앨범 ‘세에 만요노 하나가 사쿠나리’ 제작 과정에서 ‘만엽집’을 다시 읽고, 일본어 특유의 정서와 정보량의 풍부함에 흥미를 느끼면서 “이 단어를 우리는 없애도 될까”라는 위기감을 가졌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59]. 2012년 베스트 앨범 ‘I LOVE YOU -now & forever-’ 발매에 맞춰 방송된 WOWOW 인터뷰에서 “지금 관심 있는 것은 일본의 ‘와(和)’입니다. 그런 것을 무대에 도입할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발언했고[398], 저서 ‘역시, 단지의 가사가 아니잖아, 이런 건’에서도 “옛 일본 문화를 무대 등에 도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라고 같은 해에 개최된 전국 투어의 연출안을 이야기했고[64]:294, 실제로 전국 투어 ‘I LOVE YOU -now & forever-’에서 그 연출이 도입되었습니다[316]. 또한, 그 후에도 사잔의 15번째 오리지널 앨범 ‘포도’ 제작 경위를 “전후 70년, 우리 일본인의 과거에서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방식, 생각 방식을 가슴에 멤버, 스태프 일심동체로 만들었습니다”라고 간결하게 코멘트하거나[399], 2015년 사잔의 전국 투어 ‘맛있는 포도의 여행’에서 백인일수 80번 (다이켄몬인노 호리카와 작)을 낭독하는 등의 행동이 보이고 있습니다[238]. 참고로, 현재는 세계 평화와 우호를 호소하고, 글로벌한 발전 등을 의식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이미지가 강하지만[72][270][400], 앞서 언급한 일본과 일본인 및 일본 문화의 미래에 대한 강한 위기감에서, 독자적인 쇄국정책론을 주장한 측면도 존재하며, 1999년 발매된 저서 ‘멋진 꿈을 이루자’에서는 “일본은 한 번 더 쇄국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항상 생각하고 있어서 (중략) 그러니까 무역은 데지마만으로 충분하다(웃음). 그러면 일본인의 모습, 문화의 내용 같은 것을 조금 더 생각하지 않을까. 거리 풍경 등을 포함해서, 어쨌든 우리는 행정 등이 개입되면 일본의 좋은 점을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중도적으로 국제화를 주장한다면, 차라리 쇄국하는 편이 일본인의 개성에는 맞는 것이 아닐까”라는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401][60].
앞서 언급했듯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본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기에,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말투나 일본어의 혼란스러움에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ガチヤ바이(가치야바이)”, “パない(파나이)” 와 같은 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거나[59][402], “超(초우)”나 “彼氏(카레시)”와 같이 음압과 억양을 중시하는 말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비주얼이 너무 강해서, 거기에 맞춰 문장을 만들고 독특한 억양을 만들어내는 것이 너무 능숙해졌다”, “말에서 파생되거나 의지하는 것이 희박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59]. 또한 많은 젊은 가수와 뮤지션들의 재능과 가창력을 인정하는 한편[207], “요즘 J-POP에는 ‘살아있는 가사’가 부족한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을 위한 팝송에서는 공감이나 현실감을 느낄 수 없다”, “일본인이 일본인을 위해 일본에서 일본어를 사용하여 부르는 노래의 충격이 작아졌다”는 견해도 보이고 있으며[403][119], 자신이 가요곡과 엔카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일본어 가사를 쓰는 것에 대한 강한 열정을 어필하며 “그렇다면 내가 직접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19].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진지하게 이야기한 후 “그렇게 말하는 나도 ‘바디 스페셜 II’에서 "얽히고설켜 사랑은 Feel So Good" 같은 가사를 쓴 장본인이기에, 전혀 훈계할 입장은 아니지만”이라며 자학적인 맺음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119].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일본 문학 <메들리>” 제작에 임하며 다양한 일본 문학에 접한 것이 이후 오리지널 음악 제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하며, 동시에 일본어의 아름다움과 뉘앙스를 살리는 방법, 선배들의 풍부한 표현력에 놀랐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404]. 또한 2012년 전국 투어 ‘I LOVE YOU -now & forever-’에서 에히메현마쓰야마시에 머물 당시 도고 온천 본관을 방문하여 나쓰메 소세키[주석 54]를 기리는 “도련님 방”을 견학했을 때는 “현대 미술에서도 그렇지만,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대중은 거기에 매력을 느끼고 열광했을 것이다. 일본인의 언어 감각이나 사고방식, 나는 자랑스럽게 느꼈다”라고 말했다[407]. 음악 평론가 이와타 유키오는 해당 음악에 대해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일본 문학’에서 그는 자신의 뿌리와 어른이 되면 무엇이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을 애국심이라고 한다”고 평가했다[408].
하이쿠와 단카도 좋아하며, ‘구와타 게이스케의 상냥한 밤놀이’에서는 여러 차례 구회를 개최하여, 방송국에서 지정한 계절어로 계절에 맞는 하이쿠와 단카를 청취자들에게 모집했다[409][376].
2022년 전국 투어 ‘서로 건강하게 힘냅시다!!’에서는 장소에 맞춰 각 지역의 민요와 향토 가요를 부르는 코너가 있었다[주석 55]. 이 코너는 미하시 미치야와 미나미 하루오가 부르는 가요곡이나 에리 치에미가 부르는 “사노사” 등이 TV에서 방영되거나, 아버지의 콧노래가 “사노사”나 도도이츠였던 등,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음악을 듣는 환경에 있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으며, 구와타는 “그런 것들이 어릴 적부터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그런 일본 노래나 민요를 아주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412].
앞서 언급한 “토오리얀세” 가사에 와카미야 오오지의 일·이·삼의 토리이를 등장시키는 등[381], 고료 신사를 산책 코스로 좋아하는 등 신사 불각 참배에 긍정적이다[134]. 또한 매일 부쓰단과 가미다나에 손을 모으고[413], 부모님과 누나의 묘소 참배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414]. 또한 고향인 치가사키에서는 매년 여름 하마오리사이가 개최되고 있으며[주석 56], 사잔 명의의 “노래하라 일본의 하늘” 가사의 모티브가 되거나[384], 솔로 명의의 “MY LITTLE HOME TOWN”에서 치가사키 진쿠의 외침 음원을 샘플링하거나[383], 2009년 바다의 집 ‘나츠쿠라부’에서 연주했을 때는 백댄서가 법피를 착용하고 작은 미코시를 짊어지거나[123], 2017년 전국 투어 ‘가라쿠타’에서 연주했을 때는 백모니터에 미코시를 등장시켜 무대에 있는 구와타도 짊어지는 시늉을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등, 전통 행사와 신사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385]. 또한 사잔 명의의 “I AM YOUR SINGER” MV에서 구와타를 비롯한 멤버들이 타고 있던 카트에는 “하마오리사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87].
패션과 음식 면에서도 일본적인 요소를 좋아하며, 요양 후 2010년 12월 31일 ‘제61회 NHK 홍백가합전’에 빅터 아오야마 스튜디오에서 중계로 출연하여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을 때는 몬쓰키 하오리 하카마 차림으로 “그래 가자 베이비!!”와 “사실은 무서운 사랑과 로맨스”를 열창했다[415]. 미니 앨범 ‘밥 미소시루 김 절임 달걀말이 feat. 매실장아찌’를 특집으로 다룬 ‘ROCKIN'ON JAPAN’ 2021년 10월호에서는 와시쓰를 배경으로 유카타 차림의 구와타가 표지와 그라비아에 등장했다[416]. 구와타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일식 메뉴로 쌀밥, 미소시루, 김, 절임, 달걀말이, 매실장아찌 6가지를 들었다. 이것들은 동 미니 앨범의 제목과 재킷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416][417].
가부키에 관심이 있다[418]. 구와타 게이스케는 18대째 나카무라 칸사부로의 팬이며, 18대째 칸사부로도 사잔의 팬이었다. 18대째 칸사부로가 특발성 양측성 감각 신경성 난청으로 요양했을 때 구와타가 편지로 격려를 보낸 것을 계기로, 양측 간에 간접적인 교류가 있었다[419][420]. 2012년 전국 투어 ‘I LOVE YOU -now & forever-’에서는 오프닝에서 가부키를 의식한 연출[주석 57]이 도입되었다[316]. 또한, 사잔 팬임을 공언하고 있는 4대째 나카무라 우메타마와도 교토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의기투합하여 교류가 있다[421]. 사잔의 곡 「恋のブギウギナイト」에서는 가부키의 목소리ネタ를 의식한 SE가 후렴구 전 간주에 도입되어 있다[422].
라쿠고 팬이며, 공언하고 있는 뮤지션으로는 야마시타 타츠로와 사다 마사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423][424]. 구와타는 라쿠고의 매력을 “인간의 색기”라고 표현하고 있다[425]. 라쿠고에 존재하는 어감에 친숙함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으며, 가사에 등장하는 세련된 에도말풍의 프레이즈는 라쿠고의 영향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426]. 구와타가 소년 시절을 보낸 쇼와 30년대부터 40년대는 쇼와 라쿠고의 황금기라고 불리며,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라쿠고가들은 당시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존재였다[426]. 특히 좋아하는 라쿠고가로 타치카와 단시, 3대째 코킨테이 신쵸, 5대째 코킨테이 신쇼 등을 들고 있다[10][426]. 특히 단시에 대한 경도는 상당한 것이며, 앞서 언급한 ‘제61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했을 때는, 단시가 발한 “뜻하지 않은 병”이라는 프레이즈를 빌려 자신이 병( 식도암)을 극복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427], 구와타를 특집으로 다룬 “BRUTUS” 2011년 3월 1일호에서는 단시가 출연한 ‘라쿠고의 핀’ DVD를 보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428]. 또한, 타치카와 시노스케, 3대째 카츠라 슌쵸, 카츠라 쟈쿠쟈쿠 등과의 공연이나 교류가 있다는 것이 이야기되고 있다[429][430][431][432]. 3대째 코킨테이 신쵸, 타치카와 시노스케, 카츠라 키치야, 하야시야 타이헤이, 타치카와 시노타로, 타치카와 키위, 타치카와 시라라 등과 같이 사잔 팬임을 공언하고 있는 라쿠고가도 많으며[433][429][434][435][436][437][438][439], 특히 3대째 신쵸는 자신의 고별식 발인 음악에 사잔의 곡이 사용될 정도였다[433]. 구와타는 2016년과 2017년에 가상의 라쿠고가 ‘파죠테이 베이유’로 분장하여 라쿠고를 연기한 경험이 있다[10][9]. 카츠라 쟈쿠쟈쿠는 구와타의 라쿠고를 연기하는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을 하고 있으며, ‘파죠테이 베이유’ 명의로 독연회를 개최하는 것과 신작 라쿠고를 제작하는 것을 구와타에게 요청하며, “영향력 있는 베이유 선생님이시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라쿠고의 재미를 널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칭찬하고 있다[440].
2017년 카츠라 쟈쿠쟈쿠의 라쿠고회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브레이크 전의 6대째 칸다 하쿠잔[주석 58]의 고단을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서 언급하며 높이 평가했다. 당시 구와타는 오랫동안 이메일로 친분이 있는 오타 히카리(폭소문제)에게 하쿠잔의 이야기를 했으며, 후에 오타와 하쿠잔은 공연하는 빈도가 많은 사이가 되었다[441].
구와타는 학창 시절, 아버지에게 배운 영향으로 볼링에 심취한다[442]. 동경했던 프로 볼러로 이와가미 타로를 들고 있으며, 특히 학창 시절에는 이와가미의 폼을 따라하며 교실에서 선보이기도 했다[443]. 프로 볼러를 목표로 했던 시기가 있으며, 마이볼을 소지하고 아마추어 공인 시합에 출전했다[100]. 어른들과 함께한 공식전에서 우승하여 트로피를 획득했다. 40년 이상이 지난 2017년에는 실물을 발견하여 사진으로 공개했다[444]. 당시에는 매주 4게임씩 던졌고, 평균 점수는 220점 정도였다. 또한, 볼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으며, 레인에 오일을 바르는 등, 손님이 없는 새벽에는 연습도 했다. 하지만, 볼링 레인의 규정 등이 바뀐 후 폼이 잡히지 않아, 거기서 프로 볼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음악에 관심이 옮겨갔다[100][442].
2016년 친분이 있던 야지마 준이치 프로에게 환갑 선물로 마이볼을 받은 이후로 볼링 열기가 재점화되어, 주 1회 스태프와 10게임 이상 플레이하고 있다. 그 실력은 나이를 먹어도 쇠퇴하지 않아, 1년 후인 2017년에는 279점[주석 59]이라는 고득점을 달성했다[445]. 같은 해에는 스스로 편집장에 취임하여 ‘Sports Graphic Number’의 볼링 특집호 ‘Number PLUS 구와타 게이스케×볼링 특집’(분게이슌주, ISBN 9784160082311)을 제작했다.
2019년 이후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볼링 대회 ‘KUWATA CUP’을 개최[446]했다. 테마송도 담당했으며, “일본 볼링 경기 공식송”으로 일본 볼링 협회로부터 인정받았다[446][447].
2020년 1월 31일, 자신의 첫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448][449].
1956년 2월 26일 가나가와현 지가사키시에서 태어났다[619].
1962년 지가사키시립 지가사키 소학교에 입학했다[619][620]. 초등학교 시절부터 막연하게 가수가 되는 것을 꿈꾸었지만, 선생님들 중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건축가나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407]. 5, 6학년 무렵 목욕 중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 유행하던 가요곡을 불렀는데, "잘한다"고 칭찬받은 경험이 있으며, 그것을 후의 음악 활동의 원점으로 꼽고 있다[621]. 또한 이 에피소드는 같은 고향의 선배인 카야마 유조도 아버지를 통해 알고 있으며, 자주 소개하는 일이 있다[613][622].
1968년 지가사키시립 제일 중학교에 입학했다[619][623]. 당시에는 야구부에 소속되어 있었고[624], 에이스였다. 같은 야구부에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미야지 준이치와 교류하게 되었다[625][623]. 이 무렵부터 교단에서 콘서트장처럼 노래하며 모두를 즐겁게 했고, 또 칠판 지우개를 마이크 삼아 마에카와 키요시의 성대모사를 하는 등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보였다[626][627][주석 67]. 등교 전 새벽에는 학교 바로 옆에 있던 퍼시픽 호텔 지가사키에서 볼링을 쳤다[629].
1971년 가마쿠라가쿠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619][630]. 당시에는 친구와 둘이서 "볼링부"라고 이름을 붙이고 트레이닝과 연습을 했다[629]. 또한, 그동안 교류가 없었던 초중학교 동급생들과도 음악을 통해 교류가 생겨 서로의 집에 드나들며 악기를 연주하며 비틀즈 등을 둘이서 불렀던 것이 구와타에게 기타와 피아노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631]. 3학년이 된 1973년 미야지의 제안으로 가나가와현립 가마쿠라 고등학교 문화제(가마쿠라 고교제)의 록 콘서트에 출연하여, 비틀즈의 「머니」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블루 스웨이드 슈즈」를 선보였다[632]. 이것이 구와타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한 첫 무대였다[633]. 본인에 따르면 3학년 때는 공부에 집중했고, 영어와 일본사와 국어를 공부했다. 특히 영어와 일본사는 자체 채점 결과 만점이었다고 한다[634].
1974년 5개 학교의 입시를 본 결과, 가장 먼저 합격 통보 전화가 온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에 입학했다[634][619]. 대학 음악 서클 「BETTER DAYS」(베터 데이즈)에 소속되어[635], 본격적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온천 안마 모모히키 밴드", "뇌졸중", "피스톤 구와타와 실린더즈", "아오가쿠 도미노스" 등 밴드 이름을 자주 바꾸고 멤버 교체를 반복했지만, 1976년경부터 미야지의 명명으로 자신의 밴드에 “사잔 올 스타즈”라는 이름을 사용했다[633].
1977년 사잔(サザン)으로 ‘이스트웨스트 77(EastWest '77)’에 출전하여, 쿠와타(桑田)는 베스트 보컬상을 수상하며 데뷔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무렵 쿠와타는 음악 프로가 될 생각은 없었다[636]고 전해지지만, 한편으로는 가볍게 “작사가가 되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고도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 시절 쿠와타에게 끽다점(喫茶店)에 다니며 바텐더(バーテンダー) 공부를 하거나 자위대(自衛隊)에 입대하는 것을 권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쿠와타는 인터뷰에서 이 일을 회상하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나를 잘 생각해주셨구나 싶습니다”라고 말했다[637].
1978년 6월 25일 빅터 음악산업(ビクター音楽産業)을 통해 사잔 올 스타즈(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로 “맘대로 신드바드(勝手にシンドバッド)”로 메이저 데뷔를 했다.
1979년 쿠와타는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青山学院大学)에서 제적되었다[15][619].
1980년 발매한 사잔의 세 번째 앨범 ‘타이니 버블스(タイニイ・バブルス)’에 수록된 하라 유이코(原由子)의 보컬곡 “나는 피아노(私はピアノ)”가 인기를 얻어, 1981년 쿠와타의 프로듀스로 하라가 “아이 러브 유는 혼잣말(I Love Youはひとりごと)”로 솔로 데뷔를 했다. 1982년 쿠와타와 하라는 결혼했다[45]:10,19-24. 이후 두 아이를 낳았다[638]. 또한, 1982년 나카무라 마사토시(中村雅俊)에게 제공한 “연인도 젖는 길거리(恋人も濡れる街角)”가 50만 장 가까이 팔리며[639], 1983년에는 아미다 바바아(アミダばばあ) & 타케짱맨(タケちゃんマン)에게 제공한 “아미다 바바아의 노래(アミダばばあの唄)”가 35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주석 68][537].
1986년 하라가 출산휴가에 들어가면서 사잔은 활동을 중단했다[641]. 쿠와타는 같은 해 1월 결성한 쿠와타 밴드(KUWATA BAND)로 활동했다. 활동 기간은 1년이었으며, 싱글 4곡도 히트했다. 유일한 스튜디오 앨범 ‘닛폰 노 록 밴드(NIPPON NO ROCK BAND)’는 일본어 가사 중심으로 구성된 싱글곡은 전혀 수록하지 않고, 전곡 신곡의 전 영어 가사 앨범이 되었다[45]:11,48,54-55. 같은 해와 1987년 12월 24일에는 자신이 기획·출연한 특별 프로그램 ‘메리 크리스마스 쇼(メリー・クリスマス・ショー)’(일본 텔레비전(日本テレビ) 계열)이 방송되어 아카시야 산마(明石家さんま), 마츠토야 유미(松任谷由実), 이마와노 키요시로(忌野清志郎) 등과 함께 출연했다[642].
1987년 10월에는 “슬픈 마음(JUST A MAN IN LOVE)(悲しい気持ち (JUST A MAN IN LOVE))”로 솔로 데뷔했다. 고바야시 다케시(小林武史)와 후지이 조지(藤井丈司)가 곡 제작에 참여하여, 프로그래밍(プログラミング)과 打ち込み(우치코미) 중심의 팝스(ポップス) 라인을 전개했다. 1988년에는 쿠와타, 고바야시, 후지이의 공동 프로듀스로 첫 번째 앨범 ‘쿠와타 케이스케(Keisuke Kuwata)’를 발매했다. 발매 후 다시 사잔으로서의 활동을 재개했다[45]:11,48,54-55.
사잔 활동과 병행하여, 1989년 9월부터 자신이 감독과 음악을 맡은 영화 ‘이나무라 제인(稲村ジェーン)’ 촬영을 시작하여, 동시에 영화 음악 녹음도 시작했다[155]:10. 영화는 1990년 9월에 개봉되어 찬반 양론이 있었지만, 배급 수입은 18억 3천만 엔을 기록하며 같은 해 일본 영화 배급 수입 연간 4위에 랭크인했다[643][644]. 1991년 7월 사잔으로 “네오 브라보!!(ネオ・ブラボー!!)”를 발매한 후 쿠와타는 고바야시를 맞이하여 슈퍼 침팬지(SUPER CHIMPANZEE)를 결성하고, 9월에 “크리와 영원히(クリといつまでも)”를 발매했다[45]:12.
1993년 7월, 쿠와타는 사잔으로 발매한 “에로티카 세븐(エロティカ・セブン)”의 히트 직후 다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45]:78. 제2기 솔로 활동에서는 오구라 히로카즈(小倉博和)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10월에는 세 번째 싱글 “한밤중의 댄디(真夜中のダンディー)”를 솔로로 발매했다. 11월 삿포로 후생 연금회관(札幌厚生年金会館)에서 열린 이즈미야 시게루(泉谷しげる)의 오쿠시리섬(奥尻島) 구제 콘서트에 참가[329]하고, 12월에는 액트 어게인스트 에이즈(アクト・アゲインスト・エイズ)의 일환으로 Act Against AIDS '93에 출연하는 등 자선 활동도 펼쳤다[645].
1994년 2월 어머니가 심근 경색(心筋梗塞)으로 6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이 사건은 당시 작풍에 영향을 미쳤다[646][64]:53 - 59. 8월에는 네 번째 싱글 “달(月)”을 발매하고, 9월에는 두 번째 앨범 ‘고독의 태양(孤独の太陽)’을 발매했다. 앨범은 전작과 달리 악기 본연의 소리에 주목한 어쿠스틱(アコースティック)(어쿠스틱 음악(アンプラグド))·포크(フォーク) 라인을 전개했다[64]:53 - 59. 10월 말에는 다섯 번째 싱글 “축제 후(祭りのあと)”를 발매했다. 12월에는 Act Against AIDS '94에 출연하고, 연말에는 연말 라이브를 개최했다[45]:12.
1995년 1월, 고바야시 다케시 프로듀스로 Mr.Children과 협업한 자선 싱글 「기적의 지구」를 발매했다. 6개월간 한정 판매였지만 17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수익금 전액은 Act Against AIDS 기금에 기부되었다[647][648]. 4월부터 현재까지 방송 중인 라디오 프로그램 「구와타 게이스케의 상냥한 밤놀이」가 시작되었다. 5월부터는 사잔으로서의 활동을 재개했다[45]:12. 1995년에도 계속해서 Act Against AIDS '95에 출연했다. 1996년 이후로는 구와타가 단독으로 Act Against AIDS의 일환으로 라이브를 개최했다[45]:13.
2000년 10월, 사잔 활동과 병행하여 구와타는 후지TV 계열에서 자신의 간무리반구미인 「구와타 게이스케의 음악 도라산 ~MUSIC TIGER~」을 시작했고, 11월에는 파시피코 요코하마에서 「Act Against AIDS 2000 구와타 게이스케가 선택한 20세기 베스트 송」을 개최했다. 2001년부터는 구와타가 완전히 솔로 활동으로 전환했다. 같은 해 7월 발매한 6번째 싱글(음악) 「파도타기 조니」가 110만 장, 10월 발매한 7번째 싱글(음악) 「흰 연인들」이 120만 장을 기록하며 여름과 겨울의 팝송이 히트했다[649][45]:14,72,82,171. 11월에는 파시피코 요코하마에서 「Act Against AIDS 2001 구와타 게이스케 plays "The Beatles" 콰가타무시 대 카부토무시」를 개최하여 존경하는 비틀즈의 넘버를 연주했다[650].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45]:14,72,82,171.
2002년에는 사이토 마코토, 카타야마 아츠오 등 서포트 멤버들과 결성한 THE BALDING COMPANY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전년에 발매한 팝 작품과는 달리 밴드 형태의 본격적인 록 음악 라인을 전개했다. 8월에는 「ROCK IN JAPAN FESTIVAL 2002」에 출연했다[651]. 9월에는 6월에 발매한 8번째 싱글(음악) 「도쿄」를 수록한 3번째 앨범 「ROCK AND ROLL HERO」를 발매했다[45]:14,72,82,171. 12월에는 베스트 앨범 「TOP OF THE POPS」를 발매했고, 전년도 곡들은 이 앨범에 수록되었다. 이 베스트 앨범은 170만 장을 기록하며 솔로 명의로 최대 히트작이 되었다[652]. 11월부터 12월에 걸쳐 전국 돔 투어를 개최했다[45]:14.
2003년 이후로는 사잔이 25주년을 맞이함에 따라 다시 사잔으로서의 활동을 재개했다[45]:14,72,82,171. 2004년 3월, 아버지가 암성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에서 구와타는 상주로서 인사를 했고,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했던 쿠로사와 아키라와 로스 프리모스의 「러브 유 도쿄」를 어쿠스틱 기타로 불렀다[473][653][621].
2006년 8월 26일과 27일, 하마나코 가든 파크에서 THE 무진토 Fes.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계기는 구와타가 「무인도에서 페스티벌을 개최할 수 없을까」라고 제안한 것이 실현된 것이다. 출연자는 아뮤즈의 후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 BEGIN, 포르노그라피티, ONE OK ROCK 등, 그리고 구와타와 교류가 있는 카야마 유조, Mr.Children, GLAY 등도 참가했다[45]:86. 같은 해 11월부터 12월에 걸쳐 구와타는 「Act Against AIDS 2006 「성조기여 영원하라!? ~나의 아메리칸 히어로즈」」를 개최했다[45]:15,88.
2007년 4월, 구와타가 본격적으로 솔로로 활동하는 것이 발표되었고, 5월에 9번째 싱글(음악) 「내일 맑겠지」를 발매했다.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컬러링에서는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대히트했다. 이후 8월 발매한 10번째 싱글(음악) 「바람의 시를 들려줘」와 12월 발매한 11번째 싱글(음악) 「달링」도 모두 오리콘 1위를 차지했다. 11월부터 12월 말까지, 연말을 겸하여 솔로 라이브 투어를 개최했다[45]:15,88[654]. 2008년은 사잔이 30주년을 맞이함에 따라 다시 사잔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45]:87. 또한 솔로로서는 같은 해 3월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 이시가키 시민회관에서 「구와타 게이스케 어쿠스틱 라이브 in 이시가키섬」을 개최했다[655].
2008년 5월, 연말까지 사잔이 무기한 활동 휴지에 들어간다는 것을 발표했고, 8월에 라이브 「한여름의 대감사제」를 개최했다[45]:15,88. 10월, 구와타의 음악성에 영향을 준 누나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656]. 11월, 구와타는 솔로로 「Act Against AIDS 2008 쇼와 83년도! 혼자 홍백가합전」을 개최했고, 2009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재개했다. 구와타는 4월부터 9월까지 「구와타 게이스케의 음악 도라산 ~MUSIC TIGER~」(정규 2기)에 출연했다. 프로그램 종영과 함께 10월부터 2010년 10월 발매 예정인 4번째 앨범 「MUSICMAN」 제작에 들어갔고, 12월에는 12번째 싱글(음악) 「너에게 작별을」을 발매했다[45]:15,88.
2010년에 접어들어 매년 생일(2월 26일)을 기점으로 하는 정기 건강검진을 6개월 이상 앞당겨 7월에 받은 결과, 식도암[657] 진단을 받았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음악 활동을 중단했고, 10월 발매 예정이었던 앨범 ‘MUSICMAN’은 발매가 연기되었으며, 이후의 라이브 투어도 취소되었다[658]. 8월에 수술이 무사히 끝나 퇴원했다. 바로 수술 전부터 정해져 있던 대로 13번째 싱글 "사실은 무서운 사랑과 로맨스"를 발매[659]했다. 10월에는 앨범 녹음을 재개[660]했고, 12월에는 NHK 홍백가합전에 특별 출연하여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45]:15,88.
2011년 2월에 발매가 연기되었던 앨범 ‘MUSICMAN’을 발매했다. 그 직후 발생한 동일본 대진재 피해 지역에 수익금을 기부하는 자선 활동을 위해 구와타는 소속사 후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 등과 함께 팀 아뮤즈로서 "Let's try again"을 5월에 발매했다. 이 곡은 구와타가 작곡한 곡이며, 8월에는 솔로 풀 버전으로 "Let's try again 〜kuwata keisuke ver.〜"가 제작되어 14번째 싱글 "내일을 향한 행진/Let's try again 〜kuwata keisuke ver.〜/벌거벗고 음악회 〜축제다!! Naked〜"에 수록되어 발매되었다. 9월에는 미야기에서 라이브 ‘미야기 라이브 〜내일을 향한 행진!!〜’를 개최했고, 12월에는 연말 라이브를 개최했다[45]:15,88.
2012년에 접어들어 구와타는 솔로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7월에 25주년 베스트 앨범 ‘I LOVE YOU -now & forever-’를 발매하여 80만 장에 육박하는 히트를 기록했다[661]. 9월부터 12월 연말까지 앨범을 가지고 전국 투어 ‘I LOVE YOU -now & forever-’를 개최했다. 2013년 3월에는 15번째 싱글 "Yin Yang/눈물을 날려 버려!!/맛있는 비밀"을 발매했다. 6월에 사잔은 35주년을 맞아 밴드 활동을 재개했다. 7월에는 상공회의소와 동창생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의 노력으로 지가사키시 시민 명예상을 수상했다[662][663]. 사잔 활동과 병행하여 11월에는 ‘Act Against AIDS 2013 쇼와 88년도! 제2회 혼자 하는 홍백가합전’을 개최했다[45]:15,88. 2014년 11월에는 오랜 음악 활동을 인정받아 자수포장을 수상했다[72].
2015년 8월에 사잔으로서의 라이브 ‘맛있는 포도 여행’이 종료되었고, 11월부터 솔로 작품 발매를 위해 녹음을 시작했다[664]. 2016년 2월에 환갑을 맞이하여 생일 당일에는 솔로 명의의 작품 다운로드 배포가 시작되었다[665]. 6월에는 16번째 싱글 "요시코 씨"를 발매했다. 이 곡은 R&B·힙합·EDM·서브스크립션 커머스 등 최첨단 음악 용어에 대응하지 못하고, 토요일 밤의 열기, 나가오카 바늘, 엔카 등을 회고하는 아날로그 세대의 비애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다[666]. 그리고 11월에는 17번째 싱글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매했고, 12월에는 연말 라이브를 개최했다[45]:16.
2017년 4월, 특설 사이트에서 "ROUND30"이라는 기획을 발표하며 솔로 데뷔 30주년을 맞아 30개 항목에 달하는 ‘전력 투구’를 선언했다[667]. 7월에 라이브하우스 이벤트를 개최했고, 8월에는 "ROCK IN JAPAN FESTIVAL 2017"에 출연했다. 바로 5번째 앨범 ‘쓰레기’를 발매했다. 앨범은 35만 장이 넘는 히트를 기록하며 이 해 남성 솔로 앨범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668][669][주석 69]. 10월부터 12월까지 앨범을 가지고 전국 투어 ‘쓰레기’를 개최했고, 12월 31일에는 ‘제71회 NHK 홍백가합전’에 중계로 출연했다[45]:16.
2018년 11월에 ‘Act Against AIDS 2018 헤이세이 30년도! 제3회 혼자 하는 홍백가합전’을 개최했다. 이번 라이브로 구와타의 Act Against AIDS 활동은 종료되었다[670]. 2019년에 접어들어 사잔의 전국 투어 ‘LIVE TOUR 2019 “너는 외모가 안 좋으니까, 바보같이 마이크를 잡고 있어!!” 라고!? 웃기지 마!!’와 병행하여 구와타 케이스케 & The Pin Boys 명의의 활동을 시작했다. 1월에 볼링 싱글 "레츠고 볼링"을 발매했고, 2월에는 자신이 주최하는 볼링 대회 "KUWATA CUP 2019"를 개최했다. "레츠고 볼링"은 오리콘에서 1위를 차지하며 30대~60대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역사상 처음 있는 기록이었다[671][672]. 같은 해 12월에는 사잔을 포함하여 자신의 모든 곡이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를 통한 스트리밍 배포가 해금되었다[673].
같은 해 7월에 민영 5개 방송국 연합의 2020년 하계 올림픽 공동 기획 "함께 하자 2020"의 테마송을 구와타가 제작한다는 것이 발표되었고, 2020년 1월 민영 5개 방송국에서 동시 방송된 프로그램에서 "SMILE〜맑게 개인 하늘처럼〜"이 공개되었다[674][675]. 2월에는 볼링 싱글 2번째 작품인 "슬픈 프로 볼러"가 발매되었다[676].
2020년 1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주간문춘’에서 ‘팝송 가수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연재했다[677].
2021년 3월, 구와타 게이스케는 처음으로 블루노트 도쿄에서 무관객 라이브를 개최했고, 작년 사잔의 무관객 라이브를 포함해 총 3번째 무관객 라이브가 되었다. 블루노트는 고급스러운 장소이며, 구와타는 이곳에서의 라이브를 동경해왔다고 한다[678]. 이 라이브에서 얻은 수익의 일부는 「Music Cross Aid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지원 기금」을 통해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업계 지원에 사용되었다[679]. 9월에는 그의 첫 번째 미니 앨범 「고항 미소시루 노리 쓰케모노 다마고야키 feat. 우메보시」가 발매되었고, 발매에 앞서 7월에는 「SMILE〜맑게 개인 하늘처럼〜」, 8월에는 「불꽃의 성가대 [Choir]」와 「Soul 코브라 트위스트〜영혼의 몸부림」가 선행 싱글로 발매되었다[680][681][46][682]. 미니 앨범은 오리콘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하며, 남성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5개 시대(1980년대~2020년대) 연속 앨범 1위를 기록했다[48]. 또한, 9월부터 12월 연말까지 전국 투어 「BIG MOUTH, NO GUTS!!」를 개최했다[340].
2022년 5월, 구와타의 제안으로 구와타와 동갑내기 동급생인 사노 겐슌, 세라 마사노리, Char, 노구치 고로 등과 함께 자선 싱글 「시대에 뒤떨어진 Rock'n'Roll Band」를 발매했다. 수익의 일부는 어려움에 직면한 전 세계 어린이들의 미래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세이브 더 칠드런」에 기부되었다[683]. 8월에는 솔로로 5년 만에 「ROCK IN JAPAN FESTIVAL 2022」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684], 출연 3일 전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실이 아뮤즈에 의해 발표되면서 출연이 취소되었고[685][686]주석 70, 후일 「구와타 케이스케의 친절한 밤놀이」에서 대체 기획을 진행했다[688]. 11월에는 베스트 앨범 「언제나 어딘가에서」가 발매되었고, 11월부터 12월까지 전국 돔 투어 「서로 건강하게 힘냅시다!!」가 개최되었다[689][690]. 또한, 12월 말에는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추가 공연을 개최했고, 12월 31일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Rock'n'Roll Band」로 「제73회 NHK 홍백가합전」에 사전 녹화 형식으로 출연했다[589].
2023년, 마츠토야 유미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여 마츠토야와의 콜라보레이션 싱글 「Kissin' Christmas (크리스마스니까가 아냐) 2023」을 발표했다[691]. 이 곡은 원래 「메리 크리스마스 쇼」를 위해 제작된 곡으로, 이번을 위해 새롭게 리메이크되었다. 싱글로 발매되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해 마츠토야의 콜라보 베스트 앨범 「유민 건배!!」에도 수록되었다. 구와타와 마츠토야의 곡에서의 협연은 「메리 크리스마스 쇼」 이후였지만, 2019년 제69회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사잔의 무대에서 「멋대로 신드바드」를 연주하는 중 마츠토야가 춤을 추며 난입하여 구와타와 뜨거운 만남을 보여주는 등 당시 32년 만의 협연을 펼쳤다[692].
전술한 대로 출신지인 지가사키시와 그 주변 도시를 다룬 음악도 많으며, 그 영향으로 인지도와 경제적 기여를 평가받아, 이것들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2013년 지가사키 시민 명예상 수상으로 이어졌다[732][662]. 2023년 사잔의 음악 「본기리 코이우타」의 가사와 MV에 등장하는 동급생은 구와타에 대해 “고향과 친구를 소중히 여겨준다. 지가사키를 좋아한다. 그런 성품이 있기에 오랫동안 스타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시민 모두 기뻐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609].
동일본 대진재 발생 시나 코로나19 팬데믹 등에서 음악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고 사회적 기여를 하는 자세에 대한 평가도 높으며, 솔로와 사잔을 불문하고 많은 라이브의 무대 감독을 맡고 있는 남곡 성공은 구와타의 행동력을 “동일본 대진재 때도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가장 먼저 깃발을 들고 달려온다. (사잔이 2020년에 진행한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에서 연주된) ‘도쿄 빅토리’에서 함께 주먹을 쥐고 있었을 때, 저를 포함해 모두 기뻐서 울었습니다. 저희는 따라갈 뿐이지만, 전력으로 지원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733][734].
성격에 대해서는 “사실은 좋은 사람”, “매우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 “성실하게 나이를 먹은 상식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3枚目(삼류 연예인)를 가장하는 퍼포먼스가 종종 보이지만, 이는 사실 수줍음을 가리는 행위라는 지적이 있다[735][736][737]。구와타 게이스케의 성실함은 하라를 비롯한 가족과의 관계, 사잔 올 스타즈 멤버들 간의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데 명확하게 나타나 있으며[737], 2008년 밴드의 무기한 활동 휴지 발표 당시에도 “멤버 한 명 한 명이 있어야 사잔입니다”, “멤버 5명이 있고, 저는 이미 그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며, 평생의 파트너로서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습니다”라고 각 멤버를 배려하는 발언을 했다[738]。많은 뮤지션들이 불륜이나 여성 문제 등의 스캔들을 일으키는 가운데, 구와타-하라 부부는 그러한 것과는 무관하며, 서로 존중하며 가정과 음악에 임하는 모습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739]。또한, 솔로 활동이 활발해져도 멤버를 버리지 않는 구와타의 자세는 타케다 테츠야(카이엔타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740]。음악 프로듀서 사카이 마사토시는 “하라씨는 물론이고, 멤버들과 스태프들도 그런 구와타의 인품에 매료되어 사잔 올 스타즈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평가했다[737]。또한, 음악 평론가 스즈키 스지도 “원맨 밴드는 대개 빨리 망하죠. 구와타 게이스케라는 리더가 있고, (2018년 시점에서) 40년 동안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멤버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면, 구와타는 리더이면서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닌 ‘분위기 메이커’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741][742]。또한, 고향 선배인 카야마 유조는 구와타의 인품을 “정말 좋은 녀석. 마음이 훌륭하기 때문에, 저런 음란한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거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아티스트. ‘THE 무진토 Fes.2006’에서 녀석은 내 노래를 모두 알고 기타를 치더군, 코러스까지 붙여줬어.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역시 내 후배”라고 평가했다[743][744][745]。
수석 매니저부터 젊은 스태프까지 폭넓은 관계자들로부터 의견을 구하거나, 식사에 데려가는 등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746]。2002년 솔로 앨범 ‘ROCK AND ROLL HERO’의 레코딩 일지에도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모두 함께 식사라도 하러 갈까?”라고 멤버, 스태프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747]。앞서 언급한 “구와타 게이스케 & SUPER MUSIC TIGERS”에 베이시스트로 참가한 경험이 있는 카메다 세이지는 구와타의 사람 사귀는 능력에 대해 “이 사람, 음악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음악을 만들려면, 우선 함께 소리를 내는 동료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구나 하고”, “구와타 씨 정도의 레벨이 되어도, 이렇게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하나가 되기 위해 이렇게 배려하고,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하고”, “거만하게 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스태프들에게도. 열매 맺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와 같지는 않지만, 결코 거만하지 않고 음악 일편단심인 느낌이 강해서. 이제 국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웃음)”라고 평가했다[86]。
팬에 대한 대응도 평가받고 있으며, 수석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 구와타를 비롯한 사잔 올 스타즈 멤버들은 모두 팬레터를 모두 읽고 있으며, 답장 엽서가 동봉된 것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답장을 쓰고 있다[746]。남녀노소 폭넓은 팬층이 존재하며, 구와타는 “팬레터와 게시판(공식 BBS)을 통해 팬 여러분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해마다 많아졌다”라고 말했다[75]。
사잔 올 스타즈 멤버이자 아내이며, 많은 곡을 제공받고 있는 하라 유코는 구와타에 대해 “아직도 레코딩할 때마다 이런 서랍이 있었구나 하고 놀라게 하는,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 “나는 생각해내지 못하는 아이디어도 많이 내주기 때문에 자극이 됩니다”라고 평가하며[748][749], “나는 계속 구와타의 음악의 열렬한 팬입니다”라고 말했다[750]。또한, 하라는 자신의 베스트 앨범 ‘하라드’ 제작 당시, 솔로, 사잔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작품을 돌아보며, “구와타에게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어 받았다”는 것을 느끼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751]。
전 사잔 올 스타즈 멤버인 오오모리 타카시는 구와타에 대해 “저렇게 다채로운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뮤지션은 다른 사람은 없다”라고 평가했다[752]。
고향 선배인 카야마 유조는 “치가사키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통하는 것은 구와타 씨밖에 없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아티스트”라며 구와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32][494]。또한, 흰색으로 페인트된 모즈라이트 기타를 구와타에게 증정한 에피소드[주석 71][753]와, 2014년 가을 카야마가 욱일소수장을 수상한 것과 같은 시기에 구와타도 자수포장을 수상했고, 전화로 서로의 영예를 축하한 에피소드도 있다[494]。
세라 마사노리는 앞서 언급한 대로 양쪽 모두 “전우”라고 말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며, 사잔을 해산하지 않고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는 구와타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언하고 있다[29]。
사쿠라이 카즈토시(Mr.Children)는 구와타에 대해 “후렴으로의 고조시키는 방법은 구와타 씨로부터”라고 음악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공언하고 있다[754]。또한, 구와타의 솔로 앨범 중에서는 ‘고독의 태양’을 좋아하며, 그중에서도 “만화 드림”을 특히 좋아한다[755][756]。구와타도 사쿠라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가장 재능 있는 작사가이자 가수입니다”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132]。
쿠사노 마사무네 (스피츠)는 "지금 현재 일본의 대중음악을 만드는 사람 중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구와타의 곡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록의 리듬에 억지로 일본어를 얹어 버리는 수법이라든가", "말의 의미보다 리듬을 중시하는 작사를 코믹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스마트하게 해낼 수 있다는 점, 이런 부분이 구와타 케이스케 씨야말로 J-POP의 대부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라고 구와타의 음악적 영향력의 강함을 이야기하고 있다[757]. 구와타도 스피츠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으며, 『Act Against AIDS 2008 쇼와 83년도! 혼자 홍백가합전』에서는 "로빈슨"을 커버했다[180].
R-지정 (크리피 너츠)는 사잔과 구와타 솔로곡을 좋아하며, 구와타의 음악성을 "처음에는 그냥 음악을 즐겼는데, 지금 들어보면, 그 사람은 표현이 래퍼거든요." "엄청 라임을 타거나, 말을 압축하거나, 일본어 발음을 귀에 거슬리지 않도록 바꾸는 등, 그 사람의 노래 방법이 없었다면 일본어로 랩하는 것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웃음)"라고 평가하고 있다[69]. 또한, 이토 세이코는 "사잔이 없었다면, 구와타 케이스케가 없었다면, 구와타 케이스케의 노래 방법이나 작사법이 없었다면, 일본어로 랩을 할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758].
사카모토 후유미는 원래 음악에 대한 관심의 중심은 대중음악보다 엔카였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첫사랑 상대의 영향으로 사잔의 곡에도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당시의 일을 "허스키한 목소리가 애절해서, 그때는 가사의 깊은 의미까지는 몰랐지만, 가슴이 쿵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라고 회상하고 있다[759].
AI는 학생 시절부터 사잔과 구와타 솔로곡을 듣고 있었다고 하며, 그 매력을 "독특한 약간 쉰 목소리도 그렇지만, 가사나 표현이 굉장하고 멋있다"라고 말하며, "에로티카 세븐" 등의 에로틱한 곡이 히트한 것에 대해서도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메시지성이 강한 곡의 가사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주고 있으며, 특히 "Missing Persons"의 ' 메구미, come back home to me.' 부분에 대해 "저는 절대로 쓸 수 없습니다. 공감이 되는 동시에, 모두 함께 어떻게든 하자는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760].
구와타의 메시지성이 강한 곡의 가사에 관해서는, 싱어송라이터 사토 류이치도 『구와타 케이스케의 음악 토라상 〜MUSIC TIGER〜』 제2기 최종회에서 연주된 "만화 드림 09"의 위구르족 관련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작사를 한 구와타와 이 장면을 방송한 『음악 토라상』 스태프의 단호한 결단을 칭찬하는 발언을 자신의 블로그에서 했다[761].
마에카와 키요시는 구와타의 곡에 대해 "그 사람의 멜로디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소름이 돋죠." "자기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도 꽤 있죠. 그런 부분도 재밌네요."라고 평가하고 있으며[70], 커버하는 것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505].
야마자키 마사요시는 구와타에 대해 "걸리는 말로 좋은 곡을 만들기 때문에 존경한다."라고 말하고 있다[762].
후지이 후미야는 구와타에 대해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제, 우연히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구와타 씨의 곡을 여러 아티스트가 부르고 있었어요. 전혀 와 닿지 않아요, 가사도 멜로디도. 그런데 구와타 씨 본인이 부르면, 쿵 하고 와 닿잖아요. 역시 대단하구나 하고 새삼 알게 되었네요." "저는 킹 오브 팝은 구와타 케이스케 씨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존경심을 표명하고 있다[763][764].
한국 싱어송라이터이자 9인조 걸그룹 니쥬의 종합 프로듀서인 J.Y. Park 즉 박진영은 구와타의 음악성을 "구와타 씨는 진짜 소울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아티스트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평가하며, "가장 좋아하는 일본 아티스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68].
기타노 다케시는 뮤지션으로서의 구와타의 재능을 "대단한 천재라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하고 있다[765]. 또한, 구와타도 예능인으로서의 다케시를 인정하고 있다[544]. 팬이나 전문가 사이에서는 구와타와 다케시에 대해 겸손함 등이 섞인 성격이나 예능 스타일의 공통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766]. 이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영화 『이나무라 제인』에 관한 논쟁의 영향으로 현재도 구와타와 다케시가 사이가 나쁘다고 오해되는 일도 자주 있었고, 다케시는 "구와타 케이스케의 영화로 여러 가지 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야. 만약 사이가 나빴다면 영화 『아사쿠사 키드』의 주제가에 구와타 케이스케의 곡[주석 72]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코멘트하고 있다[768].
우치무라 테루요시 (웃짱난짱)는 구와타를 "섬세한 분", "그렇게 스타인데 전혀 스타처럼 보이지 않거나, 아무것도 꾸미지 않고 정말 소탈한 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243].
오타 히카리 (폭소문제)는 자신 인격 형성에 영향을 준 인물로 구와타 게이스케, 기타노 다케시, 커트 보니것, 타치카와 단시, 우에키 히토시, 찰리 채플린 등 여섯 명을 꼽았다[769]. 2023년 인터뷰에서는 구와타 게이스케의 다작에 대해 "‘구와타 게이스케는 아직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모든 곡을 다 쓴 것 같아도 또 명곡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미래가 정말 기대됩니다"라며 칭찬했다[543]. 2011년 인터뷰에서는 재난 시 불안과 공포심을 부추기는 표현자들의 풍조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면서[주석 73], 구와타 게이스케에 대해서는 "그런 사람과 정반대에 구와타 씨가 있습니다"라며 칭찬하고, "정면으로 표현하는 자세는 항상 본받고 싶습니다", "완전히 다른 장르이지만 저에게는 목표와 같은 존재입니다. 송구스럽지만요"라고 말했다[771]. 또한 2015년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 ‘폭소문제 카보이’(TBS 라디오)에서 구와타 게이스케의 영향력을 "구와타 게이스케가 일본을 얼마나, 얼마나 밝게 했는지, 얼마나 일본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는지"라고 역설했다[772]. 또한 오타 히카리의 파트너인 타나카 유지도 구와타 게이스케의 인품에 대해 "정말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고, 겸손합니다. 정말 그 점이 존경스럽습니다"라고 칭찬했다[773].
데뷔 당시부터 사잔 팬이었고, 말년에는 구와타 게이스케와 교류도 있었던 만화가 사쿠라 모모코는 뮤직비디오 모음집 ‘MVP’ 발매 당시 "구와타 씨는 젊은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흔들리지 않는 특별한 재능이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는지, 저도 사잔 데뷔 때부터 매료되었지만, 인생의 추억과 함께 구와타 씨의 노래가 있고, 구와타 씨가 없었다면 지금의 문화는 하나의 큰 멋을 맛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언급했다[774][595].
사카이 와카나는 구와타 게이스케의 존재에 대해 "구와타 씨의 목소리와 음악과 말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은 제 자랑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기운 나게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일본 전국을, 게다가 이렇게 오랫동안"이라고 말했다[775].
니시우치 마리야는 한때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동경하는 아티스트 베스트 3’으로 구와타 게이스케, 나가부치 쯔요시, 테일러 스위프트를 꼽았다[776]. 특히 사잔과 구와타 게이스케의 음악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 차 안에서 계속 듣고 자랐다고 하며, 특히 좋아하는 곡으로 "흰 연인들"을 꼽았다[776].
작가 햐쿠타 나오키는 솔로와 사잔을 포함해 두 번 라이브를 관람한 경험이 있으며, 구와타 게이스케, 나카지마 미유키, 마츠토야 유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777][778][779].
라쿠고가 3대째 카츠라 슌쵸는 구와타 게이스케에 대해 "일본의 자랑", "국보", "가장 죽었으면 하는 사람이 아니다", "평생 응원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일본을 밝게 비춰주세요"라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말할 정도로 존경하고 있다[780][781].
스즈키 스지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일본의 ‘록커’를 세 명으로 압축한다면, 요시다 타쿠로, 야자와 에이키치, 구와타 게이스케. 그리고 단 한 명을 고르라면——구와타 게이스케"라고 논했다[782].
2003년 HMV가 발표한 ‘일본 음악 아티스트 중요 100인 (Top 100 Japanese pops Artists - No.1)’에서 12위에 선정되었고, 사잔은 동 차트 1위에 선정되었다[783].
2012년 3월 goo가 발표한 "국가 제창, 듣고 싶은 남성 가수는?"이라는 제목의 랭킹에서 11위 (668표)를 획득했다[784].
2007년·2008년 오리콘이 조사한 ‘아버지로 삼고 싶은 아티스트’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고[785], 2007년 조사한 ‘여름 발라드가 어울리는 남성 아티스트’와 ‘멋진 여름 아빠’에서도 전 세대 1위를 차지했다[786][787].
2014년 메이지 안다 생명보험 설문조사에서 "이상적인 유명인 부부" 랭킹 3위에 구와타-하라 부부가 올랐다[788]. 부부가 고락을 함께하는 모습이 공감을 얻었고, 두 사람 모두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지지를 받았다[788].
2013년 여름 지가사키시 시민 명예상을 수상했을 때는 시상식을 지가사키 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사잔의 콘서트 무대에서 실시했고, 하토리 노부아키 지가사키 시장(당시)이 구와타에게 상을 수여했다. 이에 대해 구와타는 "여러분의 마음, 힘 덕분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누나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가사키에서 태어난 행복, 자부심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789].
2014년 가을 자수포장을 수상했을 때는 놀라면서도 “과분한 영광”이라고 말하며, 포장을 ‘고귀한 훈장’이라고 칭하고, 팬과 자신의 음악성에 영향을 준 음악가들에 대한 감사와 세계 평화에 대한 소망을 밝혔습니다[72]. 아내인 하라와 함께 참석한 전달식에서는 취재진으로부터 말을 걸렸고, 쿠와타는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하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790]. 오후에는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고쿄를 방문하여 당시 일본 천황 아키히토에게 면담했습니다[276]. 같은 해 사잔 올 스타즈의 연말 라이브에서는 실물을 관객들에게 공개하고, 수상에 대한 기쁨과 멤버, 스태프, 팬들에 대한 감사를 담은 구로사와 아키라와 로스 프리모스의 “러브 유 도쿄” 개사곡인 “러브 유 포장”을 불렀습니다[주석 74][264]. 평소에는 훈장을 신다나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 쿠와타에 의해 언급되었습니다[244].
년 | 작품 | 카테고리 |
---|---|---|
1982 | 여름을 포기해 | 작곡상 |
1988 | 쿠와타 케이스케 | 우수 앨범상 |
1990 | 한여름의 과실 | 작곡상 |
1994 | 달 | 우수상 |
고독의 태양 | 베스트 앨범상・앨범 대상 | |
2001 | 흰 연인들 | 금상 |
2017 | 쓰레기 | 우수 앨범상[791] |
년 | 작품 | 카테고리 |
---|---|---|
2002 | 파도타기 조니 | 송 오브 더 이어 |
흰 연인들 | 송 오브 더 이어 | |
2003 | 도쿄 | 송 오브 더 이어 |
ROCK AND ROLL HERO | 록&팝 앨범 오브 더 이어 | |
TOP OF THE POPS | 록&팝 앨범 오브 더 이어 | |
2008 | 내일 맑겠지 | 싱글 오브 더 이어 |
2023 | 해당 없음 | 특별상[792] |
년 | 작품 | 카테고리 |
---|---|---|
2002 | 흰 연인들 | BEST MALE VIDEO |
2003 | 도쿄 | BEST VIDEO OF THE YEAR |
2010 | 해당 없음 | 특별상 |
2017 | 해당 없음 | BEST ACHIEVEMENT ARTIST |
년 | 작품 | 카테고리 |
---|---|---|
2007 | 내일 맑겠지 | 드라마송상 |
2013 | Yin Yang | |
2017 | 젊은 광장 |
※이 기록은 모두 오리콘에 의한 것입니다.
2019년 12월 20일, 각 배포 사이트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싱글・앨범의 서브스크립션 커머스 배포가 시작되었다. 일본레코드협회에서 스트리밍 인증된 곡은 아래와 같다[805].
곡명 | 인증 |
---|---|
「흰 연인들」 | 골드 인증(2023년 1월) |
플래티넘 인증(2024년 9월) | |
「파도타기 조니」 | 골드 인증(2023년 4월) |
플래티넘 인증(2024년 11월) | |
「내일 맑겠지」 | 골드 인증(2023년 10월) |
※구와타 케이스케 명의로 발매된 작품만 기재한다.
릴리스 리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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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앨범 | 5 | |
↙베스트 앨범 | 4 | |
↙EP | 1 | |
↙싱글 | 17 | |
↙영상 작품 | 16 | |
↙뮤직 비디오 | 2 | |
↙배포 싱글 | 3 |
「초주 판매량」「순위」는 「오리콘 주간 싱글 랭킹」 기록을 따릅니다. 굵은 글씨의 「순위」는 오리콘 집계 누적 판매량이 밀리언 셀러[649]를 의미합니다. | |||||||
# | 발매일 | 곡명 | 형태 | 규격품번 | 초주 판매량 | 순위 | 수록 앨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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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987년 10월 6일 | 슬픈 마음 (JUST A MAN IN LOVE) | EP | VIHX-1725 | 미공개 | 2위 | 쿠와타 케이스케 |
CT | VST-10325 | ||||||
1988년 2월 21일 | 8cmCD | VDRS-1001 | |||||
2001년 6월 25일 | 12cmCD | VICL-35305 | |||||
2 | 1988년 3월 16일 | 언젠가 어딘가에서 (I FEEL THE ECHO) | EP | VIHX-1731 | |||
8cmCD | VDRS-1010 | ||||||
CT | VST-10347 | ||||||
2001년 6월 25일 | 12cmCD | VICL-35306 | |||||
3 | 1993년 10월 6일 | 한밤중의 댄디 | 8cmCD | VIDL-170 | 1위 | 고독의 태양 | |
CT | VISL-280 | ||||||
2001년 6월 25일 | 12cmCD | VICL-35308 | |||||
4 | 1994년 8월 24일 | 달 | 8cmCD | VIDL-201 | 4위 | ||
CT | VISL-311 | ||||||
2001년 6월 25일 | 12cmCD | VICL-35309 | |||||
5 | 1994년 10월 31일 | 축제 후 | 8cmCD | VIDL-202 | 2위 | TOP OF THE POPS | |
CT | VISL-312 | ||||||
2001년 6월 25일 | 12cmCD | VICL-35310 | |||||
6 | 2001년 7월 4일 | 파도타기 조니 | EP | VIZL-60 | 51.9만장[806] | 1위 | |
12cmCD | VICL-35300 | ||||||
7 | 2001년 10월 24일 | 흰 연인들 | EP | VIJL-60090 | 52.0만장[807] | ||
12cmCD | VICL-35330 | ||||||
8 | 2002년 6월 26일 | 도쿄 | EP | VIJL-60095 | 미공개 | 1위 | ROCK AND ROLL HERO |
12cmCD | VICL-35380 | ||||||
9 | 2007년 5월 16일 | 내일 맑겠지 | EP | VIJL-60600 | 16.8만장[808] | I LOVE YOU -now & forever- | |
12cmCD | VICL-36600(초회한정반) | ||||||
VICL-36601(통상반) | |||||||
10 | 2007년 8월 22일 | 바람의 시를 들려줘 | EP | VIJL-60800 | 9.3만장[809] | ||
12cmCD | VICL-36800 | ||||||
11 | 2007년 12월 5일 | 달링 | EP | VIJL-60900 | 9.4만장[810] | ||
12cmCD | VIZL-371(초회한정반) | ||||||
VICL-37100(통상반) | |||||||
12 | 2009년 12월 9일 | 키미니 사요나라오 | EP | VIJL-62000 | 7.1만장[811] | 뮤직맨 | |
12cmCD | VIZL-380(초회반) | ||||||
VICL-37200(통상반) | |||||||
13 | 2010년 8월 25일 | 혼토와 코와이 아이토 로만스 | EP | VIJL-60500 | 11.0만장[811] | 2위 | |
12cmCD | VIZL-550(초회반) | ||||||
VICL-37300(통상반) | |||||||
14 | 2011년 8월 17일 | 아시타에노 마치/ Let's try again 〜쿠와타 케이스케 ver.〜/ 하다카 DE 온도우 〜마츠리다!! 네이키드〜 |
EP | VIJL-61000 | 9.2만장[812] | I LOVE YOU -now & forever- | |
12cmCD | VIZL-570(초회반) | ||||||
VICL-37500(통상반) | |||||||
15 | 2013년 3월 13일 | Yin Yang/나미다오 붓토바세!!/오이시이 히미츠 | EP | VIJL-61200 | 6.9만장[813] | 3위 | 가라쿠타 |
12cmCD | VICL-37400 | ||||||
16 | 2016년 6월 29일 | 요시코상 | 12cmCD | VICL-37900(초회반) | 8.1만장[814] | 2위 | |
VICL-37901(통상반) | |||||||
2016년 7월 27일 | EP | VIJL-61600 | |||||
17 | 2016년 11월 23일 | 키미에노 테가미 | VIJL-61700 | 7.0만장[815] | |||
12cmCD | VICL-38200(초회반) | ||||||
VICL-38201(통상반) |
「초동 판매량」「순위」는 「오리콘 주간 디지털 싱글(단곡) 랭킹」 기록에 준함. | |||||
# | 발매일 | 타이틀 | 초동 판매량 | 순위 | 수록 앨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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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021년 7월 12일 | SMILE〜맑게 개인 하늘처럼〜 | 2.3만 DL[주석 79] | 2위[주석 80] | 고항 미소시루 노리 쓰케모노 다마고야키 feat. 우메보시 |
2 | 2021년 8월 11일 | 염의 성가대 [합창] | 1.0만 DL[818] | 7위 | |
3 | 2021년 8월 30일 | Soul 코브라 트위스트〜영혼의 몸부림 | 1.0만 DL[819] | 2위 |
「초동 판매량」「순위」는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 기록에 준함. | ||||||
# | 발매일 | 타이틀 | 형태 | 규격품번 | 초동 판매량 |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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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988년 7월 9일 | 쿠와타 케이스케 | LP | VIH-28333 | 미공표 | 1위 |
CT | VCF-10360 | |||||
CD | VDR-1520 | |||||
1992년 6월 27일 | VICL-8061 | |||||
2001년 6월 25일 | VICL-60804 | |||||
2 | 1994년 9월 23일 | 고독의 태양 | CT | VITL-132 | ||
CD | VICL-555 | |||||
2001년 6월 25일 | VICL-60806 | |||||
3 | 2002년 9월 26일 | 록 앤 롤 히어로 | LP (2장) | VIJL-60101~60102 | 2위 | |
CD | VICL-60920 | |||||
4 | 2011년 2월 23일 | 뮤직맨 | LP (2장) | VIJL-60700~60701 | 27.3만장[799] | 1위 |
CD | VIZL-560(초회한정반) | |||||
VICL-63600(통상반) | ||||||
5 | 2017년 8월 23일 | 가라쿠타 | LP (2장) | VIJL-61800~61801 | 16.8만장[820] | |
CD | VIZL-1700(초회한정반 A) | |||||
VIZL-1701(초회한정반 B) | ||||||
VIZL-1702(초회한정반 C) | ||||||
VICL-65000(통상반) |
「초동 판매량」「순위」는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기록을 따릅니다. 굵은 글씨의 「순위」는 오리콘 집계 누적 판매량이 밀리언 셀러임을 나타냅니다[652]. | ||||||
# | 발매일 | 타이틀 | 형태 | 규격품번 | 초동 판매량 |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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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992년 6월 27일 | 프롬 예스터데이 | CT | VITL-107 | 미공개 | 2위 |
CD | VICL-300 | |||||
2001년 6월 25일 | VICL-60805 | |||||
2 | 2002년 11월 27일 | 탑 오브 더 팝스 | CD(2장) | VICL-61006~61007 | 96.1만장[821] | 1위 |
3 | 2012년 7월 18일 | 아이 러브 유 -now & forever- | CD(3장) | VIZL-640(초회한정반) | 43.2만장[821] | 1위 |
CD(2장) | VICL-64000~64001(통상반) | |||||
4 | 2022년 11월 23일 | 이츠모 도코카데 | CD(2장) + 티셔츠 S사이즈 | VIZL-2600(초회한정반 A) | 미공개 | 1위 |
CD(2장) + 티셔츠 M사이즈 | VIZL-2601(초회한정반 B) | |||||
CD(2장) + 티셔츠 L사이즈 | VIZL-2602(초회한정반 C) | |||||
CD(2장) + 티셔츠 XL사이즈 | VIZL-2603(초회한정반 D) | |||||
CD(2장) | VICL-67200~1(통상반) | |||||
2023년 5월 3일 | LP(4장) | VIJL-62200~3 | - | - |
「초동 판매량」「순위」는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기록을 따릅니다. | ||||||
# | 발매일 | 타이틀 | 형태 | 규격품번 | 초동 판매량 |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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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021년 9월 15일 | 고항 미소시루 노리 쓰케모노 다마고야키 feat. 우메보시 | CD+블루레이 | VIZL-2400(초회한정반 A) | 9.7만장[48] | 1위 |
CD+DVD | VIZL-2401(초회한정반 B) | |||||
CD | VICL-67100(통상반) | |||||
LP | VIJL-62100(중량반) |
「초동 판매량」「순위」는 「오리콘 주간 DVD 랭킹」「오리콘 주간 블루레이 랭킹」기록을 따릅니다. | ||||||
작품 분류 | 발매일 | 타이틀 | 형태 | 규격품번 | 초동 판매량 |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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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비디오 | 1991년 10월 2일 | Acoustic Revolution Live at 닛신 파워 스테이션 1991.3.26 | VHS | VIVL-49 | 미공개 | 미공개 |
LD | VILL-43 | |||||
2001년 12월 5일 | DVD | VIBL-44 | ||||
1994년 12월 21일 | 모든 노래에 참회하라!! -구와타 게이스케 LIVE TOUR '94- | VHS | VIVL-140(초회한정반) | |||
VIVL-141(통상반) | ||||||
LD | VILL-99(초회한정반) | |||||
VILL-100(통상반) | ||||||
2001년 12월 5일 | DVD | VIBL-45 | ||||
1997년 3월 5일 | 이부몬타 레이트 쇼 〜장거리 가수의 고독 in 재즈 카페〜 | VHS | VIVL-200 | |||
DVD | VIBL-6 | |||||
2001년 12월 5일 | VIBL-46 | |||||
뮤직 비디오 | 2002년 12월 11일 | D.V.D. WONDER WEAR 구와타 게이스케 비디오 클립스 2001〜2002 | VHS | VIVL-270 | ||
DVD | VIBL-67 | |||||
라이브 비디오 | 2003년 3월 26일 | 게이스케 씨, 비디오도 여러모로 힘드네요. | VHS | VIVL-286 | ||
DVD | VIBL-109 | |||||
라이브 비디오+CD | 2008년 3월 12일 | 구와타 씨의 업무 07/08 〜매혹의 AV 마리아주〜 | DVD+CD | VIZL-500(초회한정반) | 1위 | |
VIZL-501(통상반) | ||||||
라이브 비디오 | 2009년 3월 25일 | 쇼와 83년도! 혼자서 하는 홍백가합전 | DVD(2매입) | VIBL-700〜701 | 2위 | |
Blu-ray | VIXL-200 | 4위 | ||||
2011년 11월 16일 | 미야기 라이브 〜내일을 향한 행진!!〜 | DVD | VIBL-800(통상반) | 3.8만장[822] | 3위 | |
VIBL-580(초회한정반) | ||||||
2011년 11월 23일 | Blu-ray | VIXL-300 | 미공개 | 20위 | ||
2013년 3월 13일 | 구와타 게이스케 LIVE TOUR & DOCUMENT FILM 「I LOVE YOU -now & forever-」완전판 |
DVD | VIBL-900〜901(통상반) | 3위 | ||
VIZL-900(초회한정반) | ||||||
Blu-ray | VIXL-400〜401(통상반) | 2위 | ||||
VIZL-901(초회한정반) | ||||||
2014년 3월 12일 | 쇼와 88년도! 제2회 혼자서 하는 홍백가합전 | DVD(2매입) | VIBL-1200〜1201 | 2.0만장[802] | 1위 | |
Blu-ray | VIXL-600 | 1.9만장[802] | ||||
이미지 비디오 | 2016년 11월 30일 | THE ROOTS 〜위대한 가요쿄쿠에 감사〜 | DVD | VIBL-1000(통상반) | 미공개 | 4위 |
VIZL-1501(초회한정반) | ||||||
Blu-ray | VIXL-800(통상반) | 5위 | ||||
VIZL-1500(초회한정반) | ||||||
뮤직 비디오 | 2018년 1월 3일 | MVP | DVD | VIBL-1402〜1403(통상반) | 3.4만장[803] | 1위 |
VIBL-1400~1401(초회한정반) | ||||||
블루레이 | VIXL-901(통상반) | 4.1만장[803] | ||||
VIXL-900(초회한정반) | ||||||
라이브 비디오 | 2018년 4월 4일 | 가라쿠타 라이브 | DVD | VIBL-1500~1501(통상반) | 1.3만장[823] | 2위 |
VIZL-1901(초회한정반) | ||||||
블루레이 | VIXL-1000(통상반) | 1.9만장[823] | ||||
VIZL-1900(초회한정반) | ||||||
2019년 6월 5일 | Act Against AIDS 2018 헤이세이 30년도! 제3회 혼자 홍백가합전 | DVD | VIBL-1600~1601(통상반) | 1.5만장[824] | 1위 | |
VIZL-2101(초회한정반) | ||||||
블루레이 | VIZL-2100(통상반) | 2.2만장[824] | ||||
VIXL-1100(초회한정반) | ||||||
2022년 4월 6일 | LIVE TOUR 2021「BIG MOUTH, NO GUTS!!」 | DVD | VIBL-1900~1901(통상반) | 1.5만장[825] | ||
VIZL-2501(초회한정반) | ||||||
블루레이 | VIXL-1500(통상반) | 2.9만장[825] | ||||
VIZL-2500(초회한정반) | ||||||
2023년 5월 3일 | 서로 건강하게 힘냅시다!! -Live at TOKYO DOME- | DVD | VIBL-2000~2001(통상반) | 1.7만장[804] | ||
VIZL-2701(초회한정반) | ||||||
블루레이 | VIXL-1600(통상반) | 3.1만장[804] | ||||
VIZL-2700(초회한정반) |
개봉일 | 제목 | 배급 | 배급 수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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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 8일 | 이나무라 제인 | 도호 | 18.3억엔[644] |
아티스트명 | 발매일 | 제목 | 형태 | 규격품번 | 초동 판매량 | 순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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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뮤즈!! | 2011년 5월 25일 | Let's try again | CD | ASCM-6092(아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 | 19.0만장[826] | 2위 | |
구와타 게이스케 & His Friends | 2012년 7월 18일[주석 81] | Kissin' Christmas (크리스마스니까가 아냐) | - | - | - | - | |
타케우치 마리야 | 2014년 7월 23일 | 고요한 전설 (레전드) | CD | WPCL-11929(MOON ⁄ 워너 뮤직 재팬) | 미공개 | 10위 | 코러스 |
구와타 게이스케 feat. 사노 모토하루, 세라 마사노리, Char, 노구치 고로 | 2022년 5월 23일 | 시대에 뒤떨어진 Rock'n'Roll Band | 배포 | - | 2.1만DL[827] | 1위 | |
구와타 게이스케 &마츠토야 유미 | 2023년 11월 27일 | Kissin' Christmas (크리스마스니까 아닌) 2023 | 1.7만 DL[828][829] | 위에서 언급한, 「Kissin' Christmas (크리스마스니까 아닌)」의 리메이크 버전. CD 초회 프레스분에 한해 종이 재킷 사양, “仲良くしようよ!!크리스마스 스티커” 동봉. | |||
2023년 12월 20일 | CD | VICL-38800 | 2.4만 장[830] | 3위 | |||
2024년 2월 14일 | EP | VIKL-30120 | - | - |
아티스트명 | 발매일 | 타이틀 | 형태 | 규격품번 |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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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몬 유조 | 1982년 3월 2일 | 가몬 유조 & VICTOR WHEELS LIVE! | LP | VIX-1001 | 8위 |
아티스트명 | 발매일 | 타이틀 | 곡명 | 형태 | 규격품번 | 순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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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타츠로 | 1988년 10월 19일 | 내 안의 소년 | 창망 | CD | 38XG-3(MOON RECORDS) | 1위 | 코러스 |
야마시타 쿠미코 | 2000년 6월 25일 | THE HEARTS | 욕실에서 사랑을 담아 | TOCT-24361(도시바 EMI) | 29위 | ||
마츠토야 유미 | 2023년 12월 20일 | 유민 건배!! | Kissin' Christmas (크리스마스니까 아닌) 2023 | CD+Blu-ray | UPCH-29465(EMI Records) | 2위 | 듀엣 |
CD+DVD | UPCH-29466(EMI Records) | ||||||
CD | UPCH-20663(EMI Records) |
※본 항목에서는 곡 제공만 기재합니다. 다른 가수가 사잔 올 스타즈・구와타의 곡을 커버하여 발매한 작품은 기재하지 않습니다.
가수 | 곡명 | 담당 | 발매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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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마사토시 | 마멀레이드의 아침 | 작사·작곡 | 1980 |
연인도 젖는 길거리 | 작사·작곡 | 1982 | |
나카무라 일렉기 온도 | |||
스펙트럼 | MOTION | 작사 | 1980 |
로드, 로드, 로디 미스 클로디 그룹 | 멋진 트랜스포테이션 | 작사·작곡 | 1980 |
스핀 러브 | 작사 | ||
슈르나루 나기사 1963 | 작곡 | ||
타모리 | 광이사키 프라이데이 나이트 | 작사·작곡 | 1981 |
스탠다드 위스키본본 | |||
타카키 레이 | 코이노 온나노 스토리 | 작사·작곡 | 1981 |
MIO-SUN | |||
하라 유코 | 아이 러브 유는 혼잣말 | 작사·작곡 | 1981 |
마이 베이비 샤인즈 온 미 | |||
간바레 아뮤즈 | 작사·작곡[주석 82] | ||
이니시에노 트럼페터 | |||
라스트 싱글 크리스마스 | |||
코이는, 고타보 죠우사이무스 | 작사·작곡 | 1983 | |
랭보 | |||
요코하마 레이디 블루스 | |||
신·노게야마 모요 | 작사·작곡[주석 83] | ||
여배우 | 작사·작곡[주석 84] | ||
이쵸우나미키노 세레나데 | 작사·작곡 | ||
요코하마 모가 | |||
걸(GIRL) | 작사·작곡[주석 85] | 1988 | |
타메이키노 벨가 나루토키 | 작사·작곡 | 1989 | |
하트 세츠나쿠 | 1991 | ||
진진 | |||
츠카이후사레타 코겐오 신지테 | 작사 | ||
도쿄 러브콜 | 작사·작곡 | ||
하나사쿠 타비지 | |||
이로이로노 파 | |||
오모이데노 리본 | |||
나미다노 텐시니 미소오미 | 1997 | ||
유메오 아리가토 | 2009 | ||
교토 이야기 | 2010 | ||
오모타이키즈나 | 작사·작곡[주석 86] | 2022 | |
여정 | |||
슬로우핸드니 다다카레테 (Oh Love!!) | 작사 | ||
요루노 호몬샤 | 작사·작곡 | ||
야바이네 아이테에 야츠와 | |||
가마쿠라 온 더 비치 | 작사[주석 85] | ||
첫사랑의 멜로디 | 작사[주석 87] | ||
고바야시 카츠야&더 넘버원 밴드 | 롯폰기의 벤짱 | 작사·작곡[주석 88] | 1982 |
블루스 다레! | 작곡[주석 89] | ||
마이 페기 수 | 작사·작곡[주석 88] | ||
카야가사키와 쿄우모 키이로이 | 작사·작곡 | 1983 | |
프로레슬링을 10배 즐겁게 보는 방법 ~지금도 호우토우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 |||
우에다 마사키 | 미스 유 베이비 | 작사·작곡 | 1983 |
마츠다 히로시 | 아오이 패리시 | 작사·작곡 | 1983 |
아미다 바바아&타케짱맨 | 아미다 바바아노 우타 | 작사·작곡 | 1983 |
쥬시후르츠 | 시와테 온나모 이시오 모테 | 작사·작곡 | 1984 |
바다[주석 90] | |||
아카시야 산마 | 산마노 맘마 | 작곡 | 1987 |
후루타테 이치로 | 유메미루 코로오 스기테모 | 작사·작곡 | 1988 |
하야카와 요시오 | 아멘보노 우타 | 작사·작곡 | 1997 |
카토리 싱고&하라 유코 | 민나 이이코 | 작사·작곡 | 1997 |
사카모토 후유미 | 붓다노 요우니 와타시와 신다 | 작사·작곡 | 2020 |
사이토 마코토 | 눈물의 Midnight Soul | 작사 | 2022 |
년 | 타이틀 | 공연 규모·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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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 카몬 유조 & Victor Wheels | 전 2회 공연 12월 11일 에그맨 |
1991년 | Acoustic Revolution | 전 3회 공연 3월 24일 닛신 파워 스테이션 |
1994년 | 구와타 게이스케 LIVE TOUR '94 -사노사노사- | 전 35회 공연 9월 29일 시즈오카 시민 문화회관 |
돌아온 아오야마의 댄디 | 10월 28일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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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 IBM PC & OS/2 Warp PRESENTS LIVE UFO '95 구와타 게이스케 & Mr.Children "Acoustic Revolution with Orchestra" 기적의 지구 | 전 12회 공연 4월 18일 나고야 시 종합 체육관 레인보우 홀 |
1996년 | Act Against AIDS '96 이부몬타 레이트 쇼 〜장거리 가수의 고독 in Jazz Cafe〜 | 전 3회 공연 12월 1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 대홀 |
1997년 | Act Against AIDS '97 구와타 게이스케 가요 서스펜스 극장 | 전 3회 공연 11월 29일 월드 기념 홀 |
1998년 | Act Against AIDS '98 구와타 게이스케 올 리퀘스트 쇼 | 전 3회 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 대홀 |
1999년 | Act Against AIDS '99 구와타 게이스케 에릭 클랩튼소 요코하마 공연 | 전 3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2000년 | 이즈투성이 로라 | 전 5공연 1월 29일 Zepp Sapporo |
Act Against AIDS 2000 구와타 게이스케가 고르는 20세기 베스트 송 | 전 3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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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 고가 코우타 No Reason! 라이브하우스 투어 | 전 7공연 7월 5일 기후 모던카페 클럽 |
Act Against AIDS 2001 구와타 게이스케 plays "The Beatles" 쿠와가타무시 대 카부토무시 | 전 3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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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Reason Coca-Cola Presents 구와타 게이스케 크리스마스 라이브 인 삿포로 | 전 3공연 12월 22일 홋카이도립산업공진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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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No Reason Coca-Cola Presents 구와타 게이스케 전국 돔 투어 2002 「게이스케 씨, 여러모로 힘드네요.」 | |
추가 공연!! No Reason Coca-Cola Presents 구와타 게이스케 연말 라이브 2002 「게이스케 씨, 연말에도 여러모로 힘드네요.」 | 전 4공연 12월 27일 요코하마 아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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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구와타 게이스케 Act Against AIDS 2003 영광의 디스코 & 소울 | 전 3공연 12월 2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2004년 | 구와타 게이스케 Act Against AIDS 2004 「THE GOLDEN AGE OF BRITISH ROCK 〜사랑과 청춘의 영국 록〜」 | 전 3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2006년 | 구와타 게이스케 Act Against AIDS 2006 「성조기여 영원하라!? 〜나의 아메리칸 히어로즈」 | 전 3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2007년 | WONDA presents 구와타 게이스케 라이브 투어 2007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아요!! 「야, 구와타 게이스케」쇼 supported by 쇼콜라프 | 전 14공연 11월 21일 마린메세 후쿠오카 |
2008년 | Meet the Music 2008! 전국 민방FM53국 & KDDI present 구와타 게이스케 어쿠스틱 라이브 인 이시가키섬 | 3월 23일 이시가키 시민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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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타 게이스케 Act Against AIDS 2008 「쇼와 83년도! 혼자 홍백가합전」 | 총 3회 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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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구와타 게이스케 Act Against AIDS 2009 「영화 음악 토라상 찰란 포란스키 감독·각본·주연 『남자는 하고 싶어』」 | 총 3회 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2010년 | 구와타 게이스케 LIVE TOUR 2010 전국으로 향하는 계단 〜Stairway to Nippon〜 |
총 19회 공연 10월 28일 에히메현 무도관 |
2011년 | 구와타 게이스케 미야기 라이브 〜내일을 향한 행진!!〜 | 총 2회 공연 9월 10일 세키스이하임 슈퍼 아레나 |
마운트 레이니어 더블 presents 구와타 게이스케 라이브 in 고베&요코하마 2011 〜송년!! 모두 함께 힘내자!!의 모임〜 | 총 4회 공연 12월 24일 월드 기념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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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 NTT 도코모 presents 구와타 게이스케 LIVE TOUR 2012 I LOVE YOU -now & forever- | 총 22회 공연 9월 15일 세키스이하임 슈퍼 아레나 |
2013년 | 구와타 게이스케 Act Against AIDS 2013 「쇼와 88년도! 제2회 혼자 홍백가합전」 | 총 4회 공연 11월 30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2016년 | 구와타 게이스케 연말 라이브 2016「요시코 씨에게 보내는 편지 〜장난기 넘치는 연말〜」 Supported by UCC | 총 4회 공연 12월 27일 요코하마 아레나 |
2017년 | 이 여름, 어른들의 밤놀이 in 일본에서 가장 세련된 장소!! supported by 닛폰햄 / Billboard Live 10th Anniversary | 총 2회 공연 7월 10일 빌보드 라이브 도쿄 |
WOWOW presents 구와타 게이스케 LIVE TOUR 2017「가라쿠타」 supported by JTB | 총 18회 공연 10월 17일 토키 메세·니가타 컨벤션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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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 구와타 게이스케 Act Against AIDS 2018 「헤이세이 30년도! 제3회 혼자 홍백가합전」 | 총 3회 공연 11월 29일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
2021년 | 구와타 케이스케 「고요한 봄의 장난 ~Live in 블루 노트 도쿄~」 | 3월 7일 블루 노트 도쿄(온라인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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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타 케이스케 LIVE TOUR 2021「BIG MOUTH,NO GUTS!!」 Supported by SOMPO그룹 | 전 20회 공연 9월 18일 미야기 세키스이하임 슈퍼 아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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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 구와타 케이스케 LIVE TOUR 2021「BIG MOUTH,NO GUTS!!」 Supported by SOMPO그룹 온라인 특별 추가 공연 |
전 4회 공연(온라인 라이브) 1월 3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
구와타 케이스케 LIVE TOUR 2022「서로 건강하게 힘냅시다!!」Supported by SOMPO그룹 | 전 10회 공연 11월 2일 미야기 세키스이하임 슈퍼 아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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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타 케이스케 LIVE TOUR 2022「연말도, 서로 건강하게 힘냅시다!!」Supported by SOMPO그룹 |
전 3회 공연 12월 28일 요코하마 아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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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 구와타 케이스케 LIVE TOUR 2022「서로 건강하게 힘냅시다!!」Live & Documentary Film On Streaming Supported by SOMPO그룹 |
전 4회 공연(온라인 라이브) 2월 12일 요코하마 아레나 |
2024년 | 구와타 케이스케 「재즈와 가요쿄쿠와 샹송의 저녁~R60」 | 전 4회 공연 3월 29일 블루 노트 도쿄 |
※굵은 글씨는, 현재 방송중인 프로그램이다.
방송년 | 프로그램명 | 방송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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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 1980년 | 구와타 케이스케의 올 나이트 닛폰 | 닛폰 방송 |
1984년 - 1985년 | ||
1981년 1월 - 1981년 9월 | 구와타 군과 세키구치 군[주석 91] | 닛폰 방송 |
1979년 9월 - ? | 구와타 케이스케의 구와타다 세일러맨 | 분카 방송 |
1980년 10월 - 1981년 3월 | 구와타 케이스케의 제록스・팝핀・팝스 | 닛폰 방송 |
1981년 - 1982년 | 새터데이 어드벤처 | FM도쿄 (현: TOKYO FM) / JFN38국 |
1981년 10월 - 1982년 3월 | 구와타 케이스케와 ○○○○의 난데모 스루・더・나이트 | 닛폰 방송 |
1981년 10월 - 1982년 3월 | MBS 뮤직 매거진 | MBS 라디오 |
1982년 4월 - 1983년 9월 | 구와타 케이스케의 미스터 팝스! | 닛폰 방송 |
1990년 - 1993년 | 뮤직・스퀘어 | NHK-FM |
1995년 - 현재 | 구와타 게이스케의 야사시이 요야소비 | TOKYO FM / JFN 38개국 / 치가사키 FM |
2020년 3월 20일 - 22일 | WE LOVE RADIO, WE LOVE MUSIC 구와타 게이스케의 |
전국 민방 라디오 101개국 |
2022년 11월 3일 | FM FESTIVAL 2022 ~하라 유이코의 Good Times Radio~토키도키(!?) 도코카데 구와타 게이스케 supported by Spotify[835] | TOKYO FM / JFN 38개국 |
2023년 11월 3일 | FM FESTIVAL 2023 사잔 올 스타즈 데뷔 45주년!「사잔토 와타시」 스페셜[836] |
방송년 | 프로그램명 | 방송국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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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2월 24일 | Merry X'mas Show 〜메리 크리스마스 쇼〜 |
일본TV | - |
1987년 12월 24일 | - | ||
2000년 10월 6일 - 2001년 3월 30일 2001년 10월 5일 - 26일 |
구와타 게이스케의 음악 도라산 〜MUSIC TIGER〜 |
후지TV | 정규 방송 |
2003년 6월 29일 | 『FNS 27시간 TV 모두의 노래』내에서 방송된 특별 프로그램 | ||
2006년 8월 21일 | 특별 프로그램 | ||
2009년 4월 20일 - 9월 21일 | 정규 방송 | ||
2009년 12월 22일 | 특별 프로그램 | ||
2012년 7월 11일 | |||
2016년 8월 26일 | 구와타 게이스케 「위대한 가요곡에 감사 〜도쿄의 노래〜」[837] | - | |
2019년 1월 3일 | 구와타 게이스케의 레츠고 볼링 일미 올스타 정상결전![838] | TV 도쿄 | - |
2019년 3월 20일 | 구와타 게이스케 대중음악사 「혼자 홍백가합전」 〜쇼와・헤이세이,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839] |
NHK | - |
방송년 | 프로그램명 | 방송국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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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 프로포즈 대작전 | 후지TV | 엔딩만 출연. |
2012년 - 2017년 | 마루코는 아홉살 | 엔딩만, 애니메이션 출연. | |
2017년 10월 1일 | 학생 시절의 구와타 (성우: 니시타니 슈이치)가 본편에 애니메이션으로 출연[840]. | ||
2013년 | 최고의 이혼 | 제8화 이후의 엔딩만 출연. |
연도 | 방송회 | 회 | 곡목 | 출연순 | 대결 상대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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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 제61회 | 첫 출연 | 사실은 무서운 사랑과 로맨스 소레 이케 베이비!! |
특별 기획 | (대결 상대 없음) | - |
2017년 | 제68회 | 2 | 젊은 광장 | 특별 기획 | (아무로 나미에) | 트리 전 『히요코』특별편에는 하마구치 쿠라노스케 역으로 출연[841] |
2022년 | 제73회 | 3 | 시대착오적인 Rock'n'Roll Band[842] | 특별 기획 | 대결 상대 없음 | 트리 전(2) 「구와타 게이스케 feat. 사노겐춘, 세라 마사노리, 찰, 노구치 고로」로서 출연[843] 노래하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고바야시 마리코)의 개사, 「밤하늘의 별」(카야마 유조)를 공개[194]. |
년 | 작품명 | 역 | 비고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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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 Mr.Children in FILM | 본인 | Mr.Children의 다큐멘터리 영화. |
2017년 | 카야가사키 이야기 ~MY LITTLE HOMETOWN~ | 본인 | 구와타의 학창 시절을 영화화한 작품. |
2019년 | 남자는 괴로워 - 어서와 토라야 | 본인 | 오프닝 출연[845]. |
년 | 작품명 | 역 | 방송국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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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0월 24일 | 청춘 낙서 | 울프맨 잭 | 후지테레비 | 『골든 외화극장』에서 방송. |
※모두 구와타 케이스케 개인 출연.
출연년 | 기업명 | 프로모션 상품 등 | 테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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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 아네트 | 아네샹테 S | N/A |
1982년 | 유키지루시 유업 | 슬라이스 치즈 | N/A |
1986년 | TDK | 카세트테이프 SF46・AD46 | N/A |
1989년 | 후지필름 | 후지컬러[846] | N/A |
1989년 - 1991년 | 닛폰 생명보험 | 롱런 | N/A |
1991년 - 1992년 | 캐논 | 비디오 i[847] | N/A |
1993년 - 1995년 | 기린 베버리지 | JIVE | N/A |
1994년 | 가도카와 쇼텐 | 가도카와 문고 | N/A |
1996년 | 기린 맥주 | 기린 라거 | N/A |
1998년 | 미쓰비시 전기 | 디지털 무바 D207 | N/A |
2000년 | WOWOW | N/A | 여름 캠페인 |
2016년 - 2017년 | N/A | N/A | N/A |
2001년 - 2002년 | 일본 코카콜라 | 코카콜라 | No Reason! 캠페인 |
2003년 - 2004년 | 일본항공 | N/A | FLY! JAL! 캠페인 |
2004년 - 2005년 | 토요타 자동차 | N/A | MORE THAN BEST 캠페인 |
2006년 - 2007년 | 메이지 제과 | 쇼콜라이프 | N/A |
2007년 |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 N/A | MORE THAN JUST A CARD 캠페인 |
댄디하우스 | N/A | 닛폰 댄디? 캠페인 | |
아사히 음료 | WONDA | 모닝샷 애프터샷 압력조절 블랙 | |
2008년 | 금의 미당 | N/A | |
2009년 - 2010년 | 오츠카 제약 | UL・OS (울・오스) | N/A |
2011년 - 2012년 | NTT 도코모 | N/A | walk with you 2011 SUMMER 캠페인 |
2011년 | 모리나가 유업 | 마운트 레이니어 더블 | N/A |
2013년 - 2014년 | 삿포로 맥주 | 삿포로 프리미엄 알코올프리 | N/A |
2014년 | 미쓰이스미토모 은행 | N/A | Lady, Fight! |
2016년 - 2017년 | JTB | N/A | JTB의 봄 여행・JTB의 여름 여행 |
2016년 | UCC 우에시마 커피 | UCC 블랙 무당 | N/A |
2020년 - | SOMPO홀딩스 | N/A | N/A |
2021년 - | 유니클로 | LifeWear | 평범한 날들이, 인생이 된다.[848] |
※구와타 게이스케 명의로 발표된 곡의 타이인(대중 매체)을 기재하고 있습니다.
음악 | 타이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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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S A BIG TEASER | 코카콜라 「I feel Coke & Sound Special」CM송 |
언젠가 어딘가에서 (I FEEL THE ECHO) | JAL '88 오키나와 캠페인 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49] | |
먼 거리의 골목 (The wanderin' street) | 후지필름「후지컬러」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50] | |
Blue 〜이런 밤에는 춤출 수 없어 | 쇼치쿠후지 영화『래플스 호텔』주제가 |
한밤중의 댄디 | 기린 베버리지「JIVE」CM송 |
모든 노래에 참회하라!! | |
축제 후 | 일본TV계 드라마『고요한 돈』주제가 |
기린 베버리지「JIVE」CM송 | |
MUSIC TIGER | 후지TV계『구와타 게이스케의 음악 호랑이씨 〜MUSIC TIGER〜』오프닝 테마 |
서핑하는 조니 | 코카콜라「No Reason! 캠페인」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51] | |
흰 연인들 | 코카콜라「No Reason! 캠페인」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52] | |
여름날의 소년 | Town&Country CM송 |
귀여운 미나 | 코카콜라「No Reason! 캠페인」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53] | |
ROCK AND ROLL HERO | 코카콜라「No Reason! 캠페인」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54] | |
그림자 | 코카콜라「No Reason! 캠페인」CM송 |
이런 내가 좋다면 | 아메리칸 익스프레스「MORE THAN JUST A CARD」CM송 |
이런 내가 좋다면 (Trumpet & Jazz Piano Trio:CM Version) | |
내일 맑겠지 | 후지TV계 드라마『프로포즈 대작전』주제가 |
유니클로「LifeWear」CM송[855] | |
남자들의 만가(엘레지) | 댄디하우스「일본 댄디?」CM송 |
바람의 시를 들려줘 | 도호계 영화『Life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주제가 |
KDDI・오키나와 셀룰러 전화「au LISTEN MOBILE SERVICE」캠페인 CM송 | |
유니클로「LifeWear」CM송[856] | |
NUMBER WONDA GIRL 〜사랑하는 원더〜 | 아사히 음료「WONDA」CM송 |
달링 | 아사히 음료「WONDA」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57] | |
DEAR MY FRIEND | 아사히 음료「WONDA」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58] | |
현대 도쿄 기담 | 고 시네마 영화『어둠의 아이들』주제가 |
HONKY JILL 〜69(아이나메)의 블루스〜 | 후지TV계『구와타 게이스케의 음악 호랑이씨 〜MUSIC TIGER〜』오프닝 테마 |
너에게 작별을 | 오츠카 제약「UL・OS」(울・오스) CM송 |
유니클로「LifeWear」CM송[859] | |
EARLY IN THE MORNING | 후지TV계『메자마시 TV』2010년도 테마송 |
오츠카 제약「UL・OS」(울・오스) CM송 | |
월광의 성자들(미스터 문라이트) | 미쓰이스미토모 파이낸셜 그룹 CM송 |
쇼치쿠영화 ‘지켜지지 못한 자들에게’ 주제가[860] | |
은하의 별먼지 | 후지TV 드라마 ‘CONTROL~범죄심리수사~’ 주제가 |
내일을 향한 행진 | NTT 도코모 “walk with you 2011” 캠페인송 |
유니클로 “LifeWear” CM송[861] | |
카페 블루 | 모리나가 유업 “마운트 레이니어 더블” CM송 |
행복의 라스트 댄스 | 미쓰이스미토모 은행 CM송 |
100만 년의 행복!! | 후지TV 애니메이션 ‘마루코는 아홉살’ 엔딩 테마 |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노래 | NTT 도코모 “도코모 땡스 캠페인” CM송 |
NTT 도코모 20주년 기념 스페셜 드라마 꿈의 문 특별편 ‘20년 후의 너에게’ 테마송 | |
마사루 | 후지TV 주최 이벤트 ‘오다이바 공화국! 2012~여기서부터 시작되는 NIPPON 응원단!~’ 테마송 |
눈물을 날려 버려!! | NTT 도코모 “도코모 2012 겨울” 캠페인송 |
Yin Yang | 후지TV 드라마 ‘최고의 이혼’ 주제가 |
후지TV 토요 프리미엄 ‘최고의 이혼 스페셜 2014’ 주제가 | |
맛있는 비밀 | 삿포로 “프리미엄 알코올프리” CM송 |
사랑의 프렐류드 | JTB TV CM송 |
대하의 한 방울 | UCC 블랙 무가당 TV CM송 |
백만 송이 붉은 장미 | 후지TV 정보 프로그램 ‘유어타임’ 테마송 |
요시코 씨 | WOWOW 개국 25주년 CM송[862] |
너에게 보내는 편지 | 쇼게이트 영화 ‘금메달 남자’ 주제가[863] |
WOWOW 25주년 기념 CM송[864] | |
젊은 광장 | NHK연속 TV 소설 ‘히요코’ 주제가[865] |
유니클로 “LifeWear” CM송[849] | |
오아시스와 과수원 | JTB “오아후 섬” 편 “하와이 섬” 편 CM송[866] |
사랑의 가시~Nobody loves me | WOWOW CM송[867] |
MY LITTLE HOMETOWN | 라이브 뷰잉 재팬 영화 ‘치가사키 이야기 ~MY LITTLE HOMETOWN~’ 주제가[868] |
SMILE~맑게 개인 하늘처럼~ | 민방 공동 기획 “함께 하자” 응원송[869] |
유니클로 “LifeWear” CM송[870] | |
슬픈 프로볼러 | SOMPO 그룹 CM송[871] |
금눈돔 조림 | SOMPO 그룹 CM송[872] |
슬픈 마음 (JUST A MAN IN LOVE) | 유니클로 “LifeWear” CM송[873][874] |
뻐꾸기[두견화] | |
불꽃의 성가대 [합창] | SUBARU “포레스터” CM송[46] |
Soul 코브라 트위스트~영혼의 몸부림 | 유니클로 “LifeWear” CM송[875] |
넷플릭스영화 ‘아사쿠사 키드’ 주제가[876] | |
저니 | 유니클로 “LifeWear” CM송[877] |
평화의 거리 | SOMPO 그룹 CM송[878] |
누군가의 바람의 흔적 | 유니클로 “LifeWear” CM송[879][880][881][882][883] |
거울 | |
나기사 호텔 | |
그래 가자 베이비!! | |
봄은 아직 멀고 |